[Opinion] 잔혹하고도 아름다워라 - 장화, 홍련 [영화]

글 입력 2021.08.0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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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필자에게 '가장 재미있게 본 공포영화가 뭔가요?'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고민 없이 영화 <장화, 홍련>(2003년 개봉, 김지운 감독)을 꼽을 것이다. 필자에게 이 영화는 단순히 재미있게 본 수준을 넘어, 가장 애정 하는 영화로 자리 잡았다.

 

영화의 유명한 OST인 이병우 작곡의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가끔 들을 때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무언가가 아프게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처연한 아름다움은 필자의 손을 이끌고 영화 속 장면으로 이끈다. 강렬했던 장면의 파편들은 필자의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여지없이 필자의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 본 글에는 영화 <장화, 홍련>(2003년 개봉, 김지운 감독)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장화, 홍련>

 

개요| 공포, 한국, 118분

개봉| 2003. 06. 13.

평점| ★8.77 (네이버 영화 평점)

감독/각본| 김지운

출연 | 임수정(수미 役), 염정아(은주 役), 김갑수(무현 役), 문근영(수연 役) 

수상내역| 2004년 22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은까마귀상)

               2003년 24회 청룡영화상(신인여우상)

               2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신인여우상, 미술상, 조명상, 음향상)

               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촬영상, 신인여우상, 심사위원상)

 

 

영화 <장화, 홍련>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후 엄청난 반전과 함께 끝내 수면 위로 드러나는 한 가족의 가슴 아픈 비극사가 커다란 전율과 여운을 전달한다.

 

이는 영화의 다양한 연출적 요소인 세트와 소품의 디자인과 배치, 조명 디자인, 음향 디자인 및 카메라 구도 등이 다 함께 잘 어우러져 하나의 온전한 작품으로서 완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영화는 미술적으로도 매우 훌륭하다고 평을 받는 영화다.

 

본 글을 통해 한국 공포영화의 수작이라고 불리는 영화 <장화, 홍련>의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의 미장센을 세트 디자인과 조명 디자인을 중심으로 찬찬히 들여다볼 것이다.

 

 

간략 줄거리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 "가족 괴담"

 

인적이 드문 시골, 이름 모를 들꽃들이 소담하게 피어 있는 신작로 끝에 일본식 목재 가옥이 홀로 서 있다. 낮이면 피아노 소리가 들려올 듯 아름다운 집이지만, 어둠이 내리면 귀기 서린 음산함을 뿜기 시작한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서려 있는 이 집에서 어른도 아이도 아닌 아름다운 두 자매, 수미와 수연이 아름답지만 신경이 예민한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된 그날, 그 가족의 괴담이 시작된다.

 

수연, 수미 자매가 서울에서 오랜 요양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새엄마 은주는 눈에 띄게 아이들을 반기지만, 자매는 그녀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함께 살게 된 첫날부터 집안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가족들은 환영을 보거나 악몽에 시달린다. 수미는 죽은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 무현과 동생 수연을 손수 챙기려 들고, 생모를 똑 닮은 수연은 늘 겁에 질려 있다. 신경이 예민한 은주는 그런 두 자매와 번번이 다투게 되고, 아버지 무현은 그들의 불화를 그저 관망만 한다. 은주는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며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고,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미가 이에 맞서는 가운데, 집안 곳곳에서 괴이한 일들이 잇달아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영화 <장화, 홍련> 세트 디자인 특징 : '목재'와 '꽃무늬 패턴'


 

영화 속 장소는 크게 두 개로 나뉜다. 외딴 시골에 홀로 세워진 집 한 채와 수미가 입원하게 되는 정신과 병동이다. 그중 주요 장소는 집의 내부이며, 집의 외부 장면과 정신 병동의 장면은 가끔가다 등장한다. 영화 속 세트 디자인에 대한 메인 키워드를 뽑자면 다음과 같다. 바로 '목재'와 '꽃무늬 패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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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 먼저, 영화 속 주요 장소인 집의 건축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면, 집은 일본식 가옥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일본식 가옥의 건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대부분 목재로 지어졌다. 둘째, 밖으로 돌출된 형태의 창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셋째, 2층이 1층보다 약간 튀어나온 구조이다. 넷째, 지붕이 주로 삼각형 형태이다.

 

따라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집 외부의 뼈대와 지붕 등은 목재로 만들어졌다. 특히 집 내부의 바닥은 물론이고 벽을 이루는 뼈대 또한 목재로 이뤄져 있으며, 집의 가구 대부분이 목제 가구이다.

 

영화를 관람하며 세트 디자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목재, 즉 나무 재질의 다양한 활용이었다. 필자는 평소 방을 인테리어 할 때 목재 바닥과 목제 가구의 활용은 심리적 안정감과 아늑함을 제공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 고 있었으나, 영화에서 목재는 단순히 아늑한 느낌을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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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밝은 베이지나 화이트 톤의 목재가 아니라, 짙은 갈색 혹은 짙은 검붉은 색의 목재를 주로 사용하여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로 인해 작품 전체의 공포감은 심화된다. 특히 이러한 목재 인테리어는 파스텔컬러의 꽃무늬 패턴 벽지와 함께 연출되고, 특히 '새것'의 느낌보다도 사용감이 묻어나는 앤티크하고 클래식한 목제 가구와 함께 어우러진다.

 

따라서 영화를 관통하는 특유의 분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손때 묻은 낡은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필자는 바로 이것이 이 영화의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의도였다고 짐작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 내용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장화 홍련' 설화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동화 이야기다. 따라서 이 영화의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영화가 전체적으로 아름답지만 잔인한 '잔혹 동화'와 같은 느낌이 들도록 의도했고, 고즈넉한 아늑함을 주면서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좋은 '목재' 재질을 선택하여 작품에서 폭넓게 활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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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다음으로 뽑은 이 영화의 세트 디자인 키워드는 '꽃무늬 패턴'이다. 영화를 관람하고 나면 꽃무늬 패턴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을 정도로 영화에서는 꽃무늬 패턴이 미술적으로 자주 활용된다. 집의 1층에 위치해 주로 가족 식사 장면이나 중요한 갈등 상황이 벌어지는 장소인 부엌의 벽지는 모두 꽃무늬 패턴이다. 심지어 짧게 등장하는 부엌의 정리된 그릇이나 찻잔들 또한 비슷한 꽃무늬 패턴을 띄고 있다. 또한 1층에서 두 자매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붙어있는 벽지 또한 꽃무늬 패턴이며, 영화 속 많은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인 수연과 수미의 방 벽지의 무늬도 꽃무늬 패턴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두 자매의 친엄마가 과거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였으며, 동생인 수연이 깔려 죽게 되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오브제가 되는 수연 방에 있는 옷장 또한 꽃무늬 패턴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이러한 꽃무늬 패턴들은 주로 채도가 낮은 파스텔 톤과 어우러져 세트 디자인으로 폭넓게 활용된다.

 

그 의도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 동화적인 분위기를 위한 것이었음을 짐작해 본다. 크기가 크지 않은 꽃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며 파스텔 톤의 색상과 함께 패턴을 이루는 이미지는 우아하면서도 여리고, 순수하며, 소박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러한 느낌은 사춘기에 막 접어든 나이인 두 자매의 순수한 외적, 내적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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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꽃무늬 패턴 이미지는 새엄마인 은주와 아버지 무현의 안방과 대조되기도 한다. 안방은 채도와 명도 모두 낮은 검붉은 색상이 활용되는 반면, 두 자매의 방은 채도만이 낮은 파스텔 톤이 활용된다.

 

덧붙이자면 두 자매와 은주의 대조는 인물들의 의상과 분장에도 적용이 되는데, 두 자매는 대부분 파스텔 톤이나 하얀색의 밝은 의상을 주로 입고 분장도 거의 화장한 티가 나지 않는 투명 메이크업이라면, 은주는 대부분 짙고 어두운 컬러의 의상을 주로 착용하며 짙은 와인색의 입술 화장을 한다. 이 둘의 대조를 통해 새엄마 은주의 괴기스러움과 억척스러움, 그리고 예민한 성격이 더욱 부각이 되며, 반대로 두 자매의 경우에는 사춘기 시기의 수수함과 순수함이 강조된다. (사실 이 또한 영화를 보다 보면 감독이 반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은주는 영화의 초 중반부까지는 두 자매를 괴롭히는 안타고니스트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수미 자신의 망상 증세에서 비롯된 환각이었다.)

 

더불어 영화에서는 큰 딸 수미의 반전을 예고하는 소품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수미의 여러 인격을 예상할 수 있는 상징물들이 소품으로 장면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영화 <장화, 홍련> 조명 디자인 특징 : 앰비언스 기법


 

작품에서 주요 공간은 집 안, 즉 실내 공간이기 때문에 인공조명이 쓰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조명은 세트 영화 특유의 차갑고 건조한 느낌보다는 자연광과 최대한 비슷한 조명 디자인이 쓰이며, 색감은 주로 빛이 바랜 파스텔 톤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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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영화를 관람하고 난 뒤, 이러한 자연스러운 자연광 느낌을 위해 촬영장에서 매번 실제로 자연광을 썼는지, 아니면 인위적인 조명 효과를 썼는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그 결과 영화 <장화, 홍련>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조근현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 영화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전면적으로 도입한 '앰비언스 기법'을 활용했다고 한다. '앰비언스 기법'이란, 조명기 앞에 수십 겹의 천을 덧대 자연스러운 톤을 만드는 기법이다. 처음에 제작진들은 흰 천이 아니라 색깔 천들을 하나씩 조명기에 대가며 화면의 톤을 조절했다고 한다.


필자는 영화를 보며 내내 과하지 않고 자연광과 비슷한 파스텔 톤의 빛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그 이면에는 역시 제작진들의 수많은 실험과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기법을 활용하여 집 안 공간에서 조명은 주로 창밖에서 쏟아지는 햇살이나 노을빛과 같은 자연광이 쓰이는 것처럼 연출된다. 따라서 빛이 인물의 얼굴에 고르게 묻어난다기보다는 장면에 따라 그림자가 지기도 한다. 특히 1층의 거실과 부엌 공간, 그리고 복도 공간은 때론 전기가 아예 나간 것처럼 매우 어두침침하게 연출되기도 한다. 이는 영화를 보는 관람객의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이 아니라, 어둠 때문에 가려져 공간이 다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함께 두려움을 자극하고 결국 영화가 가진 공포감을 더 심화시킨다.

 

또한 추가적으로 영화에서는 공간을 밝히기 위해 주로 전식 조명(책상용 램프, 샹들리에, 또는 벽 조명과 같이 무대 위에서 전기를 사용하여 빛을 밝히는 소품용 조명 기구)를 사용한다. 벽지와 목제 가구들과 어울리는 앤티크 한 디자인의 전식 조명을 활용하여 공간 전체를 훤히 밝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만을 빛으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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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빛바랜 파스텔 톤의 조명이 주로 이뤄지는 집 안 장면과 수미가 입원하게 되는 정신 병동의 조명 디자인은 대조된다. 정신 병동은 백색의 형광등이 사용되어 인물의 얼굴에 그림자가 거의 지지 않는다. 집에서의 조명과는 다른 '날 것' 그 자체의 차갑고 정제되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심지어 정신 병동의 세트 디자인 또한 화이트 톤으로 이뤄져 있어, 더욱 백색의 형광등과 효과적으로 함께 어우러진다.

 

*

 

지금까지 영화 <장화, 홍련>의 전체를 관통하는 '특유의 분위기'의 단단히 한몫을 하는 세트 디자인과 조명 디자인을 중심으로 그 미장센을 살펴보았다.

 

영화 속에서 공포의 근원은 귀신이나 악령의 존재가 아니다. 한 가족에게서 벌어졌던 잔혹하고 비극적인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오는 공포다. 아버지 무현의 원죄에서 비롯된 잔혹사는 뿌리를 뻗어 큰 딸 수미에게 이어지고, '죄의식'이라는 정서 안에서 끊기지 않는 비극의 고리를 보여준다.

 

영화 <장화, 홍련>은 이러한 의도를 장면에 물리적으로 녹여내기 위해서 섬세하고 철저한 디자인적 요소의 계산이 이뤄진 영화다. 세트와 조명의 훌륭한 조화 속에서 관객은 잊을 수 없는 영화의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아프고 쓴 여운을 삼킨다.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오늘은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국내 공포영화 <장화, 홍련>과 함께하며 잠시 더위를 잊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자료 출처]

네이버 영화 '장화, 홍련'

나무위키 '적산가옥'

한겨례 기사 : '장화, 홍련' 프로덕션 디자이너 조근현씨, 예민한 손길로 화면에 숨결 불어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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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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