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을 담는 그림, 초상화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8.0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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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목적을 위해 사람의 얼굴을 보존한다.

 

곧 떠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영웅처럼 추앙하기 위해서, 때로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기에 초상화라는 장르는 그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따라서 오늘은 초상화의 의미를 주제로써 반영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시대의 얼굴”을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초상화와 명성


 

초상화라는 장르는 15세기 무렵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오랫동안, 초상화는 그려진 대상의 명성과 권력을 강조하는 데 중점이 있었다. 사실 이는 우리가 초상화라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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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니컬러스 힐리어드가 1575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굳건하고 강인한 왕의 모습을 강조하듯 작품 속에는 그의 권위를 드러내는 요소들로 가득한데, 재생과 처녀성을 상징하는 가슴의 불사조 펜던트나 튜더 왕가의 상징물인 장미를 들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적인 초상화


 

엘리자베스 1세라는 왕으로서의 권위가 강조된 이 작품에는 그것을 의미하는 다양한 도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초상화는 엘리자베스 튜더라는 그 본연의 이름을 담은 모습을 드러내 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왕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그가 좋아하는 음식, 취미, 성향 같은 것들 말이다.

 

이처럼 사람을 신격화하기보다는 대상 본연의 모습을 담고자 사실주의적 초상화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주의 초상화의 대가인 영국의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1765년에 그린 <카를 프리드리히 아벨>은 이러한 강조점이 잘 드러난다.

 

게인즈버러는 고전이나 신화보다는 현실 세계의 아름다움에 더 관심이 많았고, 따라서 현실 세계에 집중하여 그림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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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나타난 카를 프리드리히 아벨은 독일의 작곡가로, 베이스비올이라고도 부르는 악기 비올라 디 감바의 최고 권위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림에는 이러한 아벨의 정체성을 반영하듯 비올라 디 감바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아벨이 자연스럽게 활을 쥐고 있는 모습에서 게인즈버러 역시 이 악기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품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게인즈버러는 아벨에게 비올라 디 감바 연주법을 배우고, 답례로 그림과 소묘 작품을 선물했다.

 

 

 

자화상과 정체성


 

그러나 화가들은 보통 보수를 받고 초상화를 그렸으며, 여기에는 주문자의 엄격한 요구가 동반됐기에 작품을 자신의 마음대로 그리기는 어려웠다.

 

특히 18세기 영국에서 초상화는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영업능력, 분업을 위한 직원 관리체계, 운송료나 임대료를 계산해야 하는 지식까지 요구되는 하나의 사업에 가까웠다. 따라서 화가들은 요구를 받아 그리는 그림보다는 자화상을 그릴 때 더욱 본인이 가진 생각, 감정, 경험 등을 풍부하게 반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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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 화가인 앤젤리카 카우프먼이 1770년~1775년에 그린 본인의 자화상이 하나의 예시가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카우프먼은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화구를 들고, 확신에 찬 시선을 통해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당시 여성이자 전문직업인으로서 자신이 이루어낸 성취에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당당하게 보여준다.

 

 

 

현대의 초상화


 

이렇듯 정체성을 반영하는 기조는 현대에 와서는 자화상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의 초상화로 확대된다.

 

이는 사진술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 19세기 중반 니에프스와 다게르라는 사람에 의해 실용적인 사진 기술의 시초가 마련됐고, 이는 초상화에 있어서는 가히 큰 위협이었다. 카메라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대상을 똑같이 담을 수 있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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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대에 올수록, 그대로 닮음을 강조하는 과거의 초상화보다는 인물의 개성, 신념, 확고한 스타일이 얼마나 잘 반영되었는가가 중요해졌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2008년에 제작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초상화는 이를 잘 드러내준다.

 

이 작품은 LCD 화면을 캔버스로 삼아 인물의 색깔을 끊임없이 변주한다. 하디드의 피부 색은 노란색도, 파란색도, 초록색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려 하는 하디드의 정체성을 무엇보다도 잘 표현해주는 듯 하다. 즉, 초상화는 단순한 형태상의 유사성을 넘어 진정한 ‘닮음’을 추구하려는 시도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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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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