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음식 [공간]

여름이다. 여름에는 밥도 마셔야 한다.
글 입력 2021.08.0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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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냉면은 국물 요리다. 물론 면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씹는 요리라기보다 마시는 요리에 더 가깝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먹어 본 뒤로 그 육수 맛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녔고, 좀 친해진 사람이 생겼다 싶으면 무조건 냉면집에 데려가곤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호불호는 반반의 확률로 나뉘는 것 같지만, 그 50%의 확률로 첫입을 먹는 순간 ‘오 이거 괜찮은데?’라 외치는 친구를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자기 입으로 냉면 좋아한다고 하는 놈들 중에는 같이 간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에 대해 오지게 참견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가령, 야 겨자를 왜 넣냐? 슴슴함을 즐겨야지. 라던가, 뭐? 이 귀한 육수에 식초를 넣어? 하는 식으로.), 나는 그런 래디컬한 놈은 절대 아니다.

 

즐겁자고 먹는 건데 자기 좋을 대로 먹는 거지 뭘 어떻게 먹든 무슨 상관인가? 대신 냉면집에서 비빔냉면을 시킨 자와는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먹을 때는 말하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 조용히 차단하고 두 번 다시 보지 않는다. 물론 농담이다. 미안합니다.

 

 

 

2.


 

제일 자주 가는 곳은 을지로에 있는 을지면옥. 을지로3가역 5번 출구로 나가 몇 걸음만 가면 바로 오른쪽 옆에 을지면옥의 입구가 자그맣게 있다.

 

굉장히 유명한 집이지만 모르고 가면 지나칠 정도로 입구가 소박한 편이다. 그 점도 참 맘에 든다. 원래 굉장한 능력을 가졌지만 티 내지 않는 애들이 멋진 법. 을지면옥의 입구에서 그런 가진 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곱씹어 보면 누군가는 그래서 더 재수 없다고 하겠지만, 그만 서성이고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에 들어서면 긴 통로가 있고 오른 쪽 벽면에는 옛날 서울의 사진들과 메뉴판이 붙어있다. 을지로 상가처럼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전반적으로 공간의 밀도가 높은 느낌을 주는 동네는 도로변의 인도에서 건물이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 때의 순간이 피부를 뚫고 도시의 속살로 들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옷장 속으로 들어가듯 사진과 벤치를 지나쳐 통로를 빠져나오면 먼저 작은 공터가 나오고, 한 번 더 문을 열면 면옥에 들어와 있다. 분명 바깥은 2021년인데, 식당 안은 90년대다. 인테리어라 할 것도 없어 흰색 벽에, 화장실에나 어울릴 법한 타일로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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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선 앉아서(때에 따라 2층으로 안내받을 때도 있는데, 2층도 괜찮다.)둘이 왔을 경우 냉면 둘에 편육 하나를, 혼자 왔을 경우 냉면 한 그릇을 주문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냉면을 기다리며 가게를 한 번 둘러본다.

 

이때 먼저 나오는 면수를 마시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나는 마시지 않는다. 무조건 첫입은 냉면 육수여야 하기 때문이다. 주문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냉면은 이슬이 방울방울 맺혀 있는 회색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등장할 것이다. 그릇에 맺혀 있는 물방울들은 방금 전까지 공중을 떠다녔다.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육수 맛에 내지르는 탄성 속에 있었고 조용히 슴슴함을 음미하며 내뿜는 콧김 속에 있었다. 나는 어서 그릇을 다 비워서 달라붙은 물방울들을 다시 놓아주어야 한다. 그것들은 원래 있던 자리로 날아가 있다가 또 다른 그릇에 가서 붙겠지.

 

그릇에 방울방울이 맺혀 있는 상태로 냉면이 나오면, 우선 육수를 한 모금 마신다. 고명으로 올려진 삶은 계란 반쪽을 먹고, 면을 풀은 뒤 육수를 한 번 더 마신다. 물론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평양냉면 집들(의정부계와 장충동계)은 삶은 계란 반쪽을 고명으로 올리지만, 냉면과 삶은 계란이 사실 그렇게 어울리는 조합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해 마시라. 계란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아니다. 삶은 계란 반쪽과 냉면이라는 요리의 조화와는 별개로 계란 자체는 매우 좋아한다. 따라서 나는 그 둘을 별개의 음식으로 생각해 계란을 먼저 먹고 냉면을 먹는다.

 

그나저나 계란이 병아리가 되는 과정에서 노른자가 병아리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병아리는 노란색, 노른자도 노란색!’ 하는 식의 자연스러운 연상 작용으로 노른자가 병아리로 바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병아리는 노른자와 흰자 사이의 접합부분에서 발현된다. 노른자는 병아리의 밥이다. 노른 자는 병아리가 알 속에서 성장하면서 가운데에 두고 파먹는 영양분일 뿐이다.

 

잠시 이야기가 샜지만, 요지는 나의 노른자는 냉면이라는 데에 있다. 성장 중이진 않지만.

 

첫입을 떼고 나면 그때부터 식사 종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냉면은 육수의 그 오묘한 맛과 육향을 캐치하려면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고, 집중하는 만큼 식사 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냉면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시원함이 아니라 가벼움이라 할 수 있다.

 

을지면옥의 물냉면 육수는 내가 먹어본 모든 음식 중에 가장 깊이 있게 가벼운 음식이다. 가볍다는 것은 한 요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 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육수를 내기 위해 넣은 돼지와 소, 양파와 대파, 소금 등의 요소들이 시소 위에서 균형을 맞추듯 저마다의 무게를 서로가 상쇄해야 전체의 가벼움이 가능해진다. 요리는 재료가 많이 들어갈 수록 무거워지긴 쉽지만, 가벼워지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맥주를 마시며 맥주 얘기를 하거나 산책을 하며 산책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이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맘이 잘 맞는 냉면 메이트와 함께 을지면옥에 가면 다음에 같이 가볼 새로운 냉면집 이야기를 한다. 해가 쨍할 때도 좋고 비 오는 날에도 좋다. 계산하고 나온 뒤 소화 시킬 겸 을지로 일대를 산책해도 좋고 따릉이를 타도 좋다. 저녁 술 약속 때문에 홍대로 가도 좋고 광화문에 영화를 보러 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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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쯤에서 스탑하고 한번 죽 읽어봤는데, 계속 냉면 얘기만 주구장창 한 것 같아 좀 지겹다. 너무 예찬론만 편 것 같아 굳이 아쉬운 점을 하나 말해보자면, 나는 소주보다 맥주파인데 냉면이랑 맥주는 친해질래도 친해질 수가 없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뭔가 리그가 겹치는 듯한 느낌이 있고, 한번 같이 먹어본 적이 있는데 두 번 다시 시도하지 않을 생각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비 오는 날 하는 세차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물론 나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다.

 

 

[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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