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무도 모르는 - 우리, 둘

영화 <우리, 둘>(2019)
글 입력 2021.07.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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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

 

같이 술을 마시던 H의 말이었다. 옆에서 자던 애인이 앓는 소리를 내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법적으로 보호자가 될 수 없었던 H는 애인의 가족이 올 때까지 병원 밖에서 기다렸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애틋한 둘은 공식적으로는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없었다. 애인의 가족들이 자신을 보기 전에 병원을 나서야 했던 H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슬프게도 사랑은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이 두 개의 마음 이상의 것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그러나 세상엔 오직 둘만이 온 힘을 쥐어짜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사랑이 있고, 그들의 사랑이 지속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는 여전히 미약하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그들은 법적으로 친구 이상이 될 수 없다.

 

<우리, 둘>이라는 제목은 그런 면에서 애틋하고 서글프다. 어떤 타인도 알지 못하고, 어떤 제도도 지켜주지 않는 오직 둘만의 관계를, 볕이 들지 않는 사랑을 어떻게든 이어 가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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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 니나와 마도는 노년의 레즈비언 커플이다. 20년 넘게 남몰래 사랑을 이어 온 두 사람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다. 마도가 자식들에게 니나와의 관계를 밝히고,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로마에 가서 여생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몇 번이고 결심한 일이지만 마도의 입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니나와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용기가 없다. 사랑 없는 결혼이 남긴 자식들이지만 그녀에겐 니나 못지않게 소중하다. 짧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같은 구조의 집에서 살지만, 금방 떠날 사람처럼 휑한 니나의 집과 가족과의 추억으로 가득한 마도의 집은 같고도 다른 두 사람의 상황을 시각화한다.

 

반면 니나에게는 오로지 마도뿐이다. 가족이 없는 니나는 마도의 망설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도가 자식들에게 사실을 말할 준비가 되길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이 슬슬 버겁다. 두 사람의 마음은 같지만 속도는 다르다. 곧 정리할 계획이었다고는 해도, 마도의 집에 있던 시계를 니나가 먼저 팔아버리는 장면은 두 사람의 미묘한 어긋남을 잘 보여준다.

 

마도는 자식들과 식사를 하는 날 모든 것을 밝히기로 하지만, 남편(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 일로 니나와도 갈등을 겪게 되면서 충격으로 쓰러진 마도는 병원에 실려 가고, 후유증으로 거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마도가 쓰러지는 순간부터 니나는 마도에게 철저한 타인이 된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사랑은 니나에게서 사랑하는 사람과 아픔을 나눌 권리를, 힘이 다한 연인의 곁을 지킬 명분을 앗아간다. 마도가 퇴원한 날 밤, 아침에 다시 찾아오라는 간병인의 말에 뜬눈으로 밤을 보내다가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마도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니나의 모습은 무모하고도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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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영화는 신선하게도 스릴러의 작법을 빌려온다. 니나가 간병인 뮤리엘이나 마도의 딸 몰래 비상 열쇠로 문을 따고 마도의 집에 들어가거나, 뮤리엘을 쫓아내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는 장면은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맞물려 상당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의 아픔을 소재로 삼았기에 영화의 후반부 전개가 상당히 무거우리라 생각했는데, 감독은 과감한 장르적 전환을 통해 소재의 무게감을 덜어낸 후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는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감독의 과감한 선택과 집중으로 <우리, 둘>은 기존 퀴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영화의 장르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등장인물 간의 대화가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화의 부재는 장르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극을 끌어가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이는 동시에 내용 전개의 동력으로 삼은 문제의식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영화 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원인이 되었다.

 

영화가 꼭 현실의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감독이 두 사람의 무모하고도 애틋한 사랑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우리, 둘>의 문제의식은 퀴어 커플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 지지가 부재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오직 둘뿐인 세상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면, 그들이 외부 세계를 배척하는 모습보다는 타인, 혹은 세상과 끈질기게 대화를 시도하며 온전한 둘로써 존재할 가능성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과정을 그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니나의 무모한 행동을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려는 적극적인 저항의 몸짓으로 읽을 여지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투쟁은 필요 이상으로 배타적이다. 자신들이 사랑 없이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자식들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니나는 그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로 매도한다. 세상이 마도와 니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가장 큰 피해자들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다. 그들의 연대까지 바란 것은 아니지만, 대화를 통한 이해의 시도조차 없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외부의 모든 것을 적으로 돌렸기에, 영화는 마도와 니나가 둘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자족적인 결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온 세상을 잃어도 너만 있으면 된다는 로맨틱한 카피는 그만큼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며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뜻이지, 당신 외에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공허한 외침은 아닐 것이다.

 

난장판이 된 방 안에서 두 사람이 왈츠를 추는 마지막 장면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냉정하게 보면 원점회귀다. 두 사람의 사랑은 더 애틋해졌을지 모르지만 정작 해결된 것은 없다. 로마로 떠날 돈은 사라졌고, 혈육과의 화해는 불가능해 보인다. 영화의 끝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추억의 노래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잔향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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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는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소재를 택한 만큼 이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움이며, <우리, 둘>의 영화적 성취는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던 장르적 재미는 물론이고, 정말로 세상에 둘만 남은 듯한 두 배우의 섬세한 감정선과 이를 받쳐 주는 영상미는 자칫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니나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하며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여러모로 신선하고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데뷔작인 <우리, 둘>에서부터 과감한 장르적 융합을 시도한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은 이 영화로 세자르 영화제에서 데뷔 작품상을 받았고, 이외에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다. 코로나로 인해 습관처럼 극장에서 볼 게 없다고 말하는 요즘이지만, 좋은 기회로 <우리 둘>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재치 있는 젊은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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