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창작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깊게 생각하고 확실히 행동하라
글 입력 2021.07.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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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경성에 사는 경희는 어렸을 적 오빠의 지지로 이화학당에서 신식 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잡지에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고 이혼을 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선 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모던걸'로 불린다.

 

2020년 서울에 살고 있는 화영은 성적에 맞춰 간 대학을 다니며, 주변의 성화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교직이수를 하는 중인 '착한 딸'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예쁘고 학벌 좋고 직업도 받쳐줄 테니까, 걱정 없네~"라는 말이 어쩐지 불편한 화영은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동아리에 연극 <인형의 집>에 참여한다.

 

세간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경희는 조선의 여성들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을 번역하기로 마음먹는다. <인형의 집>을 읽으며 화영은 점차 용기를 내기 시작하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히게 된다.

 

1920년의 모던걸과 2020년의 페미니스트가 각각 자신들의 꿈과 사회의 요구, 비난 사이에서 갈등하며 싸워가고 그들의 삶이 교차된다.

 

창작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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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모던걸 백년사

 

                 

<모던걸 백년사>는 여성 인권을 주제로 삼은 창작 뮤지컬이다. 2016년 대학로 봄날 아트홀에서 초연을 시작으로 2018년 대학로 해오름 예술 극장에 이어 이번 2021년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3번째 공연을 올렸다. 뮤지컬 자체는 긍정적이다. 이런 소극장에서 보는 뮤지컬은 처음이라 낯설기도 했는데, 좁은 공간을 활용한 연출과 1920년과 2020년도가 공존한 무대가 나에게 시대를 건너 주인공과 직접 소통하는 기분을 들게 했다. 아쉬웠던 건 다루는 소재의 시대적 위치였다. 대사는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단어를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2021년의 지금과 맞지 않는 갈등 사례가 조금 올드하게 느껴졌다.

 

현대 시점의 화영이(유주연) 본 피해는 딱 2010년대에 보고 느낀 것과 같으며, 이슈에 대해 반응하는 주변 인물 또한 그 시절과 같다. 젠더 인지가 높아진 현 세태를 조금 더 반영할 수 있는 요소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또 2021년도에 바라보는 2010년대 중반 모습을 통해 <모던걸 백년사>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가 있긴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모던걸 경희(원근영)의 인생에서 인문학부 국어교육과 화영의 인생까지, 그리고 2021년도의 우리의 모습을 겹쳐볼 수 있었기에, 발전 없는 힐난이 아닌, 올바른 갈등으로 현명하게 성장하는 우리 모두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는 1920년과 2020년도가 공존한 무대, 1920년대의 경희와 2020년대 화영의 대화가 어우러진 뮤지컬로 소극장이 주는 매력과 더불어 다루고 있는 소재가 만난 접점에서 우리가 가장 일상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성 인지 감수성이 대두되기 전, 아직 이런 거로 왜 불편해하는 거야? 하는 시점부터 느껴보고 싶다면 시대 흐름 중 출발점을 찍어보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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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백년사>가 말하는 페미니스트


 

모던걸 경희와 대학생화영은 주체적인 인생을 선택한 노라의 이야기, <인형의 집>을 통해 연결 고리가 생긴다. <인형의 집>은 1879년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에 의해 발표된 희곡이며, 당시 경희는 이 책의 번역을, 화영은 이후 연극 동아리에서 올린 <인형의 집>을 알게 된다. 희곡의 내용은 이렇다.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가던 노라는 한 사건으로 돌변하는 남편의 태도를 보았고 이로 인해 자신이 사람이 아닌 '인형'과 같은 취급을 하는 남편의 모습에 충격받는다. 그렇게 그녀는 본인의 삶을 개척하기로 한다. 희곡 <인형의 집>은 19세기 여성이 가정을 떠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1920년대 경희의 삶과 닮았다. 공연 중 경희 언니의 독백을 통해 알 수 있던 것은, 때리지 않는 남편 자체가 경성에서 소문날 만큼 다정한 조건으로 뽑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남편에 대한 기대치가 낮지만, - 살기 팍팍하니 이젠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지는 듯 - 어떻게 폭력을 가하는 범죄자가 아닌 것이 최선인지 알 수가 없다. 보면 볼수록, 가정 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는 가구 형태가 다양한 시대이니만큼, 다양성을 인정하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지만, 당시는 획일화된 인간사를 지향한 만큼 경희의 행보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오라버니의 도움으로 동경 유학을 마친 경희는 대학을 수석 졸업했으며, 20살이나 나이를 속이고 결혼한 남편과 이혼하였다. 그리고 배움이 짧았던 당시 여성들을 계몽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이 모든 일이 아니꼬웠던 기득권층은 경희를 깎아내리기 바쁘다. 모든 언론사는 경희의 일거수일투족을 부정적으로 얘기하며 관심을 끊지 못했고 이에 경희는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제 뜻을 꺾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모던 보이 이근석(정휘욱)의 사랑도 밀쳐내고, 끝까지 의지를 지켜낸다.

 

2020년대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등쌀에 밀려 교사가 되기 위해 흥미도 없는 교직 이수를 듣는 화영은 평소 순한 성격이라 남을 잘 따르는 편이다. 먼저 부조리를 짚어낼 줄 아는 선배 나진(이예슬)과 함께했으나 그녀의 졸업 이후, 희곡을 쓰는 취미로 지루한 학교생활을 버티고 있다. 화영은 연극 동아리에서 인기가 좋았고, 그로 인해 선배들의 단톡방에 도촬 사진이 공유돼 마치 안줏거리처럼 이야기가 도는 것을 목격하자 그들에게 참았던 만큼 크게 분노한다.

 

이 사건은 화영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결말 또한 어딘가 찜찜하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화영이 쏘아 올린 공은 교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녀를 발단으로 많은 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반, 내가 막 성인이 됐을 때다. 젠더 갈등이 불거질 때기도 하고 참지 않고 서서히 억울한 사연을 무작위로 쏟아내던 때다. 지금도 어느 면으로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젠더를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을 체감한다. 내 주변 환경이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모던걸 백년사>가 전달하고 싶은 페미니즘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주어진 것을 해낼 것, 그렇다면 성별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 논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 문제가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라는 것을, 성별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 또한 말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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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젠더 이슈란?


 

사실 나에게 젠더 갈등은 피하고 싶은 소재다. 성격도 보통 갈등을 일으키는 주제에 끼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맞서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고 하지만, 내게 젠더 갈등은 SNS에서 자주 등장해, 피곤하고 소모적인 문제로 나를 괴롭힌다. 또한, 나에게 젠더 이슈는 간단하지 않다. 불안한 유년 시절을 통째로 다시 떠올리게 하는 아주 부정적인 소재다. 그렇기에 문제에 대한 논의가 아닌, 지독한 피해 사실만 나열하는 언쟁은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다. SNS 피로도를 누적하는 전형적인 원인 중 하나다.

 

그렇다고 젠더로 인해 피해받은 이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본인도 살아가며 그런 피해를 받았고 어떻게 을의 입장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조금은 불공평한 대처로 해결하거나 혹은 그대로 피해를 감내하곤 했다. 내가 여성이라 해서 여성의 편을 들던 것도 아니고 남성의 편도 들던 것도 아니다. 정확히는 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도대체 왜 싸우는 거야? 싸울 시간에 잠이라도 자겠다, 이런 경우가 많았다. 피해에 대한 대처를 마련하고 공생하기 위한 대화가 아닌 그저 전투를 위한 대화가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모던걸 백년사>를 보아도 100년이 흘렀는데도 이 정도라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는가? 19세기를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는데, 몇 년 만에 뚝딱 바뀔 수 있는 것도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었다.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남녀 가리지 않고 내게 조금 피곤했었다. 이런 내게 간혹 본인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고 칭한 사람이 떠오른다. 내 기준으로 그는 젠더 이슈에 심취했고, 극단적인 말만 일삼는 사람이었다. 맞는 말일 수도 있으나, 나는 젠더 갈등으로 인해 피해를 받아도 가해자와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고,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 시대는 흐르고 언제나 변화했듯이, 자연스레 도태한 구시대적 발상은 사라질 것이고 이제 새로운 것을 어떻게 잘 채워 나갈 것인지 고민할 차례가 아닌가 싶다. 비난만 가득했던 댓글도 조금씩 생각을 공유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결국, 싸우지 말고 현명하게 해결하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을 뭐 이리 구구절절 얘기하나 싶겠냐마는, 그냥 간단히 생각하고 실행했으면 좋겠다. 평생 안 볼 사이도 아니고 애초에 '존중'을 담은 생활을 했다면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쉽게 일반화의 오류로 판단하는 잘못은 하지 말자, 아마 오류가 줄어든다면 젠더 이슈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창작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는 현재 7월 24일을 시작으로 8월 15일까지 예매 가능하다, 안전한 관람을 위한 관람 수칙은 예매처에서 확인할 수 있고, 혜화역 1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예그린씨어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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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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