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What Is Poetry? -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글 입력 2021.07.0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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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공부로서 ‘시’가 아닌, 시집으로서 ‘시’를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처음으로 시집을 읽게 된 이유는 조금 더 시적 언어를 사용하고 부드러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존에 읽던 전공 관련 서적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집의 저자는 나태주 시인이다. 시 쪽으로는 문외한인 나조차도 알만큼 유명한 시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 분의 시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나태주 시인이 뽑은 인생 시 125편을 모아놓고, 각 시에 대한 나태주 시인의 의견을 간략하게 적어 놓은 것이다.

 

 

 

1. 성스러움의 언어로서의 시


 

처음 이 책에 있는 시를 읽을 때는 책장을 훅훅 매우 빠른 속도로 넘겨갔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시를 좋아하는 것일까?”

 

이 생각이 들자, 문득 하이데거가 시적 언어만이 성스러움의 언어이며, 시인만이 본래적 실존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것을 떠올리자, 다시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하나하나의 시를 찬찬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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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예술의 본질을 시 짓기라고 보았다.

 

예술은 주관적 활동이 아닌, 존재론적 사건이다. 그가 수많은 예술 중 ‘시’에 집중한 이유는 시는 언어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언어와 존재의 관계에 대한 매우 많은 관심을 기울인 철학자이다. 그에게 언어란, 존재 사건을 개시하는 행위 그 자체를 말한다.

 

즉, 언어가 있는 곳에서만 존재자의 존재를 열어 밝히는 사건이 있고, 또한 언어는 그러한 존재 진리가 밝혀지는 그때그때의 고유한 시작 행위이다. 즉, 시적 언어를 통해 우리는 비본래적 실존에서 본래적 실존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횔더린, 릴케, 게오르케, 트라클, 헤멜의 시에 집중하여 각 시를 분석하였다. 하이데거에게 시인이란 존재를 사유하고 노래하는 자였다. 결론적으로, 시적 언어는 대화의 수단이나 대상의 언어가 아니다. 존재로 향하는 이정표이며, 존재의 밝음에로 나아가도록 하는 길 안내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하이데거는 언어를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재보’이고, 나아가 ‘인간 존재의 가장 큰 가능성을 규정하는 생기 사건’이라고 불렀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수많은 시들 중 위의 하이데거의 예술론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생각되는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초상정사

 

                               이형기

 

풀밭에 호올로 눈을 감으면

아무래도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다.

 

연못에 구름이 스쳐가듯이

언젠가는 내 가슴을 고이 스쳐간

서러운 그림자가 있었나 보다.

 

마치 스스로의 더운 입김에

모란이 뚝뚝 져버리듯이

한없이 나를 울렸다 보다.

 

누구였기에

누구였기에

아아 진정 누구였기에……

 

풀밭에 호올로 눈을 감으면

어디선가 단 한 번 만난 사람을

아무래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하이데거의 특성은 쉽게 말하면, 흔히 우리가 시에서는 ‘순수함’을 찾을 수 있다는 말과 어느 정도 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2. 단 한 페이지로 만나는 다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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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속에 시인이 살아온 삶이, 그가 느꼈던 감정들이 압축적으로 내재해 있다. 한 페이지의 짧은 글로 어떤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경험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며, 시를 읽는 이유를 느끼게 한다.

 

 

봉선화

 

                                     김상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을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 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누나.

 


이 시를 읽으면서 마치 내가 작가와 동일한 경험을 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시인은 누나와 함께 했던 즐거웠던 시간을 떠올리며, 누나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어렸을 적에 여름날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던 기억들이 떠올리며 그 당시의 좋았던 잊고 있던 기억들 또한 마음속에 상기된다.

 

이처럼 시를 통해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 시인이 살아온 시간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독자 또한 개인적인 경험을 상기시킬 수 있다.

 

이런 경험은 서로 다른 타자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만나는, 앞에서도 말했듯 경이로운 순간이다. 같은 경험을 해도, 각자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느낌과 생각이 합쳐져 정반합의 ‘합’으로 나아간다.

 

이 두 가지의 특성이 이 책의 제목인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처럼 시는 존재론적인 성찰이 가능하게 해주며, 다른 사람의 세계를 엿봄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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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시인 나태주
 
1945년 충남 서천군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후 4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공주 장기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직 생활을 마친 뒤, 시작에 전념하고 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등단 이후 50여 년간 끊임없는 창작 활동으로 수천 편에 이르는 시 작품을 발표해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풀꽃]이 선정될 만큼 사랑받는 대표적인 국민 시인이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시집, 산문집, 동화집, 시화집 등 100여 권이 있으며 공주문화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유심작품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는 공주에서 공주풀꽃문학관을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풀꽃문학상, 해외풀꽃시인상, 공주문학상 등을 제정·시상하고 있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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