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을 대하는 자세 -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고백과 자각

예술가에게 듣는 삶의 조언
글 입력 2021.06.2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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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웹툰 기반 드라마 “알고있지만”의 첫 방송이 시작되었다. 조소과의 로맨스를 그린 이야기로 화제가 되었던 부분은 주인공 유나비의 전 남자친구가 주인공의 모습을 조각한 상이다.

 

대상화된 이 조각상은 ‘뮤즈’라는 이름으로 소비 당한 여성과 예술이란 이름 아래 묵인되었던 비윤리적 행위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예술가는 예민하고 독특하다는 편견은 예술가와 주변 사람을 괴롭힌다. 반대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 등의 선입견이 예술가의 노동 가치를 깎아내린다.

 

도대체 예술가는 무엇일까. 예술이란 정말 현실과 동떨어져서 독특하고 특이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걸까. 굶주리고 배고프지 않으면, 미치지 못하면 예술을 할 수 없는 걸까. 의문이 들 때쯤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솔직하게 담은 인터뷰집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 고백과 자각”을 접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를 내어 이 책의 페이지를 그들 자신이 채운 고백의 영역이 존재하며, 무대에 서 있는 현재를 인지함으로써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던 과정을 담은 자각의 영역이 있다. (……) 여기 등장하는 모두가 우리와 닮은 구석을 한두 가지쯤은 지니고 있으니, 거부감 없이 그들의 문장에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새롭게 여는 말을 살펴보았다. 말 그대로였다. 많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이 무색하게 26명의 예술가는 치열하게 삶을 고민하고 나를 찾아가느라 애쓰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거나 이기는 과정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비교적 특이한, 별세상이라 느껴지는 예술가의 삶에 거부감없이 스며들 수 있었다.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고, 때론 마음속 깊이 새겨두기까지 했다.

 

담담하게 풀어내는 고백과 성찰의 말은 특정 직업군의 고충 토로라기보다 인생 선배의 고민 상담에 더 가까웠다.


 

 

예술이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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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저도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서 그래요. 하지만 이런 예민함을 지닌 게 옳은 거라고 해도 남을 찌르면 안 되는 거예요. 가시로 어떤 정의를 보호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몸을 흔들면서) 이러고 다니면 온갖 사람들 다 찌르고 다니는 거니까. - P. 76, 배우 정욱진

 

생각해보니 저는 죄송할 일이 아니면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죄송하다고 하지 마. 네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 우리 다 동료끼리 하고 있는 건데 뭐가 죄송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 스태프 친구가 이렇게 말했대요. 자기 여기서 일하는 3, 4년 동안 자기를 ‘동료’라고 해준 배우가 처음이라고. 그 얘기를 들은 순간에 약간 멍, 했어요. (……) 이야기를 듣는데 이게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본인의 감정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고 해서 그걸 남들에게 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배우들이요. - P. 189, 배우 기세중

 

 

비단 예술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피곤하고 지치면 짜증이 늘어난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다스리는 사람이 있는 한편 남을 날카로운 가시로 찌르는 사람이 있다. 또 감정을 인지하면서도 남에게 화풀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유가 없어지는 상황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시에 찔려도 되는 사람이 없는데 남에게 감정을 풀어도 되는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저는 그 누구보다 철이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배우들이라고 생각해요.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우리의 공연을 통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 나쁜 짓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돼요’라는 설정이 들어가야죠. 그 나쁜 짓이 너무 화려해 보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만약에 배우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그의 매력 덕분에 나쁜 행동도 멋져 보인다? 그러면 그건 극이 꼭 해결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관객분들이 돌아가는 일개 범죄에 박수를 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시면 안 되잖아요. - P. 202, 배우 김경수

 

육하원칙 중에서 ‘왜’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저또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요. - P. 113, 배우 박지연

 

 

다른 배우의 입을 통해 자신의 예민으로 남을 찌르지 말라는 이야기가 확장된다.

 

드라마 ‘알고 있지만’의 전 남자친구처럼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실존하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행동이다. 예술이 ‘왜’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일이라면 소수자, 약자를 배제할 이유. 누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인터뷰집을 읽고 있자면 ‘알고 있지만’에서 전 남자친구의 행태에 왜 시청자까지 화가 나는지 좀 더 정확히 깨닫게 된다. 웹툰 작가와 드라마 작가가 무엇을 고민하며 어떤 말을 하기 위해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도 확실해진다.

 

예술가는 예민하다, 예술가는 철이 없어야 한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책임을 질 수 있다면. 표현의 자유는 경직된 사회를 말랑하게 만들어 생각할 거리를 주고 닫힌 입을 대신할 수는 있되 책임 회피의 면죄부는 아니다. 그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던 면담자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자신의 말이 주는 영향력을 알기에 더 조심하고, 때론 부담감으로 느끼면서도 옳고 그름을 알아가려 하는 자가 바로 예술가 아닐까.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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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이란 말은 참 거창하게 들린다. 점심시간에 새 음식점을 찾아 나서거나 새 장르의 음악을 접하는 것도 도전일 텐데, 인생을 전환하는 큰 사건만 도전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도전이란 말이 들리면 괜히 기가 죽는다. 성공하는 사람이 있으면 패배하는 사람이 있는 탓이다.

 

당장 내일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생각해보자. 처음 듣는 언어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전혀 다른 문화를 나누며 사는 일은 흥미롭지만 그만큼 겁난다. 불안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익숙한 상황은 권태롭지만 아늑해서 도전 정신을 막는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내가 하루하루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P. 63, 가수 김형중

 

계속 하고 싶어요. 단 1%라도 더 도전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요. - P. 84, 배우 황민수

 

다들 즐거우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도전하는 게 너무 무섭고, 너무 무섭고, 너무 두렵고, 너무 하기 싫은데요, 이상하게 또 너무 도전하고 싶단 말이에요. - P. 100, 음악가 유빈

 

변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해요. 변하는 게 얼마나 좋아요. 내가 이런 걸 해보고 싶으면 하는 거고, 했다가 아니면 다시 돌아오면 되는 거고. 그렇죠? - P. 217, 음악가 제이미

 

김재범, 네가 못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 일단 해봐. - P. 156, 배우 김재범

 

 

행복한 일을 하며 사는 것 역시 비슷하다. 모두가 바라는 일이지만 누구나 선뜻 시도하지 못한다. 당장 생계가 불안하면 행복보다 안정이 중요하게 된다. 지금 당장 생계가 불안하다면 원하는 음악을 하고 있지 못할 거라는 음악가 김형중의 말로 별세계 사람 같았던 예술가가 옆 동네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예술가도 생계가 걱정인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계가 불안하지 않더라도 불안정한 미래로 뛰어드는 건 생각 이상으로 불안하고 겁난다. 누구나 똑같다. 이직을 준비 중인 사람도, 전공과 관계없는 일을 하려는 사람도, 하던 일을 관두고 여행을 가려는 사람도 하다못해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도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불안하고 두렵고 겁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려고 발버둥 친다. 행복하기 위해 도전한다. 직업에서 예술에서 행복을 찾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음악을 끊고 무대에서 나오면 배역을 완전히 잊으면서 삶과 일의 중심을 찾는다. 삶과 일의 밸런스. 워라밸. 나 자신을 탐구하며 행복하기 위해 도전한다. 직장인이 그렇듯이 예술가도 삶 속에 일이 녹아 있으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닌 모양이다.



 

매사 부끄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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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여줘야 하는 순간에 기죽지 않게 끊임없이 나를 갈고 닦아야 하는구나. - P. 274, 음악가 겸 배우 인성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실전에서 떨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기회가 오지 않는다며 한탄하다 정작 기회가 찾아왔을 때 허둥지둥하던 사람도 이해할 것이다.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은 참 어렵다는 것을.


 

잘 안 된다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사실 열심히 안 해요. 저 정도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 P. 122, 배우 백형훈

 

 

뼈 아픈 충고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한 사람, 특히 연예인을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저 가수의 돈과 내 돈이, 서로의 영혼이 바뀌면 좋겠다고 망상한다. 인터뷰를 잘 살펴보면, 그렇게 우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돌볼 수 없을 만큼 바쁜 삶을 살았다. 일하고, 연습하고, 다시 일하는 인생. 쉬는 것보다 일하는 걸 더 좋아했다는 일벌레.

 

그들의 삶을 답습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는 물어볼 일이다.


 

 

나 자신을 아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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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사람이 자기만 알고 있는 아픔과 슬픔이 있잖아요. 그런데 누구나 그걸 감추기 위해 연기를 하며 살아요. 마치 내게는 아픔과 슬픔이 없는 것처럼. - P. 225 배우 김수하

 

 

이미 과부하 상태의 대한민국에서 사느라 모든 것이 지칠 때는 이런 말도 도움이 된다. 나만 힘든지, 원래 다들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자유로워 보이는 예술가를 동경한다.

 

당연하게도 예술가 역시 예술가 나름의 고통이 있다.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 일한 것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원하는 일과 하는 일이 다를 때 등 수많은 갈래로 괴롭다. 안정적이지 않은 수익으로 미래가 불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만 하다 보니 정작 나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도 있다.

 

학교든 연습실이든 회사든 공연장이든 우리는 끊임없는 고난 속에 산다. 어떤 삶도 오로지 행복하고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에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나라는 사람이 전체적으로 다 바뀐 거예요. 제가 제 말을 들어주게 됐으니까요. 어, 자유롭게 살고 싶어? 나가고 싶다고? 오케이, 우리 한번 나가서 살아보자. - P. 325 배우 겸 음악가 안희연

 

1등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 이유로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미래를 미궁 속으로 빠뜨려버렸다면……. 결국에 나를 신경 써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게 1등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노래가 너무 어렵다고 해서 회사에 “노래 못 하겠어요” 해도 결국 그 노래는 제가 해야 해요. “엄마, 너무 힘들어” 그래도 엄마가 대신 노래를 불러주실 수는 없는 일인 거예요. 어찌 됐든 내가 극복해야 하는 거죠. - P. 277 배우 겸 음악가 인성

 

오늘은 쉽지만 내일 갑자기 힘들어질 수 있고, 남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갑자기 훅 와닿아서 마음이 흔들릴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고, 할 수 있는 만큼 안 하고 나 자신을 낮출 때도 있고,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데 왠지 창피할 때가 있고. 그럴 때 나를 지켜줘야 해요. - P. 303 배우 전나영


 

나 자신을 아낄 것.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지켜줄 것.

 

배우 겸 음악가 아무리 주변에 힘이 되는 사람이 많아도 결국 내 일은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내 감정은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른다면 감정에 휘둘리지만 차근차근 대화하고 배워나가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학업과 업무, 기타의 이유로 삶이 지칠 때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 역시 자신밖에 없다. 당장 쉴 수 없는 상황이어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보듬는다면 지친 삶에 조금은 숨통을 틀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목표는 각기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잘 알게 되어 행복해지는 일일 테니까.

 

*

 

모든 말이 아까워 최대한 줄이지 않기 위해 2권으로 만들었다는 기자님의 말이 이해될 정도로, 모든 말이 좋아 후기에 채 다 담기 어렵다. 책 한 권에 세상이, 삶이 담겨있다.

 

사람들이 바라는 여성 예술가에게서 벗어나 더 많은 여성 예술가가 이 길을 쉽게 올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음악가 겸 작가 오지은의 말은 이유 없이 힘이 나고 사람은 살아온 인생대로 말하고 음악 하는 것 같다는 음악가 김현철의 말은 그간 나의 언행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의 음악은 차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다채로운 음악을 접하기도 내밀기도 어렵다는 음악가 에릭남의 말은 또 한국 문화 전체에 해당되는 말 같아 씁쓸하고 나라는 브랜드에 부담감을 느낀다는 음악가 권정열의 말은 화려한 성공의 이면을 생각하게 한다.

 

팬데믹으로 힘든 시기다. 공연이 조기 폐막하는 때도 많았고 취소되는 일도 잦았다. 온라인 콘서트, 실황 중계 등으로 숨통을 트긴 했지만 예전과 같기 힘들다. 모두가 마음 졸이면서도 각자의 길에서 각자에게 충실한 26명의 예술가를 보고 있노라면 막막한 생을 사는 많은 사람이 떠오른다. 어디 하나 쉽지 않은 삶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무엇일까. 책을 덮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 책을 읽는 동안 예술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자면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 싶다. 누군가에겐 직업일 뿐이며 누군가에겐 꿈을 이룬 위대한 일이 되겠지만 철없고 예민한 사람만 할 수 있는 특수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무슨 일에든 편견과 선입견은 왜곡된 대상을 보게 한다. 예술가는 이렇다는 편견을 내려놓고 본다면 직장인의 애환을 같이 느끼고 삶의 고됨을 같이 이겨내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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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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