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쓰기의 진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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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너무 많으면 듣는 사람이 피곤하잖아. 말을 줄이는 것도 필요해"
나는 말이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머릿속에 든 생각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말로 모두 표현해버리면 내가 '강연자'가 아닌 이상, 듣는 사람은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의 반만 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하지만 노트북 타자기는 달랐다. 아무리 많은 말들을 쏟아내도 끄떡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교생 중에 가장 타자가 빠른 아이가 된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을 끊임없이 쏟은 경험 덕분이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이 맞다. 지금도 여전히 타자왕을 자처하며 생각이 많을 때는 투둑투둑, 타닥타닥 기분좋은 소리를 내며 글쓰기를 한다.
시작은 소설 카페였다. 다시 들추기 부끄러운, 그러나 어렸기에 귀여운 과거다. 나는 소박하게(?) 연애 소설을 썼다. 그것도 8살 때부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 책을 좋아했기 때문인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알게되고 적극적으로 이용한 시기부터 나는 곧바로 소설 카페를 섭렵했다. 하이틴 드라마와 로맨스 영화, 드라마에 빠진 이후부터는 연애 소설을 읽는 것에 열중했다. 온갖 재미있어 보이는 소설은 다 읽고, 새로고침을 무한반복하며 좋아하는 소설 이야기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남의 글을 기다리는 것이 힘들어서 그냥 내가 써버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글쓰기에 진심이었던 나는 8살때부터 11살 때까지 쉬지 않고 소설을 썼다. 그러다 11살 때 엄마에게 '중단 권고' 판정을 받고 깔끔하게 소설 쓰기를 접었다.
시간이 흘렀다. 머리가 커가고 삶의 깊이에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하니, 야속하게도 소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자기계발서를 끼고 살았다. 예컨대 공부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공부법 책이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가이드를 제시하는 에세이를 모았다. 비현실적인 내용이 가미된 소설과는 달리 자기계발서는 지극히,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내가 쓰는 글은 더이상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소설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곳. 내가 사는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파고드는 철학적인 글만이 남아있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덩달아 초진지모드에 진입하는 그런 글 말이다.
블로그에 글을 써내려갔다. 블로그의 목적은 말로써 다 표현하기 힘든 생각 덩어리들을 방출하기 위함이었다. 사적인 이야기더라도 누가 본다고 하더라도 자랑스럽게 '공개된 일기장'이라는 카테고리를 내걸며 글을 썼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씩 써가니 블로그에 약 100개의 일기장을 쌓게 되었다. 불과 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글쓰기에 돌이킬 수 없이 '진심'인 사람이란걸 깨닫게 되었다.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된 참으로 반가운 깨달음이었다. '아, 나는 영원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구나.' 직감했다. 그 계기로 나는 거침없이 나의 글을 퍼날랐다. 브런치 계정을 만들어서 글도 올리고, 인스타그램 본계정에 써둔 글을 링크로 걸기도 했다. 지금 돌아와서 왜 그때 그렇게 내 글을 홍보했나 생각해보면 '글이 읽히길 바래서'였다. 말로 하는 음성언어도 '표현'과 '소통'을 위해 존재하듯이, 글로 쓰는 문자언어도 마찬가지로 같은 목적을 지닌다는 걸 느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트인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블로그에서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선정한 책으로 독서한 것이 '우물'이라면 아트인사이트는 '강' 또는 '바다'였다. 나와 같이 글을 쓰고, 사색하기를 멈추지 않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다양성과 진정성의 향기가 한가득 풍기는 곳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글을 쓰고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아, 더 나은 '글쓰기의 진화'를 예감했다. 에디터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현실이 되었다. 방구석 블로거에서 '에디터'로 나아간 지 어느덧 4개월 차, 벌써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다.
기분 좋게 예감한 상상은 오늘의 현실이 되었다. 맥락없이, 내 마음대로 글을 써내려갔던 블로거 시절과 지금의 에디터 활동을 비교하면 차원이 다르다. 글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글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글을 쓰는 태도가 달라졌다. 아트인사이트의 구성원의 글을 읽으며 더 많이 자극받고, 영감을 받았다. 그 어느 때보다 나의 글과 타인의 이야기에 진지해졌고, 동시에 '글맛집'에 다니듯 글들을 더욱 음미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내가 정의한 것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제대로 글쓰기와 문화의 향기에 취해버렸다.
에디터로 살아간 덕분에 나와 세상에 대해 보다 친해질 수 있었다. 우선 나라는 사람이 어떤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자서전적 이야기를 주로 다뤄 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관점의 다양성을 배웠다. 블로그와 달리 아트인사이트에서는 특정 분야에 특별한 관심과 덕력을 지닌 사람들을 두루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이따금씩 '관점의 전환'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어느새 나의 글쓰기는 진화하고 있었다. 서툴렀지만 꾸준히 읽고, 써 온 경험 덕분에 이제 글쓰기는 '취미'를 능가하는 '관성'이 되었다. 관성이란 물체가 외부로부터 힘을 받지 않을 때 처음의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나 또한 노트북을 뺏기거나 타자기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글을 써나가는 성질을 획득했다. 돌이킬 수 없는 변화, 그러나 삶을 더 윤택하게 해주는 변화라면 이것이 바로 진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이 진화의 정점은 아니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배우고, 느끼고, 나아가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은 이제 막을 내리지만,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신지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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