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세상이 멸망하는 날, 초능력이 발현된 사람들 - 꿈 일기 (1)

강렬한 기억을 기록으로 담다
글 입력 2021.06.14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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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공상을 즐기는 사람인지라 틈날 때마다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주로 판타지 장르의 영화, 드라마, 웹툰의 영향을 많이 받은 덕분인지 현실과 동떨어진 제 2세계의 일을 그려냈다. 이러한 상상의 여파로 종종 드라마틱한 판타지 영화가 펼쳐지는 꿈을 꾸곤 했다.

 

때로는 좀비나 귀신같은 허상의 존재가 나타나기도 했고, 때로는 하늘을 나는 능력을 얻어서 전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장면들이 눈앞에 등장하고, 생생한 감정과 느낌을 전달받을 때는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갔다. 오히려 꿈속 세상이 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아무래도 반복되는 일상을 싫어하고 모험심이 강한 성격이기에 이러한 사고를 하게 된 듯하다.

 

이처럼 신기한 꿈들을 꾸고 나면 주변 지인들에게도 들려주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함으로써 꿈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과 나의 이상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털어낸 것이었다. 대부분 꿈이 굉장히 긴 편에 속했기에 줄거리를 다 전해주느라 중간마다 생략된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비교적 꿈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편이어선지 머릿속에 남은 파편들을 모두 전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고, 가끔은 자신도 그러한 꿈을 꾸고 싶다고 해서 뿌듯했던 적도 있다.

 

거의 매일 꿈을 꾸는 편이기에 인상 깊은 꿈 역시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특정한 꿈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놀라운 꿈을 꿨다 하더라도 며칠이 지나면 또 다른 결의 기상천외한 꿈을 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할 꿈은 여느 때보다 충격적인 꿈이자 다시는 꾸지 못할 꿈이기에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한다. 그 당시 꿈에서 깨자마자 바로 일기장에 기록했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낱낱이 전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날의 꿈 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세상이 멸망하는 날, 초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점 하나. 일반인인 나

 

나는 어딘가로 황급히 떠나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내가 타야 할 천 번대의 버스가 계속해서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물리적인 힘에 이끌려서 몇 번이나 타지 못했다, 아니 탈 수 없었다. 반복된 시도를 통해 가까스로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한 여자와 말문을 트게 되었다. 서로 버스를 탈 수 없었던 이상한 일에 대해 토로하며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를 잡자고 했고, 가장 안전한 곳을 고르기 위해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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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 둘. 능력자들의 리더인 나

 

세상에 멸망이 찾아오는 날, 한국 기준으로 초능력이 발현된 사람은 10명 남짓이었다. 이들 중에는 내가 아는 친구나 연예인도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외모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을 지도하는 리더였다. 능력에는 불, 물(얼음), 창조, 복제 빛, 어둠, 치유 등이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빛과 어둠이 가장 센 능력으로 여겨졌고, 내 능력은 선한 쪽에 가까운 빛이었기에 리더로 승격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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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몰라도 그들은 나에 대해 상당히 협력적이고 충성적인 태도를 보였다. 딱 한 명, 치유 능력자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녀는 정체를 알 수 없었고,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서 접근하지 않았다. 치유가 필요했을 때도 그녀를 찾지 않고 빛의 능력으로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리더로 임명된 직후에는 한 명 한 명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지도해주었다. 대부분 손을 이용해서 능력을 사용했기에 손의 움직임에 따라 바뀌는 기술에 대해 알려주었다. 또한, 이에 관한 생각에 집중해야만 능력이 증폭된다고 조언해주었다. 구체적으로 불 능력자 같은 경우는 강하게, 물(얼음) 능력자는 섬세하게 다룰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각의 능력들은 <어벤져스>, <엑스맨>,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영화에서 표현된 것과 비슷했다. 공격, 방어, 치유처럼 부여된 설정만 달랐다. 이때 빛과 어둠은 조금 신선했는데 빛은 에너지를 주고받거나 널리 퍼뜨리는 게 가능했고, 특정한 형태를 만들어서 공격형이나 방어형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어둠은 자세하게 표현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악한 에너지를 주입하거나 악령을 불러오는 능력을 갖춘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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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지도를 마치고 나니 다른 종족으로 이뤄진 괴물부대가 쳐들어오는 미래가 보였고, 우리는 이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진행해야 하는 듯 보였다. 몇천 명의 부대를 고작 10명이 상대하기에는 수적으로 열세한 듯 보였지만,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서인지 다들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어둠 능력자에게 명령해서 온 세상을 까맣게 덮으라고 지시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그들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천천히 하늘이 어두운 보랏빛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데 얼마나 소름이 돋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서울, 지하철이 있는 넓은 장소에서 본격적인 전투태세를 갖췄다. 길거리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피신시키기 위해서 마이크를 들고 크게 외쳤다.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가장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어둠이 걷힌 후의 보랏빛과 핑크빛으로 뒤섞인 하늘이었다.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온 건지 능력이 풀린 건지는 몰라도 당장 죽을지도 모를 그 상황에서 본 하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평생 처음 본 비현실적인 상황에 그때 처음으로 꿈이라는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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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하고자 했는데, 인셉션의 경우는 팽이였다면 나는 핸드폰 카메라였다. 꿈속에서 사진을 찍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만약 사진이 찍혀서 이를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현실이라 믿기로 했고, 사진이 찍히지 않고 앨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면 꿈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다르게 사진은 너무도 선명하고 아름답게 찍혔기에 한참이나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점 셋. 꿈에서 깬 나

 

꿈에서 깬 후, 핸드폰 앨범을 들여다봤을 땐 역시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물론 의식을 차리고 나서 그것이 꿈이었음을 깨달았지만, 그저 진실이길 바란 마음으로 했던 행동이었다. 가장 강렬한 기억을 선사하면서 진한 여운을 남겼던 꿈이었다. 내가 히어로물의 주인공이 된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때 시점이 일반인과 능력자 둘로 나뉜 것도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두 입장을 모두 경험하면서 그 세계에 흠뻑 취해있다가 돌아온 듯하다.

 

물론 허구적이고 비현실적인 꿈속의 이야기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매력적인 세상이 내게 잠시라도 펼쳐졌다는 사실이 행복할 따름이다. 나처럼 판타지를 좋아하거나 꿈꾸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꿈과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렇기에 각자의 세상이 더욱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오늘 들려준 나의 꿈 이야기가 흥미로웠길 바라며 마치려고 한다. 이를 읽은 모든 이들이 좋은 꿈을 꾸고, 편안한 밤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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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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