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신 복수해드립니다 - 모범택시 [드라마]

글 입력 2021.06.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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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해자들을 참교육하는 서사물이 늘고있다. 법 대신 직접 가해자들을 처단해 피해자들이 받은 몫을 그대로 돌려주거나,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그런 서사말이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모범택시>도 가해자들을 직접 복수하는 일명, 사이다 드라마다. <모범택시>가 사이다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열광을 어떻게 이끌어냈는지, 그리고 결말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게 된 이유는 찾아봤다.

 

 

 

법을 불신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을 대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사적으로 복수의 열망으로 이어졌고, <모범택시>는 시청자들의  열망, 욕구를 반영했다. 공적 제재가 범죄자에 합당한 벌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적으로 합당한 몫을 돌려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범죄 뉴스의 댓글에는 경찰에 대한 불신, 법적 처벌의 수위가 낮다는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렇다면 가해자에 내려진 사법 제재가 합당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모범택시>는 법을 불신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을 대변했다.  피해자들의 의뢰를 받아 운행하는 모범택시는 우아하게 말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범죄자들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기보다는 몸소 직접 가해자들을 대신 복수해주기 때문이다. 법을 신뢰하지 않는 이 시대에 “대신 복수해준다”라는 설정, 법과 각종 압박에도 개의치 않고, 오직 복수 하나만을 위해 전개해 나가는 스토리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현실에선 절망과 좌절만이 있으며, 그렇기에 무기력하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이야기라는 환상을 통해 이루고, 위로받길 원한다. 그렇다 해도 <모범택시>에 시청자들이 열광한 이유는 그 환상이 실제 현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모범택시>에 등장하는 가해자는 실제 사건의 가해자들을 모티브로 했다.

 

첫 화에선 출소한 성범죄자 '조두순'의 이름을 바꿔 '조도철'로 나타냈다. 출소 후 그를 태운 모범택시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빼돌리고, 사설 감옥으로 납치하면서 시작한다. 그다음으로는 웹하드 대표인 ‘양진호’를 유디스크의 ‘박양진’으로 바꾸었으며, 양진호를 닮은 비슷한 외형의 배우와  말투를 선보였다. 마지막으로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오철영'으로 이름 지었고,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그 모습을 닮은 모습을 내보였다.

 

가해자로 등장한 인물들은 실제 사건의 가해자들을 모티브로 했고, 쉽게 유추할 수 있도록 성의 없이 바꾼 가명을 사용했다. 한 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한 가족의 삶을 파괴한 이들,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그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이런 점에서 시청자들은 극 중 인물을 현실의 '그' 인물에게 대입했다. 실제로 합당한 죗값을 받지 않은 그들이 드라마에서나마 죄값을  돌려받도록 하는 것. 이것이 부인과 의혹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게 복수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모두 모범택시의 타겟이 되었다. 자신이 말하던 ‘광산’에서 폭발과 함께 생을 마감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행동으로 애착이 깊었던 아들에게 피해가 된 사실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같은 몫이라 할 수는 없지만,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드라마에서 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도 시청자들은 통쾌해한다.

 

 

 

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



실제 범죄 사건을 각색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많았다. 그중, 실제 사건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타인의 고통을 창작물로 만드는 일은 또다시 피해자들의 상처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모범택시>도 이런 우려에 대해서 자유롭지 않았지만, 다른 길을 걸어갔다. 가해자는 특정하되, 피해자 유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을 각색했다.

 

복수 의뢰를 받고 모범택시는 의뢰를 받아들일지 회의를 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피해자에게 비난이 가지 않도록 대변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예를 들어, 학폭을 당한 학생의 의뢰가 들어왔을 때, 대표는 이렇게 답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죄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는다. 누가 돌을 던졌건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니까"라며, 흔히 소년법으로 알려진 법은 물론,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 면죄부가 되지 않음을 단호하게 밝힌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선 가해자보다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고, 조롱한다는 점을 반박한다.

 

이것만으론 부족했는지, 에필로그에서 피해자에 대한 영상을 덧붙인다. 화성 연쇄살인범인 이춘재 대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인물에 대한 짧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첨부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위로를 대신한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연출로 <모범택시>는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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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후반에서는 초반과 달리 시청자들 사이에서 여러 반응으로 갈렸다. 무엇보다 초반과 달라진 분위기를 들 수 있다.

 

시청자들은 가볍고 유쾌한 톤을 원했으나, 후반부에는 분위기나 톤이 무거워졌다. 초반에는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액션, 비교적 유쾌하고 오락적인 분위기를 유지했고, 무지개운수의  복수를 풀어내는 방식이 유쾌했다. 그러나 결말에 다다를 즈음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졌고 특히, 백 회장의 쌍둥이 형제들에 대한 복수 의뢰에서는 무지개 운수에 제재를 가하는 검사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사적 제재는 옳은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풀어내야 하는 <모범택시>는 다소 무거운 톤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초반의 유쾌한 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게 된 것이다.

 

초반과 다른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와 모범택시를 저지하는 검사와의 갈등이 점화되면서 <모범택시>의 기존 유쾌한 분위기를 선호하던 시청자들은 무거운 분위기의 <모범택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시청자들은 판타지를 원했고, 제작진은 현실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은 무지개 운수에 감정을 이입해 무지개 운수의 복수가 성공하기를 원하고, 이후 사이다를 원한다. 그러나, 이 사이에 검사라는 인물을 배치시켰다. 이 검사를 통해 '사적 제재란 과연 옳은 것인가',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가' '사적 제재는 범죄일 뿐'이라는 질문에 직면하도록 한다.

 

검사는 계속 무지개 운수의 뒤를 쫓고, 김도기(이제훈 役)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시원한 복수가 끝나고 꼭 강하나 검사가 그 현장에서 증거를 찾아내거나 의심을 품는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니, 결국 무지개 운수는 사적 제재 행위를 들켜버린다. 이를 보고 검사는 가해자들에게 억울함을 '화풀이'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한다.

 

같은 맥락으로 무지개운수의 복수 대행 서비스를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백 회장이 배신을 했기 때문이다. 백 회장의 배신, 죄수의 탈출로 위험에 빠진 무지개 운수를 두고 대표는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며 자신들이 해왔던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언급한다. 무지개 운수는 장기 밀매 조직 백회장과 결탁해 가해자들을 납치해 백 회장에게 넘겨왔다.

 

백 회장이 무지개 운수를 배신하고 죄수들을 빼돌리게 되고, 그로 도망친 죄수들은 복수의 칼날을 무지개 운수에게 겨눈다. 백 회장과 함께 무지개 운수를 이 상황을 두고 백 회장의 비서는 "너희들도 죄수들에겐 복수의 대상일 뿐이야"라는 말을 한다. 과연 이들이 이 말을 할 자격이 있으며, 피해자들의 사적 복수에 이 말을 들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백 회장, 쌍둥이 형제는 각각 징역 20년,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물론, 무지개 운수팀은 검사와 그의 상사의 도움으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된다. 범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고, 20년 이상의 시간을 붙잡아 놓는다고 해서 정의는 실현되었다고 이를 사이다 결말이라고 단정 짓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앞서, 대신 범죄자를 복수해준다는, 현실에서는 하지 못하는 금기된 욕망을 드라마에서 이룬다는 점이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후반으로 가면서 이러한 시청자들의 욕망은 저지당하고, 복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따라서 판타지였던 세계가 조금씩 환상이 옅어지면서 현실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사이다를 원한다. 절망만이 남아있고, 법이 범죄자들에게 마땅한 몫을 가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고, 이를 드라마에서라도 해결하고, 그것이 정의가 실현되는 또다른 방식이라 생각한다. 초반에는 직접 복수하는 판타지를 보여주었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시청자들의 이런 욕망은 저지당하고,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말로는 설득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유쾌한 범죄 오락물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겐 이런 직관적인 의미 전달을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가해자를 처단한다는 컨셉, 세심한 연출, 화려한 액션, 레트로 신스 음악이 무겁고 가벼운 톤 사이를 넘나드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 사이다 드라마라는 점에서 대리만족하게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가 끝난 지금에도 계속 범죄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동시에 <모범택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범택시>의 시즌2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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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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