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튜브에서 펼쳐지는 이창호의 유니버스 [문화 전반]

코미디엔 그들의 철학이 담겨있다
글 입력 2021.06.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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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헤엄쳐온 2m 펭귄 펭수, 꼬리 밟힌 피글렛의 주인공 능글맞은 목소리의 최준, 중년 아저씨들의 우정과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한사랑산악회까지. 왜 우리는 가상으로 존재하는 캐릭터를 좋아하고 그들이 만든 세계를 즐기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창호가 만들어낸 유니버스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일까?

 

 

 

빠져드는 이창호의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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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1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 "이호창"

아이돌 그룹 매드몬스터의 "제이호"

한사랑산악회 부회장 "이택조"

그리고 코미디언이자 유튜버 "이창호"

 

이창호는 KBS 29기 공채 개그맨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과 "빵송국"에서 코미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창호는 코미디언이라 부르기 보다 희극인이라고 칭하고 싶다. 위의 관련이 없을 것 같던 인물들은 모두 이창호가 창조한 캐릭터들이다. 완전히 캐릭터에 동화돼버린 듯한 모습은 몰입과 동시에 유머가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리얼리티한 디테일은 웃음으로 승화된다.

 

뉴미디어가 등장하며 코미디계의 판도는 뒤바뀌었다. 2000년대 대한민국의 웃음을 책임졌던 "개그콘서트"는 먼 거리에서 제한된 시간에 심의에 맞춰 개그를 보여줘야 했다. 뉴미디어 유튜브에서는 가까이에서 제한 없이 날 것의 자신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다.


부캐릭터들마다 스토리가 있다. 살아온 시대, 지금 처한 환경, 각자의 성격, 다양한 상황에서의 모습들이 곧 스토리다. 그런 스토리들이 엮여있는 것을 세계관이라고 한다. 유튜브 세상에도 세계관인 유니버스가 있다. 유니버스는 영상이 업로드되고 스토리가 쌓이면서 확장돼가고 있다. 특히 시청자의 참여와 함께 세계관은 리얼리티가 짙어지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판이 되었다.

 

가령 재벌 3세 이호창이 미국 유학을 했다는 콘셉트에서 같이 학교 다니던 학생이라며 그의 소소한 생활을 입증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로 인해 '이호창'이라는 캐릭터가 생생해지고 대중이 세계관을 확장해가며 즐거움은 배가 된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고 함께 만들어가기에 더욱 사랑받는 뉴미디어 코미디판이 된 것이다.

 

 

 

하이퍼리얼리즘 코미디


 

이렇게 몰입하여 참여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이창호가 캐릭터가 되어버린 듯한 일체감이다. 결합과 융합은 다르다. 결합은 물리적으로만 캐릭터와 사람이 붙어있는 것이지만, 융합은 만들고자 하는 캐릭터와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 완전히 어우러져 새로운 인물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빙의가 된 것처럼 이창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온전히 그 사람이 된다.

 

한 사람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대를 생각하고, 사고와 생각. 생활방식을 모두 이해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창호가 캐릭터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엄청난 탐구와 면밀한 관찰과 분석, 노력이다. 무심코 지나쳤을 복장, 사물, 표정, 제스처, 눈빛, 발성까지 온전히 그 사람을 표현해낸다. 섬세한 캐릭터 묘사가 있기에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하고 빠르게 몰입하는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이창호가 구현했던 몇몇 캐릭터를 소개하겠다.

 

 

이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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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 이호창은 재벌 3세로 자신감이 가득 차있고 가끔 거만한 태도를 보인다. 성공을 목표로 달리고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B대면 데이트"에 출연하며 사랑을 갈구한다. B대면 데이트는 기피할만한 B급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는 콘텐츠다. 적정한 선을 지키며 들이대는 것, 이성적이었던 사람이 사랑에 감성적으로 변하는 모습, 눈빛과 행동의 진심이 담긴 듯한 디테일에 이창호는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호며들었다(호창+스며들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직원을 혼내는 영상, 혼자 밥 먹는 모습,  술 먹고 난동을 부리는 영상은 유출영상이라는 제목과 함께 몰래 찍힌 연출로 업로드되었다. 또 무장강도로 맨손으로 잡는 cctv 영상은 가상뉴스로 본부장의 영웅적인 모습이 보도된다. 이호창은 남에게 배려심 깊고 깍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현실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존재에 대한 환상을 채워준다.

 

또한 재미 요소를 더한 패러디까지 가세한다. 유출 영상 패러디는 재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라는 사회의 현상을 보여주고, 긍정적인 모습이라는 반전의 상황을 연출하여 웃음을 준다. 정용진 부회장의 신년사 영상을 패러디하며 원본 영상보다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뉴스나 일반 미디어에서 비치는 비인간적인 재벌이 아니라 따뜻한 재벌의 모습을 구현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제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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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제이호, 탄


 

60억 팬을 보유한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 매드몬스터의 탄(곽범)과 제이호는 비정상적으로 작은 얼굴에 대비되는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 별을 박아놓은 듯한 맑고 큰 눈, 소멸 직전인 턱, 뒤틀린 시공간이 매력적인 캐릭터다. 여기서는 풍자를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외모로 큰 인기를 끌던 중국 sns 스타의 뷰티 필터가 꺼져 너무나 다른 민낯이 공개되며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매드몬스터는 스스로 풍자의 대상이 된다. 필터를 사용해 잘생긴(?) 얼굴을 만들어 아이돌로 무대까지 서게 된다. 얼굴을 가리는 안무가 자주 등장하는데 필터가 자꾸 벗겨져 얼굴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모습을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정형화된 아이돌 외모의 기준을 비판하고,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모습으로 드러내야 하는 사회현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외모와 태도의 거리감 때문에 재미요소는 짙어진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벌, 아이돌의 외모와 다르지만 이창호는 연기로 태도와 습관,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내서 실제로 그 사람인 듯 구사한다. 코미디는 예상과 다를 때 웃기게 되는데, 이 반전을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B대면데이트에 등장한 카페 사장 최준 또한 그런 요소를 갖고 있다. 자신만만하고 치명적인 대사와 표정연기를 하지만 외모의 분위기와 피글렛 같은 콧소리의 조합이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그 괴리감 때문에 웃게 되는 것 같다.

  

 

이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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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조는 한사랑산악회의 부회장이다. 한사랑산악회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산악모임을 보여준다. 이 콘텐츠는 하이퍼리얼리즘을 추구한다. 이창호는 실제로 자신의 삼촌이 폰스터네츠(폰케이스를 빠르게 열고 닫으며 캐스터네츠처럼 치는 것)를 매일 집에서 해서 그것을 배워왔다고 한다.

 

한사랑산악회는 50~60대가 입는 등산복, 선글라스, 카드 수납 여닫이 핸드폰 케이스 등의 소품으로 외관을 연출하고 고래고래 큰 소리로 말하고, 농담하고 혼자 웃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대화는 잘 이어지며, 귀 뒤까지 빠닥빠닥 깔끔히 닦는 세수와 사투리가 벤 말투를 구사하고, 건강이 우선이지만 매일 술을 마시고 싶어 하며, 스마트폰을 잘 못 다루고, 폰을 멀리두고 게슴츠레 보는 행동과, 화나면 옷 벗는 행동까지 실제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는 듯 완벽히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연출한 디테일을 찾으며 '어, 우리 아빠도 저런데!'하며 공감하는 재미도 있다.

 

 

 

코미디엔 그들의 철학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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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랑산악회는 장편 휴머니즘 코미디 드라마 같다. 단순히 재미를 주기 위한 산을 타는 K-아재들 얘기인 줄 알았지만, 인생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한사랑산악회"는 단순히 소비되는 코미디가 아니라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아버지 세대를 그대로 묘사한 캐릭터들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여 다시 볼 수 없는 아버지를 회상시키며 눈물짓게 한다. 그리고 캐릭터에 상세한 설정과 스토리가 담기면서 왜 그들이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됐고 행동을 그리하는지 이해하게 되는 공감의 다리가 된다.

 

스토리 또한 흥미롭고 탄탄하다. 회장을 다시 뽑게 되면서 생기는 충돌로 우정과 권력 다툼을 배울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무너져가는 소상공인을 그린 에피소드는 지금 대한민국 서민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택조는 현재 코로나로 인해 가게를 하다가 월세를 내기도 힘들어져 가게 문을 닫고 택시 기사와 배달 알바를 병행한다. 가장이고 딸을 키워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려워진 상황을 친구(정광용)에게 들키지만 그럼에도 호탕하게 웃으며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진 서민의 이야기에 코미디를 녹여내었기에 대중은 위로받고, 소외된 그들의 상황을 다시금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세대갈등을 완화하는 한사랑산악회


 


 

 

이택조와 그의 딸이 나오는 에피소드에서는 공인인증서 갱신 법을 매년 가르쳐달라는 아빠와 가르쳐주기 귀찮은 딸과 자취방 보증금 못해주는 아빠에게 화를 내는 딸의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의 세대를 이해하게 되는 애틋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무뚝뚝한 건 아빠가 아니고 나였다. 자신의 상황은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이 영상에서는 딸이 아빠에게 하는 모진 말, 미처 보지 못했던 그때의 표정을 보게 되어, 자신은 부모님에게 어떤 자식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한사랑산악회는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알록달록한 등산복과 과장된 몸짓과 투박한 말투로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 세대. 그들을 불편해하던 젊은 세대의 시선이 따뜻하게 바뀌고 있다. 정말 대단하고 신기한 일이다.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상황을 한사랑산악회가 만들어가고 있다. 예전엔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을 좋게 보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한사랑산악회가 떠올라 그들이 재밌고 귀엽게 보인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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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ogue Korea

 

 

이창호는 코미디에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휴머니즘이 깃든 코미디를 만들고 끊임없이 자신의 유니버스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뉴미디어에서 보여줄 이창호의 행보가 기대되는 바이다.

 

패러디가 유행하는 시대는 사회가 불안한 시대라고 한다. 데카메론에서는 페스트가 유행할 때 현실을 잊기 위해 향락을 즐기며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현실을 살기 힘들고, 사람을 만나기 힘들고, 간접경험밖에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유튜브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고 즐거움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재미를 누릴 것이 제한되어 코미디언이 만든 유니버스라는 가상세계에서 즐거움을 찾고 함께 놀 수 있는 판을 벌인 것 같다.

 

청춘들이 유쾌하게 이 시대를 견뎌내고 있다.

 

웃음을 주시는 모든 코미디언분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드린다. 코미디언들의 온기가 가득 담긴 콘텐츠로 힘든 나날에도 웃음을 잃지 말고 위로와 희망을 얻어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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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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