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텔지어
글 입력 2021.05.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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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타인의 이야기를 듣죠.”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등장하는 대사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은 누구보다 이 대사에서 지칭하는 작가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은 앞서 언급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영화를 포함하여 다양한 영화의 순간들이 독창적인 일러스트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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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트뮤지엄은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의 단독전을 2021년 4월 16일부터 7월 11일까지 약 90일간 개최한다. 맥스 달튼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20년 동안 대중문화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며 인상적인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는 총 220여점의 작품을 아우르는 그의 최대 규모 개인전이다. ‘영화의 순간들’이라는 주제에 맞춰 SF영화와 80~90년대 장르 영화를 모티프로 한 일러스트, 영화 모티프뿐 아니라 ‘비틀즈’, ‘밥 딜런’과 같은 음악적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린 작품 등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마이아트뮤지엄 커미션 신작으로 제작된 한국 영화 <기생충>과 판타지 대작 <반지의 제왕>의 포스터를 선보인다. 미공개 잉크 드로잉과 초안 스케치 등 신작 38점이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다. 공상과학 키드로 자랐던 맥스 달튼의 우주적 상상력이 드러나는 1부,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지난 반세기 영화 역사의 명작들을 재구성한 2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포함한 그가 사랑한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의 영화의 일러스트가 전시된 3부, 맥스 달튼의 고유한 세계를 보여주는 4부와 뮤지션이 되기를 꿈꾸던 그의 레트로한 취향을 보여주는 LP커버 그림까지 5부로 구성되어있다.

 

 

 

유에서 유를 창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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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달튼은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지난 반세기 영화 역사에서 손꼽는 명작들을 작가의 미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포스터 작품들을 그려냈다. 그의 작품을 보고 놀란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바로 영화의 핵심 요소만을 속속들이 뽑아내고, 해당 장면의 맥락을 살려 상징적으로 표현해낸 그의 능력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나름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생각보다 영화를 많이 안 봤다는 사실에 놀랐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그녀>, <이터널선샤인>, <기생충> 등, 아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전시장을 수놓은 그의 무궁무진한 작품 세계에는 한참 부족했다. 이 많은 작품을 관람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려내다니! 동행한 친구와 함께 “작가님은… 잠을 안 주무시나 봐…”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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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계속해서 부지런하게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는 로맨스 영화나 스릴러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그가 선택한 영화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보며 영감을 받아서 내러티브를 구조화했다. 그는 인물의 캐릭터를 하나하나 살려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 속에 미니어처와 같이 구성했고, 어린 시절 기억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구현할 때, 보드게임, 카툰, 카드게임, 피규어 등의 레트로한 놀이 방식을 차용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는 일러스트 포스터를 제외하고도 포커 카드나 퍼즐 등 키덜트 오브제들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과거의 것, 저물어가는 것들에게 유독 애정을 보이던 맥스 달튼은 1950년대의 카툰과 빈티지 동화책의 느낌을 위해 이용한 특유의 물 빠진 듯한 색채가 두드러진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리고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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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본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한 줄 평이 문득 떠오른다.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텔지어.” 이는 지금까지도 시티팝 등의 음악으로 일본의 버블경제 시대를 추억하거나, 20세기 음악과 패션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되곤 한다.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에 있어 이보다 적확한 표현이 더 있을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비롯한 과거의 영화들과 <비틀즈>, <찰리 파커> 등의 LP커버 등 그가 음악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까지도, 나는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다가, 빠르게 지나가는 급행열차에 몸을 맡기고 추억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맥스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고 한다. 웨스 앤더슨은 아름다운 미장센과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동화와 같은 작품들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그는 <로얄 테넌바움>이라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처음으로 빠져들었고, 그것을 모티프로 <111 아처 애비뉴>를 그렸다. 그 후, 뉴욕 매거진의 TV 평론가인 매트 졸러 세이츠의 『웨스 앤더슨 컬렉션』아트북의 일러스트 삽화로서 참여하였고, 이 책이 아마존에서 선정한 ‘이달의 최고의 책’이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맥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는 소위 ‘성덕(성공한 덕후)’인 셈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는 관객이 체험하지 못했던 시대와 장소를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미묘하게 그려낸다. 그를 사랑하는 맥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둘은 모두 과거의 물건, 옛날 영화나 문학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 등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유사점이 있다. 맥스는 일러스트를 통해 웨스 앤더슨 영화의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고 인도한다.

 

온라인상에서 그림을 단독으로 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그림을 볼 때는 작품 사이사이의 연관성과 어떤 순서로 배치가 되어있는지를 유심히 보려고 하는 편이다. 작품은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개봉한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지만, 작품의 캡션에 쓰인 연도는 맥스가 그림을 그린 연도였다. 그의 발자취을 따르며 나 또한 점점 웨스 앤더슨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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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작품 양옆에 배치된 18명의 인물 그림의 배치도 눈에 띈다. 이 작품들은 그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핸드페인팅이다. 등장인물의 배치 또한 작가가 지점을 설정했는데, 그의 위트있고 집요한 구석이 눈에 띈다. 맥스 달튼의 일러스트에서 우리는 주로 눈을 감고 있는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 중에서는 한 인물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상당 부분 치우쳐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극 중에서 로비 보이로 등장했던 ‘제로’. 그리고 그 옆을 바라보면 그가 사랑했던 ‘아가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품의 배치까지도 주의 깊게 신경 쓰는 그를 보며 한층 더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고, 전시회의 묘미는 이렇게 배치된 작품을 입체적으로 느끼는 것에도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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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는 빈티지 동화책을 매우 좋아했고, 동화책을 수집하는 취미도 있다고 한다. 그는 동화 일러스트를 그리기에 이른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과의 진실 된 소통은 때론 아주 먼일처럼 느껴진다. 그의 첫 번째 동화책 『외톨이 공중전화기』는 잊혀진 공중전화기로 뉴욕의 시민들이 다시 소통하고 연대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전시장에서는 동화책의 내용이 한 장의 종이에 담겨 마련되어있다.

 

이 밖에도 피카소, 모네, 칼로, 폴록 등의 현대 예술의 거장 여덟 명에 대한 그의 예술적인 존경심을 엿볼 수 있는, 그가 한국 전시를 위해 최초로 선보였던 <화가의 작업실>과 그가 존경한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헌정하며 그려낸 LP 커버를 볼 수도 있다.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 그가 연주했던 벽에 가득한 기타들의 디테일을 살린 부분도 볼 수 있었는데, 이 한정판 포스터는 최단 시간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전시회를 보는 동안 나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의 오드리 햅번이었고,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였고, <그녀>에서의 호아킨 피닉스였다.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지니를 통해 영화의 OST를 들을 수 있어서 잔뜩 과몰입했기 때문이다. 입장 시에는 지니 음악 이용권을 받아볼 수 있다. 일러스트 소개 옆에 있는 QR 코드를 찍으면 이용권을 통해 해당 영화의 OST를 들어볼 수 있고, 이는 감상에 집중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저물어가는 시대를 붙잡고, 잊혀진 것들을 상기시키고, 그것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빛나는 순간들로 남기는 맥스 달튼. 그의 일러스트를 보며 가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한 향수를 짙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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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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