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MBTI가 도대체 뭐길래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5.1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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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MBTI가 뭐야?


 

MBTI는 (적어도 당분간은) 감히 하나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MBTI별 차이를 다룬 영상은 유튜브에서 사랑받는 콘텐츠가 된 지 오래고, SNS에는 관련 밈(meme)들이 아직도 끝없이 갱신되고 있다.  MBTI라는 제목의 노래도 나왔다.

 

 


박문치 - MBTI

본문의 제목은 이 노래의 가사에서 따왔음을 밝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MBTI를 확고하게 믿는 사람은 주변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 열풍이면 다들 MBTI를 믿나 싶은데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도 재미로만 봐 달라고 하고, 친구들도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소비할 뿐 딱히 신뢰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MBTI를 좋아하면서도 검사 결과를 다 믿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단 몇 분 만에 나를 알려주고 인류를 16가지 유형으로 나눠주겠다는 이 검사는 조금 건방진 면이 있다. 또한 검사하다 보면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새로운 직장 사람들과 어울리”* 는 속도는 때마다 천차만별이며, “친구가 어떤 일로 슬퍼할 경우” 위로하는 방식도 상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따옴표 안의 인용구는 많은 이들이 MBTI 검사로 알고 있는 '16 personalities'의 검사 문항에서 가져왔으나, 해당 검사는 원래의 MBTI 검사와 다르다고 한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런 불신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MBTI 관련 콘텐츠를 즐기고 서로의 검사 결과를 묻는다. 그렇다면 딱히 신뢰가 가지 않는데도 다들 재밌어하는 MBTI의 매력은 무엇일까? 물론 사람마다 재밌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다를 수 있겠지만 오늘은 내가 분석한 MBTI의 매력, 대유행의 원인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MBTI, 머글판 기숙사 분류 모자



[크기변환][포맷변환]밈.jpg
[출처] 티스토리 peachjamong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MBTI 밈을 살펴보면, 일할 때, 짝사랑할 때, 화났을 때, 울 때, 아이를 기를 때 등등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해 각 유형이 취할 법한 태도가 분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상황’에 대한 밈이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는 MBTI 검사가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 적합하다는 데에 있다.


캐릭터가 탄탄한 영화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팬들이 각 캐릭터에 대한 상상을 넓혀 나갈 수 있게 해준다. 팬들은 ‘캐해(캐릭터 해석)’를 통해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인물이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하며 인터넷상에서 서로의 상상을 공유한다. 그렇게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팬들이 자발적으로 밈을 만들어 퍼뜨려 나가면 이를 통해 작품 밖에서도 더 많은 서사가 생기고, 더 많은 팬이 유입된다.

 

MBTI는 ‘성격’을 16가지로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데에 최적이다. 분류하여 이름 붙이는 것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네 기숙사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아마 <해리포터>의 팬이라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도  소속 기숙사만 알면 상황에 따른 그의 행동 양식을 대강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시험을 보다가 들키지 않게 컨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후플푸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서 하지 않을 것이고, 슬리데린은 안 하는 걸 바보라고 여기고 당연히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MBTI 역시 분류와 이름 붙이기를 통해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그 캐릭터를 바탕으로 제작자가 만들어낸 콘텐츠 밖에서도 각 유형이 살아 숨 쉴 수 있게 된 사례로 볼 수 있다. 각 유형의 짙은 캐릭터 덕분에, 우리는 각 유형을 다양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으며, 스스로와 주변인에게 캐릭터를 부여할 수도 있다.

 


최종[크기변환][포맷변환]분류 모자.jpg
<해리포터>의 기숙사 분류 모자

 

 

 

너를 알고 싶어. 더 빨리, 편리하고, 쉽게.



내가 MBTI를 소재로 친구와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의외로) 종종 질 높은 대화를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로서 자녀가 똑똑하기 보다는 착하게 성장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문항에 대한 답을 물으면, 자연스럽게 서로가 ‘똑똑함’과 ‘착함’ 중 어떤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지, 혹은 각자가 생각하는 ‘똑똑함’과 ‘착함’의 정의란 무엇인지에 관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관련 밈을 활용하면 대화의 범위가 한층 넓어진다. 위에서 언급했듯 온갖 상황에 대한 MBTI 밈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의 어떤 면이 궁금해진다면 관련 MBTI 밈을 보내면서 정말 이렇냐고 묻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건 상대가 진짜 밈이 설명하는 타입의 사람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밈을 통해 서로가 겪은 그에 관한 에피소드와 그럴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특히나 이제 막 알아가는 사이라면 이런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기가 더욱더 어려울 수 있는데, MBTI는 가볍게 대화의 물꼬를 터준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만나 직접 겪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비대면으로 대화하는 일이 많아진 요즘에는 더 효과적이다.


때문에 고백하자면, 내가 친구들에게 MBTI 관련해 질문했을 때는 그들을 쉽고 빠르게 알고 싶다는 욕심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그의 대강의 성향은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MBTI를 통해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끌어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테스트.jpg
[출처] '케이테스트', '회사용 부캐 테스트', 'LU42 플라워 MBTI'

 

 

최근 MBTI 뿐 아니라 각종 검사가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져 나간 것을 보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러한 ‘테스트’를 통해 상대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나 싶다. 만약 다들 자신의 결과만 궁금해했다면 그토록 빠르게 퍼져 나가고 유행이 만들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검사 결과 페이지에 꼭 ‘테스트 공유하기’ 버튼이 있는 건 개발자들 역시 이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아가 ‘내 결과 공유하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말해주고픈 마음까지.

 

 

 

잘만 쓰면 좋은 대화의 재료가 되는 MBTI


 

이렇듯 MBTI는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검사는 아니지만, 잘만 이용하면 재밌는 놀이 및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서로를 검사 결과에 끼워 맞추며 “넌 무조건 이런 타입이야!”라고 윽박지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추가로 MBTI 활용 팁을 주자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알고 싶을 땐 친한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검사를 진행해보자. ‘나는 이럴 때 이런 편이지…’라고 생각하며 대답을 누를 때마다 옆에서 “아니지! 너 저번에 이럴 때 이랬잖아!” 라며, 다소 맞는 말로 반박해오는 친구들 덕분에 자신이 몰랐던 스스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경험담이다.


글을 마칠 때가 되니 문득, 이 글을 보고 독자들이 나의 MBTI를 알아맞힐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신빙성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어떻게 MBTI의 유행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 썼는데, 나의 MBTI를  맞춰버린다면 어쩐지 내 주장이 무너지는 것 같으니 못 맞추셨으면 좋겠다.

 


 

조예음.jpg

 

 

[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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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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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윔지
    • 글 잘 읽었습니다. 조심스럽게 infp로 추측해봐도 될까요 ㅎㅎ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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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whla
    • 2021.05.19 21:45: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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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윔지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못 맞추셨으면...좋겠으니까... 대답은 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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