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담백하고 순수한 마르첼로 바렌기의 작품세계

모든 사물은 각자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고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일상의 사물을 표현할 때 그 순수함에 매료된다.
글 입력 2021.05.1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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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당신은 냉장고에 있는 케첩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세히 본 적이 있나요?"

 

 

냉장고를 열고 닫으면서 빼곡히 쌓여있는 갖가지 음식 재료들을 보게 된다. 야채, 과일, 밑반찬, 계란 그리고 마르첼로 바렌기가 물어보는 케첩까지 다양하다. 냉장고 문만 여는 행동 하나로 우리는 쉬운 곳에서 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사실을 또 놓치고 만다. 마르첼로 바렌기의 질문에 들어가 있는 이 ‘케첩’은 다른 재료들과는 다르게 큰 강렬함을 주거나 특별하지 않다. 우리가 지금 바로 집중해야 할 초점은 케첩이 가지고 있는 ‘사실’과 ‘존재’ 그 자체다.

 

마르첼로 바렌기의 작품 설명 이전에 타인들과 살아가며 행동하는 고유한 자신만의 패턴들을 돌아보길 권장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과연 얼마만큼 꾸밈없고, 거짓이 없으며, 순수하게 행동할까?

 

화자는 단언컨대 진실된 하나만의 페르소나를 갖는 것은 쉽지 않고 이 세상에 그런 섭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는 좋고 나쁨으로 받아들이면 큰 오해다. 타인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절제하고 사회가 어느 정도 정해놓은 범주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끼어 맞춘다. 이 모든 것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 내 행동을 약간씩 개조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렇게 모두들 살고 있다.

 

여기서 이제 사람들은 탈이 나고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언제 나 자신을 들어낼 수 있을까’ ‘마치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힘들어.’ 죽을 때까지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 여러 종류의 페르소나를 함께 동반해 살아가야만 한다. 후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고 전자를 지키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모든 사물은 각자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고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일상의 사물을 표현할 때 그 순수함에 매료된다.

 

마르첼로 바렌기는 케첩처럼 우리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에 순수함을 대입시켰다. 화자는 이에 영감을 받아 평생 숙제처럼 따라올 관계망을 눈에 보이는 사물들과 연결 지어, 요 근래 흔들렸던 가치관을 다시 바로잡는 데 성공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필기구로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그림을 소화시키는 이 화가의 작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완전함이 보인다. 유튜브로 작업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노출시키기에 거짓도, 리터치도 할 수 없다. 아무리 완벽하게 덧칠하고 완성도를 높여도 그림의 한계는 어디선가꼭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르첼로 바렌기는 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림의 한계와 불완전함은 그저 나의 스타일을 나타내며, 예리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 그림을 알아볼 것이라 믿는다며 완벽할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직업 정신으로서 목표인 보는 이의 감각기관을 교란 시켰다고 충분히 생각하면, 거기서 더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었다.

 

 

마르첼로 바렌기 4.jpg

 

 

올바른 예술은 없고 잘못된 예술도 없다. 아티스트는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 꼭 예술적인 직업을 가져야만 아티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크게 자신을 표현하고 지휘하는 첫 번째째는 '나' 자신이다. 이처럼 악의 없이 상대에 따라 여러 가지 개인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꾸밈이 아니다. 그렇게 되고 싶은 순수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마르첼로 바렌기의 작품은 복잡스럽지 않다. 굉장히 담백하고 어쩌면 보이는 것을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과만 봤을 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화가의 작품 과정을 전시장 안에 가만히 앉아 감상해 봤는데 도형의 각도를 스케치하면서 드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와 마르첼로 바렌기만의 스타일이 나올 수 있었다.

 

 

사본 -071-Glass.jpg


 

이처럼 작품, 관계망 등 모든 것들은 다양한 시도가 깃들어져 안정적인 완성본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과정 중에 내 모습이 탐탁지 않고, 답답할지언정 큰 상관이 없다. 곧 흰 도화지에 표현되고 싶은 정체성이 담긴 작품이 나올 때까지 담담하고 순수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겁내지 않았으면 한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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