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한폭탄처럼 체력을 안고 살아가기

망가진 체력과 함께한 지겹고 게으른 실패의 역사
글 입력 2021.05.0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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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참 계획한 일이 많은 날이었다. 아침에 지옥 같은 몸 상태로 눈을 뜨기 전까진. 졸업을 앞둔 나는 요즘 정말 많은 일에, 말 그대로 시달리고 있다. 욕심껏 부려 놓은 활동과 교육들. 졸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준비해야 하는 시험들. 4년째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은 수업과 과제들까지. 모두 시작할 때는 잘해보자는 발랄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처럼 일의 중반 즈음이 되면 버거워지는 일들이다.

 

요란스럽게 맞춰 둔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깼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완벽하게 망했다'는 것이었다. 고 며칠 신경 쓸 일 좀 많았다는 이유로 몸이 눈꺼풀보다 무거웠다. 좀처럼 쉽게 일어나기도 힘들고, 동시에 마음도 힘들었다. 꼭 중요한 순간마다 고장 나주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오후가 다 다가오도록 체크리스트의 한 항목도 지우지 못한 나는 잔뜩 짜증이 났고, 그래서 오늘은 그런 마음을 담아 체력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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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대부분을 체력이라곤 없는 몸으로 지냈다. 유치원생 시절부터 틈틈이 잘 부러지고 사시사철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였다. 원인을 찾자면, 유독 운동신경이 없어서 밖에 나가 놀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달리기도 못 하고 철봉과 그물에 매달릴 힘도 없는 나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이를 하면 가장 먼저 승자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드넓은 놀이터에서 내가 그나마 탈 수 있었던 건 그네 정도. 그나마도 누가 밀어줘야 탈 수 있었다. 자연스레 놀이터와 사이가 멀어졌고, 뛰어놀기보단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이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이 되자 잘 다치고 자주 아픈 내가 태권도장에 보내졌다. 나는 도장에서 제일 목소리가 큰 아이 중 하나였지만, 운동만큼은 끔찍하게 못 했다. 특히 기초 체력 운동을 할 때는 항상 힘이 부치곤 했는데, 복근 운동을 하던 어느 날은 내내 몸이 떨리다 못해 눈물이 줄줄 나던 것이 기억난다. 몸이 아프고 힘든 것보다도 남들 뒤꽁무니도 못 쫓아가는 몸뚱어리가 분했다. 태권도는 오래 하지 못하고 곧 그만뒀다. 그 뒤론 운동을 배우는 일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내가 가장 체력이 좋았을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체력의 비결은 단순했다. 잘 먹고, 잘 뛰었다. 내가 뛰었던 이유는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 뜨기가 언제나 버거웠던 나는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정문까지 2분 이내에 뛰어야 했다. 덕분에 형편없던 달리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의도치 않았던 매일 아침의 달리기 훈련은 허약한 수험생인 나를 걱정했던 엄마가 매일 챙겨 먹였던 홍삼과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 분명했다. 난생처음 앓지도 않고 사계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체력은 8시 등교가 사라진 대학교에 오자마자 수직하강 했다. 내 체력은 그 뒤로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와 함께 체력을 원망할 날들은 늘어갔다. 중요한 발표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드러누워야 했다. 아니, 그건 차라리 다행이었다. 할 일이 쌓이고 쌓여 정점을 찍었을 때 여지없이 몸이 고장 나기도 했다. 태권도장 바닥에 널브러져 울던 초등학생 때처럼, 침대 위에서 분해 눈물 흘리던 날들이 종종 있었다.

 

일벌이길 좋아하는 나에겐 체력으로 망가지는 몸이 벌처럼 느껴졌다. 내 체력은 왜 항상 이 모양이냐고 성을 냈다. 물론, 그런다고 몸에 다시 기력이 도는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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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생각하기엔 운동만 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할 수도 있다. 변명인지 반박인지 모를 사족을 붙이자면, 나 역시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운동으로 체력을 키워볼 요량을 가지고 여러 운동센터에 등록한 경험이 몇 번 있었다. 러닝을 시작하거나 헬스장도 가봤고, 요가도 제법 다녔다. 게다가 수강료가 아까워서라도 등록한 운동은 꼭 나갔다.

 

남들은 운동하면 몸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는데 나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얻은 것은 언제나 심각한 근육통과 그에 수반하는 피로였다. 운동하면 할수록 피곤이 쌓여서 괴로웠다. 모든 고비가 지나가고 체력이 쌓일 때까지, 인고의 시간은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끝내 해결을 보지 못하고 센터에 짐을 빼던 날이 반복됐다.

 

나는 남들보다 많이 걷는 편이기도 하다. 걷는 것을 좋아해서 버스 한 두 정류장 거리는 보통 걸어 다닌다. 여행을 가도 많이 걷고, 평소에도 이유 없이 걸으러 나가는 일이 잦다. 걸음이 상당히 빠른 덕분에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멀리까지 제법 많이 걷게 된다. 그렇게 이곳저곳 바쁘게 열심히 걸어 다녀도, 체력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걷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내 친구가 나보다 체력이 좋은 걸 느낄 때, 평일 저녁 TV 프로그램에서 걷기가 최고의 운동이라 떠들 때도 괜히 약이 올랐다.

 

확실한 건 이렇게 소소한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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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가냘픈 체력을 가지고 지금껏 그나마 지내온 비결은, 내가 벌인 일들에 대한 의무감이었다. 내 몸이 무겁든 말든, 체력이 뭉개지든 말든 언제나 같은 강도로 나를 압박하며 기다리는 할 일의 목록이 있었다. 그 성가신 존재의 눈치를 보고 있자면 잔뜩 느려진 손이라도 일단 움직여지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머리에 기대어 무엇이든 하다 보면, 일도 체력도 어느샌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곤 한다. 그런 해결책이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건 지금까지 그런 방법에 의존해올 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이다.

 

몸이 고장 나는 게 제일 싫은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지겹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들에 둘러싸여 바쁜 건 아무리 바빠도 싫지가 않다. 다만 때맞춰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좋은 일도 싫은 일도 짐이 되어버릴 뿐이다. 살면서 마주친 것 중 고르고 골라 마음에 꼭 맞는 것만 소중히 퍼 담은 일상이다. 그런 게 짐짝처럼 느껴지면 슬퍼진다. 내가 선택한 것이 어떤 이유에서든 후회되려 할 때는 참 아쉽고 답답하다.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들을 더 많이, 더 즐겁게 하기 위해서. 체력을 끌어안고 고군분투를 벌어야 할 응당한 이유는 그래서 나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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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운동은 싫고, 일 벌이는 건 좋고, 걷기는 열심히 걷고, 체력 좋은 사람은 부럽다. 머리는 부지런한 걸 참 좋아하는 데 몸이 그렇지 못해 자주 슬프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상은 그런 식으로 또 흘러간다. 오늘은 망가진 체력 덕분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모습 중 하나에 대한 글을 썼다. 할 일을 망치려 항상 벼르고 있는 대상에게 그나마 호쾌하게 대처를 한 날이다.

 

그렇다고 내일부터 운동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진 않을 걸 알고 있으니 어설픈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 지을 수는 없다. 그래도 언젠간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한 번 더 새긴다. 대신에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오늘의 간절한 마음을 기억해서 내일로 가져가야겠다. 부진한 오늘보단 좀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 위해, 게으른 오늘의 내가 내리는 솔직한 결론이다.


 

 

박경원 컬쳐리스트.jpg

 

 

[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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