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학으로서의 이소라 [사람]

음악에 대한 이소라의 순정
글 입력 2021.05.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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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서의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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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나는 가수다>에서 이소라는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이현우, 1991)를 불러 7명 중에서 7위를 했다. 이 곡은 애초에 준비했던 곡이 있었지만 리허설 시작 네 시간 전에 포기하고 급하게 준비한 곡이었다. “난 그런 것을 할 수 없어요. 어제는 할 수 있었을 거예요. 내일도 혹시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순위에 연연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순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날, 그가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노래여야만 한다는 것.

 

당시 경연 프로그램에서 고음을 지를수록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패턴은 회를 거듭해갈수록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이전 경연에서 비교적 잔잔한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탈락한 상황이었지만, 다음 곡 역시 순위에 상관없이 자신의 진심이 담긴 곡을 피아노 반주 하나에 의지하여 담담하게 부르고 내려간다.

 

 

어떤 자리이건 어떤 장르이건 능란하게 소화해내는 이가 프로일 것이지만,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는 예술가일 것이다. 존재의 필연성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 말이다.

 

예술 창작자가 진심을 강조하는 모습은 너무 흔해서 진부하게 느껴진다. 진심을 다해 노래하겠다는 말도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진심이 아니면 부를 수 없다는 말은 좀 달리 들린다. 전자는 의지의 영역, 후자는 기질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고통스러운 진심으로 부를 수 있어 택한 노래를 그는 조용히 불러나갔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문학으로서의 이소라 중에서, 신형철

 

 

<나는 가수다>를 볼 때, 엄마는 이소라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시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매 순간, 노래를 할 때마다, 한 자 한자 어렵게 꾹꾹 눌러 담은 문장을 간신히 내뱉는 것 같았다. 긴장감 가득한 경연 프로그램에서, 대기실을 무겁게 짓누르는 공기와 그녀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을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세상을 등지고 고고히 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신형철은 이런 그녀를 관객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너무 오래 단둘이 있지 않기 위해서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아주 적확한 표현 같다. 고독은 즐기는 것이고, 고립은 스스로 가두는 것이다. 그녀가 노래하며 마른 입술로 씹어 넘기는 무언가에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까지도 포함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독이 고립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고통과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그러나 고통과 무대에 함께 오르는 것만으로 그녀를 설명할 수만은 없다. 그녀는 사랑으로, 온기로,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명으로, 무대에 자리한다. 그러나 그 곁에는 잠시 입을 다문 고통이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는 것을, 그녀가 주는 따뜻한 위로를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위로란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공명하는 것이고, 그녀의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 그녀가 담담하게 전하는 노랫말은 제목이 없는 것이라도(7집 전곡에는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관객들에게 깊숙이 가닿는다.

 

 

   

사랑을 달리 말하는 것들


 

이소라에게 순위보다 중요했던 것은 '진심'이었다. 진심을 다해 부르겠다는 말 보다도, 진심이 아니라서 부를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음악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고 순정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같은 말이지만 사소한 차이의 고백이 사랑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너를 사랑해. 보고 싶어. 깊은 밤이지만 당장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그렇게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불면의 밤이 주는 괴로움을 아는 나는 네 잠이 너무 소중하다. 너를 애써 깨우지 않는 대신 사랑을 담은 반딧불을 보낼게. 나는 그게 사랑인 것 같아.'

 

사랑한다는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보다는, 잠든 너의 창을 내가 지킬 테니 좋은 꿈을 꾸길 바란다는 <밤편지>의 가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가사를 쓴 아이유는 실제로 심한 불면증이 있고, 자신의 연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 고백은 ‘내가 널 매일 재워줄게.’라고 한다.

 

'아무렇지 않게 넌 내게 말했지. 날 위해 죽일 수도, 죽을 수도 있다고, 알아, 나도 언제나 같은 마음이야.' 검정치마의 <나랑 아니면>의 가사 중 일부이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물론 그 자체로 대상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의미하고는 있지만, 미디어의 흔한 사랑 고백에 중독된 우리는 이 말이 별로 새롭지가 않다.

 

그러나 너를 위해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은 극단적인 고백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다르게 들린다.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공격이 그들에게는 최선의 방어일지도 모르는 연인이 등장한다. 처음 곡이 나온 순간에는 나른한 조휴일의 목소리와는 달리 강한 표현에 의문을 가졌지만, 뮤직비디오를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을 달리 말하는, 아름답고 절박한 문장들을 보면 천석꾼이 된 것처럼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비슷한 관념의 문장들을 찾아 헤맬 때가 많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우리가 살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해내는 유서 같은 일기들은 어쩌면 사랑하고, 사랑해달라는 연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설사 그 대상이 불분명하다고 해도 말이다.

 

 

 

이소라의 연서, 이소라의 음악 – 에디터의 추천곡


 

 

1. 낯선 사람들- 낯선 사람들

 

 

   

 

이소라의 데뷔는 '낯선사람들'이라는 퓨전 재즈팀을 통해서였다. 대학 동아리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지금 듣는 93년대 앨범의 감성은 대학 동아리라기에는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2. 코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밴드 '쏜애플'의 커버 버전도 색다른 매력이 있으니 추천한다!

 

 

3. 시시콜콜한 이야기

 

 

 

 

4. Track 3

 

 

 

 

5. Track 7

 

 

 

 

그는 고통을 잊기 위해 수면제를 부탁한다. '다 외로워, 그래요, 너 없는 난/ 눈을 뜨면 다시 잠을 자, 난, 난' 그리고 마지막 '난'에서 정확히 목소리가 갈라지고 무너져 내린다. 분명 음악을 듣고 있던 나는 영화의 가학적인 한 장면을 관람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신음하듯, 씹어삼키는 듯한 노랫말 역시 그가 썼다.

 

 

6. 처음 느낌 그대로

 

 

 


 

 

작곡가 김광진의 순수함과 이소라의 경험적 가사가 어우러진다. 개인적으로 기교 없이 담백하게 부르는 김광진만이 살릴 수 있는 느낌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여 동영상 두 개를 첨부한다.

 

 

7. 내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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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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