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한나 드러커의 디지털 인문학 [문화 전반]

포개져있는 파이차트, z축이 있는 3차원 막대그래프
글 입력 2021.04.30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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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문학


 

디지털 인문학은 인문학에 정보기술을 결합하여 전통적인 인문학의 주제들을 디지털 기술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 문학, 철학 등 대부분의 인문학적 지식은 글로 구성된 인쇄물의 형태로 생산되어왔다. 하지만 현재는 데이터를 이용한 사회적 관계망 시각화, GIS, 3D 모델링 등의 기술이 인문학적 연구에 적극 활용되며 텍스트를 점점 대체하고 있다.

 

 


조한나 드러커의 질문


 

실용학문에 밀려 인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시대, 디지털 인문학은 현재 인문학이 봉착해있는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주목받아왔다.

 

하지만 인문학의 방법은 과학기술의 방법과는 다르다.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부분적인 증거, 상황적 지식, 그리고 복잡하고 단일하지 못한 생각들에 기초한다. 이 때문에 디지털 인문학의 시각화 방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다수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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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나 드러커의 저서


 

대표적으로 디지털 인문학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학자로 UCLA의 디자인 미디어아트 교수이자 북 아티스트 조한나 드러커가 있다. 조한나 드러커는 자신의 저서 “Digital Humanities”에서 다양한 디지털 인문학의 종류를 소개하며 그것의 한계점들을 지적한다.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요한나 드러커의 관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디지털 인문학에서 사용하는 모든 시각화 방법론은 시각적으로 빈약하고 개념적으로 손상되었으며 인문학 작업에 사용하기에 부적절하다. 그렇다면 현재 사용되는 시각화 방법론의 빈약함을 어떻게 인문학 작업에 더 적합하게 만들 수 있을까?

 

 


포개지는 파이 차트와 데이터의 불확실성


 

경험적 데이터를 시각적인 언어로 변환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데이터를 넣고 시각화 알고리즘이 무언가를 뱉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결과물에는 해석, 뉘앙스, 불확실성, 모호성, 복잡성이 허용되지 않으며, 단순히 정량적 정보가 그대로 시각적으로 표시될 뿐이다. 이것은 주장과 증거 사이의 관계를 하나의 최종적인 진술로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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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나 드러커의 파이 차트 ⓒJohanna Drucker, UCLA


 

주장과 증거를 구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작업으로 드러커는 시각 언어에 불확실성과 뉘앙스를 불러와 해석의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드러커는 반듯이 잘려있는 파이 차트가 아니라 데이터의 불확실성에 따라 포개져 경계가 흐트러져있는 파이 차트를 제시한다.

 

또 막대그래프를 3차원으로 만들어 z축을 데이터의 신뢰도로 만들기도 한다. 이를 통해 드러커는 독자의 비판적 사고를 촉발시키고 저자의 주장이 하나의 증거처럼 표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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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나 드러커의 3차원 막대 그래프 ⓒJohanna Drucker, UCLA

 

 

 

존 스노의 감염지도와 상황적 지식


 

코로나 이후 크게 주목받고 있는 역학을 탄생시킨 것은 존 스노의 ‘감염지도’였다.

 

스노는 1854년 런던을 휩쓴 콜레라의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감염자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추적하고 지도에 기록했다. 완성된 지도를 보고 스노는 감염자들이 같은 수로에서 물을 마셨다는 것을 발견했고, 콜레라 확산을 막기 위해 수로 펌프의 손잡이를 뽑아버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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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노의 콜레라 역학 지도 ⓒWikimedia


 

이 지도 위에 분포되어있는 점들은 분명한 사실을 나타낸다. 바로 수로가 주된 감염 경로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지도의 유용성은 명확함과 간결함에서 오는 분명함에 있다. 하지만 드러커는 이 지도를 보고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점들은 누구인가?”


드러커는 새로운 지도를 소개한다. 지도에서는 점으로 단순화되어 있지만, 이 점들은 사실 모두 연령, 키, 건강 상태, 경제적 잠재력, 가족, 사회적 역할 등의 다양한 사회학적 요소들이 집합되어있는 개인이다. 그 점들은 점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나타내며, 세상에 동일한 삶은 존재할 수 없다. 드러커는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함으로써 전염병을 더욱 섬세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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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커의 지도 ⓒJohanna Drucker, Harvard metaLAB


 

드러커가 이 지도에서 강조하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관점이다. 이는 1980년대 등장한 페미니즘 인식론과 함께 처음 제시된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과 맞닿아있다. 해러웨이는 지식 인식주체가 놓여있는 상황 및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른 지식이 생산되기 때문에 지식을 상황적 지식으로 이해하고 시력의 권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노는 조감도적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드러커는 한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스노의 지도는 신의 위치에서 세상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는 것처럼 지도를 그려냈지만 드러커는 경험의 부분성과 지식의 상황적 위치를 고려하여 부분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담은 지도를 그려냈다. 드러커는 경험의 부분적임을 인정하고 지도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게 세상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


텍스트는 더이상 우리의 지식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시각 언어에 상당히 의존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고, 인문학도 텍스트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것에서 시각 언어를 사용하는 형식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시각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의 방향과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힘이 방향이 다르기에 우리는 디지털 인문학에 뉘앙스, 해석의 여지, 불확실성 등을 위한 틈을 내어야 한다. 이런 균열이 반복적으로 내어짐으로써 디지털 인문학은 비로소 인문학을 잘 표현하는 언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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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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