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첫 전시회 답사기 [전시]

'현대회화의 모험 :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展을 갔다오다
글 입력 2021.04.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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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시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교양 수업을 통해서였다.

 

'대중문화와 예술의 이해'라는 교과목이었는데 사실 난 어떤 특정한 것을 바라고 이 수업을 수강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 과목을 수강할 당시엔 도피성 목적이 주요했다. 머리 아픈 전공 수업의 틈에서 잠시 휴식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이 수업은 숫자만 바라봐야 했던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다만 내가 이 수업으로 얻은 것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괴짜 교수님, 상상치 못한 방식의 사유, 아주 작은 것을 향한 지적 탐구, 다양한 사고방식을 존중하는 수업, 처음 경험하는 논술형 시험 등 교양 수업 하나가 이렇게도 많은 새로운 경험을 내게 선사했고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와 동시에 난생 처음으로 예술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기말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교수님이 얘기하셨던 것을 내 몸으로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이게 되었다. 도대체 예술이란 게 얼마나 경이로우면 그렇게 열변을 토하며 강의를 하실까? 예술을 통해 어떤 것을 느끼셨길래 그런 강의력이 나오는걸까? 예술이 사람에게 주는 이점이 무엇일까? 그리고 집 앞 횡단보도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버스 광고 하나가 내 이목을 끌었다.

 

'현대회화의 모험 :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전시, 국립 현대미술관

 

버스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갔지만 난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얼른 폰을 꺼내 제목을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모든 시험이 끝난 다음날 바로 이 전시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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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본 국립현대미술관은 정말 위압적이었다. 그 거대한 몸체가 나의 작은 육체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너무나 경이로운 광경에 내부로 들어갈 생각을 못 하고 주위만 맴돌며 그 위엄을 감상할 뿐이었다. 한참을 넋 놓고 보고 있던 나는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리고 미술관 내부로 들어갔다.

 

표를 수령하고 전시회가 열리는 5층, 기획 전시실로 들어선 나는 전시관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와 분위기에 취해 다시 한번 눈을 감고 그 순간을 오롯이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팜플렛을 집어 들며 전시를 느껴보기 시작했다.

 

 

캡처.JPG


 

내가 이 전시에 처음 매료된 것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예술가란 그런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누구의 간섭 없이 걷고자 하는 길을 그대로 가는 것, 난 그것이 예술가의 본질이라 믿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예술작품이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난 이번 전시 또한 그런 의도로 기획된 것이라 추측했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전시, 주변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사람, 혹은 따스한 빛이 내리쬐지 않는 그림자 진 길을 외로이 걷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추려놓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기꺼이 전시회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불굴의 용기를 낸 사람들의 실천 동기, 홀로 가야만 했던 길을 개척하기까지 어려웠던 점, 그것을 극복하기까지 겪었던 고난들, 자신의 길을 돌아보며 느끼는 감정 등등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을 보고 싶었다.


 

격렬한 변화와 실험의 열정이 끓어올랐던 격동의 20세기를 거치면서 단련된 '현대미술'은 인공지능(AI)이 '회화'의 영역에 도전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미술의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각 장르의 장점을 취하여 자유자재로 뒤섞는 혼종 예술, 고해상도의 영상 미디어, 대규모 자본과 효율성이 극대화된 공장형 제작 시스템이 탄생시킨 거대하고 화려한 설치 미술, 음향과 조명, 영상과 안무가 결합된 대형 퍼포먼스 등 '현대미술'의 외형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난해하지만, 뭔가 그럴듯한 핫 한 아이템'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급벼하는 세상 속 '현대미술'의 개념이 무한 확장된 이 시대에, 가장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매체인 '회화', 즉 캔버스나 종이 등의 평면 지지체 위에 유화, 아크릴, 수채 등 다양한 물감을 이용하여 작가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구현(묘사)하는 행위가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중략)

 

이번 전시는 치열한 미술계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했으며, 또 다른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이 잠재되어있는 30~40대 회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이들은 일상과 현실에 대한 깊은 사유와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 전시 기획 의도 中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생각한 기획 의도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에 살짝 기운이 빠졌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가 아니라 '현대회화의 모험'의 비중이 더 컸기 때문이다. 회화의 가치를 되짚어보기 위해 이번 전시가 기획된 것임을 알고서는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까지 이 전시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 날 본 작품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분들의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유독 마음 깊이 와닿았던 작품들은 대개 암울한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겉으로 보면 밝은 파스텔톤 색채와 함께 순정 만화 속 캐릭터들이 등장해 아름다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옥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살벌하고 잔혹하며 냉소적인 그림을 그린 권순영 작가의 작품들, 막연한 죽음의 공포를 세세한 표현을 통해 직접적으로 와닿게 한 서고운 작가의 '사상도',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표현한 양유연 작가의 작품들, <에덴>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은 가정폭력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왕선정 작가의 작품들, 젊은 청춘이 겪어야 하는 고민, 불안, 절망, 우울의 정서를 '모순적인 상황'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우성 작가의 작품들, 마지막으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추악한 사건들을 담은 조문기 작가의 작품들까지, 이렇게 적고보니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위기가 당시 왜 그렇게 끌렸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위 작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 강력했기에 당시의 나로서는 거기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뿐이다. 위 작가들 중 특히 나에게 인상깊었던 작품 몇 개를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양유연 작가의 작품,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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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인간의 모습 같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매우 편안한 자세로 가만히 서있을 뿐이다. 어둠과 반대 방향으로 서있지만 도래한 어둠을 밀쳐내지 않는 모습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그의 상태가 편해 보인다. 표정을 알 수 없으니 그가 실질적으로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작품의 1/3이 어둠 속에 스며들어가 있으니 우리로서는 위의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함부로 판단하긴 어렵다.

 

다만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해석할 여지는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그건 해석하는 우리가 선택할 문제다. 마음속에 빛이 가득한 사람은 어떻게든 희망적으로 볼 것이고 그림자가 가득한 사람은 기어코 절망적으로 볼 것이다. 어떤 예술작품이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이 어떤 해석을 내놓느냐에 따라 작품 분위기가 결정된다는 게 예술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제목도, 제작 의도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분은 위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 작품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 같은가? 어떤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기는가? 여러분의 해석을 들어보고 싶다.

 

 

 

왕선정 작가의 <나는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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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나는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쉽게 입을 떼지 못하게 한다. 용서를 구하는 듯한 사람와 눈물을 흘리는 사람, 그리고 절규하는 검은 영혼. 왕선정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우성 작가의 <아무도 내 슬픔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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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아무도 내 슬픔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무표정한 오리의 표정이 불타고 있는 오리배의 현재 상황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불이 타고 남은 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겠지. 그래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는 않을테다.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위 작품의 오리배가 의미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상징하지 않을까, 생각 해본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의 오리배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불타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해석이 궁금하다.

 

*

 

나의 첫 전시는 위의 작품들 덕분에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게 되었다. 처음 간 전시가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마 밝고 가벼운 주제를 담은 전시였다면 이렇게까지 내가 추억하고 있지는 않았을텐데. 해피 엔딩보다 새드 엔딩, 배드 엔딩이 더 기억에 잘 남는 경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까.

 

이날 이후 많은 전시를 찾아다녔지만 위와 같은 어두운 분위기의 전시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난 이런 생각할거리가 많은 전시가 참 좋은데 말이다. 어둡고 무거우며 진중한 분위기라서 가벼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몰이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시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고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사람들이 세상의 적폐를 깨닫고 심각함을 인지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위와 같은 것이 진정한 예술의 의미에 부합하는 작품들이지 않을까?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 각각이 겪었던 고충과 깊이 내재된 내면의 상처, 암울한 세상의 그림자를 표현해내는 것이 진짜 예술이고 예술적 승화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들 일 것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앞이 보이지 않는 길, 그 길을 걷기를 자처하는 예술가들의 운명이란 실로 위대할 따름이다.

 

 

당대의 예술가들이 온몸으로 체험하고, 치열하게 표현해낸 '세상의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확장될 것이다. 예술가들은 세상의 기준과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향을 설정한 채 묵묵히 나아간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오롯이 단독자로 세상과 마주하는 예술가들의 운명을 상징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은 누구도 도달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어야 한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외롭고, 적막하며 좁은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예술가는 그 길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 그래서 예술은 위대한 것이다.

 

- 전시 기획 의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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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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