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해자가 겪은 공포를 가해자도 똑같이 느낄 수 있다면? - 단막극 '더 페어'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1.04.1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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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겪은 공포를 가해자도 똑같이 느낄 수 있다면?

 

그런 형벌 제도가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공평해질 수 있을까? 이것이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길이고, 더 이상 피해자는 고통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일까?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일련의 생각과 질문들로 시작된 이야기가 있다.

 

지난 7일(수) 밤에 방영된 tvN [드라마 스테이지 2021]의 여덟 번째 단막극, ‘더 페어’를 소개한다.

 

 

 

tvN 단막극 [드라마 스테이지 2021]의 여덟 번째 이야기 <더 페어>, The Fair


 

더 페어 포스터.jpg

 

 

‘더 페어’(극본 추현정, 연출 민정아)는 매주 수요일 밤 12시 10분에 한 편씩 총 10개의 단막극의 형태로 방영되고 있는 tvN [드라마 스테이지 2021]의 여덟 번째 이야기로, 가상 범죄 프로그램(VCP, Virtual Crime Program)을 통해 일곱 번의 살인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범인을 단죄하려는 주인공 희선의 정의실현극이다. VCP는 피해자가 느낀 심리적 공포 및 고통을 피의자에게 그대로 느끼게 하는 새로운 형벌제도로 극의 핵심적인 소재로 등장하며, 그의 참신함과 탄탄한 스토리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규칙적으로 살해당하는 남자

희선은 그가 살해당할 때마다

“이제 세상은 조금 더 공평해졌다.”라고 말한다.

 

- ‘더 페어’ 기획의도 中 -

 

 

‘더 페어’는 가상 범죄 프로그램 VCP가 “이제 세상은 조금 더 공평해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한 형벌제도인지 아니면 그저 복수심에 의한 보복성 형벌일 뿐인지 의문을 던진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현 형벌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화두를 던진다.

 

 

*‘더 페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질문 1. 가상 범죄 프로그램 VCP는 과연 정당한 형벌 제도일까?



 

“강력 범죄가 늘어나면서 형벌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VCP, 과연 이것이 형벌 제도로서 적합한지 지금부터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극은 범죄 과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고도영(차학연 분)이 차디찬 VCP 기계에 누워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어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파이널 피스 연구소의 류희선 대표(남규리 분)와 재소자들의 재사회화를 돕는 Re-Born 센터의 남주철 박사(최병모 분)는 새로운 가상 형벌 프로그램인 VCP에 대한 열띤 찬반 토론으로 대립의 날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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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더 페어' 캡처본

 

 

희선은 VCP 개발자로서, VCP야말로 피해자를 위한 정당한 형벌 제도이며 가해자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형벌을 준다는 점에서 이전 형벌 제도와는 차별성을 두어 공평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주철은 ‘교정의 기본은 인간 존중’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면서 인간을 처단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지 차가운 기계 덩어리가 하는 것이 아님을 강력히 주장하며 VCP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다.

 

VCP에 대한 두 인물 간의 극명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VCP는 명백한 교정 효과가 입증되어 대한민국의 교정법으로 공식 채택된다. 이후 7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잔혹한 살해 장면을 생중계 방송한 고도영이 VCP 프로그램의 첫 집행 대상자로 선정된다. 그가 법정에서 받은 형량은 징역 15년에 VCP 집행 10회였다.

 

극이 전개될수록, VCP의 도입과 함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 및 논의 사항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그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피의자 고도영 VCP 집행을 본격화하면서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를 통해 ‘가상 범죄 프로그램 VCP는 과연 정당한 형벌 제도일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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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더 페어' 캡처본

 

 

*다음은 VCP 집행 과정 중 인물들의 행동 및 대사를 서술한 내용입니다.*

 

- VCP 집행 전

“VCP가 실제 당하는 것도 아니고 다 가짜 아니냐” 도영은 류 대표와 남 박사 두 사람의 밥그릇 싸움에 자기를 이용하지 말라며 큰소리친다.

 

- VCP 1차 집행일 

집행 직전 도영은 피해자 가족을 향해 비열하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본 유가족들은 분에 차 오열한다. 이후, VCP를 개발한 희선의 손을 잡으며 연신 고맙다 말한다.

 

- VCP 2차 집행일

도영은 칼에 찔리는 순간 진짜 죽을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연신 "잘못했어요" 부르짖는다.

 

- VCP 3차 집행일 

다시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부르짖는 도영, 죽음과 같은 고통에 거품을 물며 쇼크로 쓰러진다. 결국 유가족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리고 희선에게 더 이상 형벌을 원하지 않는다 말한다.

 

“우리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요. 우리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똑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잖아요.”

 

 

VCP를 차례차례 집행하면서 분명 도영은 진짜 죽을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죄의식보다 당장의 고통을 벗어나려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그 모습을 마냥 눈을 뜨고 지켜보지 못한다. 피해자가 겪은 공포를 가해자도 똑같이 느끼게 하는 일이 ‘정당한’ 대응이고 복수이며 그나마 피해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라 믿었지만 유가족의 반응은 그렇지 못했다. 되려 불편했고, 끔찍했으며, 피의자와 똑같이 나쁜 짓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말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어떻게 자신의 가족이 살인 당한 고통과 장면을 눈을 뜨고 지켜볼 수 있겠는가.

 

이러한 VCP 집행 장면은 VCP를 도입했을 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여 보여준다. 피의자는 당장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낄지라도 그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칠 것이며, 이를 보는 유가족들은 그것으로 죗값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믿음이 조금은 흔들릴 수도 있으며, 이를 보는 누군가는 분명 끔찍하다, 불편하다, 이것도 나쁜 짓 이다는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란 그렇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든다. 사람이 지은 죄 앞에, 그 죄로 인한 상처 앞에 '정당한 방법'이란 무엇일까. 죄를 처단하는 일에 옳고 정당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VCP도 마찬가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받은 고통대로 똑같이 되돌려 주는 방식은 마냥 쉬운 방법이 아님을 말해준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확실히 옳고 정당하다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VCP는 다시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피해자가 겪은 공포를 가해자도 똑같이 느끼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다른 방식으로 정당한 처벌을 할 수 있을지, 피해자가 고통받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다시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았다.

 

 

 

질문 2. 피해자가 고통받지 않는 세상, 만들 수 있을까?



극의 흐름이 더욱 심오하게 파고들기 시작하는 시점은 희선의 과거 트라우마가 밝혀지면서부터다. 어린 시절, 희선이 보는 앞에서 엄마가 살해되었고, 범인은 다름 아닌 남 박사 자신이 교화해서 함께 일하고 있는 강민욱이었던 것. 희선도 누군가의 유가족이며,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였다.

 

희선은 이 모든 것이 다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의 엄마를 살해한 강민욱을 찾아가 증오와 복수심에 그를 위협한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죗값 다 치렀어요." 이 말을 들은 희선은 분노에 치를 떨며 말한다. “죗값? 그 죗값은 누가 정하는 건데?”

 

정말 현실적으로 피의자가,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죗값을 다 치렀으니 그것으로 다 되었다 생각하며 속 편히 살아가는 피의자의 모습과 반대로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희선은 이 상황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끝내 그동안 응어리졌던 자신의 상처를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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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더 페어' 캡처본

 

 

"왜 당신만 거기 있어?

나는 아직도 지옥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극이 끝난 후에 결국 가슴속에 남은 것은 연신 토해내던 희선의 말이었다. 그녀는 피의자가 깊이 패어 낸 상처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의 삶은 지옥이라고. 피의자가 죗값을 치르는 동안 그의 시간은 흘렀지만, 그동안 희선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모든 것이 멈춘 채로 그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닌 그저 존재했다.

 

이쯤 되면, 피의자가 받아야 할 ‘죗값’도, 피해자가 겪은 ‘고통’도 애초에 측정 가능한 문제인지 의문이 든다. 누구나 입 모아 이쯤이면 공평하다 생각하는 완전한 ‘죗값’ 이란 없기 때문에, 죗값에 엮인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과 아픔 또한 이루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하게 치유할 수 없다. 단순히 피의자에게 제대로 된 벌을 주는 것만으로 피해자의 고통이 해소되는 것도, 그렇게 해서 피해자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더 페어’에서는 VCP처럼 피해자가 느낀 똑같은 고통의 강도로 피의자를 처벌하는 방식 뒤에는 더 이상 피해자가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질문 3. 현재 우리나라 형벌 제도는 어떤가?



‘더 페어’가 주는 묵직한 여운이 상당한 이유는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극 초반에서는 VCP에 대한 찬반 토론 공방에 앞서 현재의 ‘형벌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담은 인터뷰를 보여준다.

 

 

시민 1: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한테 그런 끔찍한 학대를 저질렀는데도 사실 감옥에서 몇 년 살다 나오면 끝이잖아요? 이게 옳은 일인가 의문이 들죠.

 

시민 2: 우리나라야말로 죄짓고 살기 가장 편한 나라다, 이런 말들 많이 하죠. 미국 같은 나라들에 비해 형량이 너무 낮잖아요.

 

시민 3: 시대가 변하고 범죄 양상도 변했는데 왜 형벌 제도만큼은 고전 방식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지, 이점에 대해 전문가나 정치인들이 좀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강력 범죄가 늘어나면서 형벌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드라마 속 내용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미 현실에서도 현 형벌제도에 대한 똑같은 반응 및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형벌제도에 관해 알아보았다. 그러다 가장 최근 4월 12일 한겨레에 기고 된 '사형제 대체할 형벌 논의, 어디까지 왔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핵심은 ‘입법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형태의 무기징역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사형을 20년 이상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는 한국에서 사형을 대체할 형벌로써 ‘절대적 종신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참고로, 종신형은 가석방이 가능한 ‘상대적 종신형’과 수형자가 사망할 때까지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국은 일종의 상대적 종신형을 채택하고 있다. 즉, 흉악범에 대한 가석방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제도적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적 불안을 고려해 수형자가 숨질 때까지 가석방하지 않는 종신형 형태의 무기징역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 2월 3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형제도가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비록, 사형제도는 정말 수형자의 목숨을 끊는 형벌이며, VCP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더 페어’에서 VCP 실행과 관련하여 찬반 토론을 펼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대립을 이루고 있다.

 

또한, 최근까지도 사형 제도를 대체할 만한 형벌 제도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드라마 ‘더 페어’ 속 VCP가 시사하는 바이기도 한 기존 형벌 제도의 방향성 제고는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주제임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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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하면 그에 마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범죄를 예방하려는 마음보다, 죗값을 치르게 해서 똑같은 고통을 주겠다는 복수심이 앞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마음이다. 다른 소중한 인권을 짓밟고 파괴하였고, 그의 가족의 인생까지 몰살해 버린 피의자의 삶이 그저 감옥 속에서 잘 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처벌의 강도와 방식에 있어서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 페어’의 VCP처럼 어떤 형벌 제도든 정말 피해자의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처벌이 그저 단순한 복수와 응징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미래에는 정말 VCP와 같은 가상 범죄 프로그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단순히 형벌이 강해져서 범죄가 사라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만큼은 그들이 죗값을 받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남을 죽여도 나는 그런대로 살 수 있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도록, 적어도 피의자가 엮어낸 지옥이라는 고통의 굴레 속에 피해자가 갇혀 살지 않도록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아트인사이트 신송희 에디터.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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