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빠의 음악을 들으며 [사람]

노래를 통해 아빠를 이해하다
글 입력 2021.04.1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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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유난히 음악을 좋아하신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대학생때 맨날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너무 크게 듣고 다녀 "그러다 귀 나빠진다"라는 잔소리를 매번 하셨다고.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50대가 된 아빠는 여전히 귀가 찢어질듯 음악을 크게 들으시고 같은 노래를 여러 번 감상하신다.


오늘도 아빠는 집에 들어오시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음악을 틀으셨다. 저번에 아빠 차에서도 계속 들었던 노래다. 분명 문이 닫혀있는데도 건너방에 있는 나한테까지 프레디 머큐리의 열창이 들린다. 노래는 샤우팅이 폭발하는 Queen의 음악이다. 어김없이 또 볼륨을 최대로 올리셨겠지.

 

 

 

아빠의 음악



아빠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거창한 질문같기도 하지만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아빠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으신다. 나는 궁금한데 아빠는 당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재끼는 것이 쑥스러우신지, 아니면 귀찮으신건지 아무튼 자세하게 얘기해 주시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한건 아빠의 차에서, 혹은 아빠 방에서 새어나오는 노래를 들으면 꼭 당신의 역사를 엿듣는 기분이 든다. 음악을 통해 아빠의 애환, 추억, 열망, 사랑, 고달픔, 의지, 다짐.. 등이 선율로써 재탄생하는걸까? 아빠가 말씀하지 못했던 깊은 속내를 음악으로 툭 털어내는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든건 아무래도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는 귀에 대못이 박힐 정도로 여러 번 들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의 음악을 들으면 아빠의 심리 상태를 유추해볼 수 있다. 좋아하는 노래는 곧 많이 듣게 된다. 이는 울림이 있는 음악이다. 아빠에게 울림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당신의 인생에 필적할 만한 작품일 것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문득 '그래서 요즘 아빠가 듣는 노래는?'을 고민하게 됐다. 행운스럽게도 아빠와 동생 그리고 나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같은 아이디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아빠가 요즘 많이 들은 곡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사랑'


 

 

 

몇 달전 문득 아빠가 술에 취하신건지, 진짜 맨정신으로 보내신건지 알 수 없지만, 가족 단톡에 이런 메세지를 보내셨다. '엄만 아빠에게 매일 첫사랑'.

 

아빠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사랑> 뮤직비디오 링크를 보내셨다. 엄마는 뒤늦게 나와 동생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아빠의 첫사랑은 엄마가 아닌데, 왜 자꾸 첫사랑을 엄마로 얘기하는지 웃긴다"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아빠가 이 노래를 계속 차에서 트시고 흥얼거리시는게, 계속 가족들에게 이 노래를 홍보하시는게 마냥 웃기기만 했다. 그래서 동생과 아빠를 은근히 놀리는 목적으로 "넌 나에게~ 매일 첫 솨랑." 이렇게 따라부르곤 조용한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최근 3개월 간 아빠께서 가장 많이 들은 곡 1위가 이 노래인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이 사뭇 달라졌다. 아빠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는 것이 마냥 웃기지 않게 되었다. 진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노래에 반응하고 있으셨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처음, 널 만나던 그 순간

숨이 벅차오르던 기억

혹시 네가 들었을까 봐

들켰을까 봐 마음 졸이던 날, 기억해


넌 참 목소리가 좋았어

같이 걸을 때 더 좋았어

그래, 그럴 때가 있었어

가슴 시리게, 사랑했었던 날 있었어


넌 나에게 매일 첫사랑

봄눈이 오듯 그렇게 나는 기다려

설레이던 그날도, 취했었던 그 밤도

마음이 이상해, 바람 불어올 즘이면


-에피톤 프로젝트 <첫사랑> 가사 중에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사랑>은 사랑 중에서도 처음이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 감미로운 아티스트의 목소리, 여운있는 선율이 담긴 '감성' 종합 선물 세트다.

 

홀로 이 노래를 들어보았다. 아빠 차에서 들었을 때는 동생과 낄낄대고 웃느라 이 노래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는데, 직접 들어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가만히 이 노래를 들으니 새삼 아빠의 감성이 여전히 젊다는걸 느꼈다. 가사의 의미부터 곡의 느낌, 분위기까지 모두 '아련함' 그 자체다.

 

특히 MV에 등장하는 국민 첫사랑 수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설렘 세포를 톡톡 건드린다. 아빠도 뮤직비디오를 보시고 우리 가족에게 전달까지 할 정도였으면, 영상 속 아름다운 청춘과 사랑에 대하여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하신다는 의미셨겠지.

 

"넌 나에게 매일 첫사랑/ 봄눈이 오듯 그렇게 나는 기다려"


잊고 있었던, 아니 계속 들어도 몰랐던 아빠의 풋풋한 감성을 깨닫게 되었다. '아빠는 이 노래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혼자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상상의 갈래가 펼쳐진다. 과연 아빠 말대로 이 노래를 들으며 엄마를 생각하실지, 아니면 아주 먼 옛날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고 계실지.. 궁금하다.

 

분명한건 아빠는 아직도 젊으시다는 것이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앞서 소개한 에피톤 프로젝트의 <첫사랑>이 아빠의 순정, 젊은 감각을 보여준다면 이번 음악은 삶의 농도가 짙어진 50대 가장으로서 아빠께서 깨달은 바를 압축한 느낌이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후렴)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중에서

 

 

'바람의 노래'를 처음 알게된 건 KBS 드라마 <고백부부>를 보며 들은 가수 소향의 리메이크 버전이었다. 그 당시 고2였던 나는 드라마 OST로만 이 노래를 접했기에 원곡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빠는 차에서 이 노래의 원곡인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을 즐겨 들으신다. 아빠는 이 노래의 가사를 뼛속 깊이 체감하시는 듯 보였다. 운전하는 내내 이 노래를 트는 모습 속에서 알 수 있었다. 간절하게 원하는 깨달음의 목적과 대상은 '인생' 그 자체였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지금까지 아빠는 많은 실패와 고난을 경험하셨다. 역시나 앞으로도 계속 경험하실 것이다. 누구든 그럴테니까.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모든 과정, 생로병사가 고통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아빠는 이 진리를 <바람의 노래>를 통해 계속해서 깨닫고 느끼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나 역경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사회에 막 발을 내디딘 나로서는 저 모든 가사를 온전히 알 수가 없다. 아직 나를 삶의 한계로 몰아붙여본 경험이 적으니까. 그러나 아빠가 듣는 이 노래를 통해 다가올 인생을 예습한 느낌이 든다. 어려움에 봉착하더라도, 결국 사랑할 것.

 

아빠는 여전히 깨닫고 계신다.

   

 

 

아빠의 음악을 듣는 나


 

티는 내지 않지만 나는 아빠가 무척 궁금한 딸이다. 그래서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몰래 꺼내보고, 아무도 없을 때는 엄마에게 쓴 연애 편지를 몰래 정독하며 가끔씩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빠에게 관심이 참 많았고, 지금도 많다.

 

아빠와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아빠와 나는 꽤나 무심하다. 둘 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있어도 진지하게 서로 대화를 하거나 얼굴을 마주보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의 음악만큼은 종종 듣는다. 아빠의 입을 통해서는 차마 들을 수 없었던 뒷 이야기들을 또 '몰래' 듣는 기분이다. 참 재밌다. 이것이 내가 가장 소극적으로, 그러나 진심으로 행하는 아빠에게로의 두드림이다. 아빠의 방으로 다짜고짜 들어가 아빠 곁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던 강아지같은 어린 시절과 행동만 다를뿐, 진심은 여전히 같다.

 

나도 여전하다.

 

 

 

신지예.jpg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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