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글을 쓰는 어른이 된 이유 [도서/문학]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을 읽고
글 입력 2021.04.1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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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 스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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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10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10대 때 글쓰기 스승들을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그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20대가 되었다. … 내게 문학의 향기를 알려준 사람들. 사랑은 말과 몸을 버무려 완성하는 거라고 말해준 스승들. p.9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이라는 에세이는 이런 글로 시작한다. 이 책은 작가가 글쓰기를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다. 작가가 가르치고 쓰는 많은 것들은 자신의 스승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수업을 통해 익혔던 글에 대한 중요한 진실뿐 아니라, 어린 작가를 기쁘거나 아쉽게 했던 순간이 제자를 가르치는 모습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일기장 아래 선생님의 코멘트에 대한 뿌듯하고 따뜻한 기억은, 글방 제자들을 위한 수많은 편지로 남았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남겼던 편지들을 함께 읽으며, 편지의 수신자들이 부러워서 마음이 찡할 정도였다.


나의 글쓰기에도 영향을 준 중요한 스승님들이 계시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려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에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의 담임 선생님은 다정한 분이셨다. 무엇보다도 당시 시인이 되겠다고 떠들고 다녔던 내 꿈을 처음으로 웃거나 수정해주지 않은 어른이었다.

 

선생님은 꼭 내가 좋은 시인이 될 것이라 말씀해 주셨다. 학급 문집을 만들 땐 나에게 글 한 꼭지를 맡겨 주셨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백일장에서, 처음으로 반듯한 상장 커버에 담긴 상장도 받았다. 상장도 칭찬도 다 좋았지만, 나를 지지해주던 선생님의 막연한 믿음이 제일 좋았다. 선생님을 떠올리면 내가 아직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글을 썼다. 엄마는 책 읽고 글 쓰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를 독서 수업에 보냈다. 당시에는 독서 논술 같은 수업들이 꽤 인기가 있었고 동네마다 비슷한 수업들이 열렸다. 나는 같은 아파트 단지의 선생님께 글쓰기를 배웠다. 그 선생님을 지금도 깊게 기억하고 있다. 무려 4년 동안이나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시던 분이시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거의 한 두 달마다 꿈이 바뀌는 내 시끄러운 장래희망을 한 번도 질려 하지 않고 들어주셨던 분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독서 수업을 마무리해갈 때 즈음 선생님은 나에게 영화 평론집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사 주신 거였다. 평론집에는 내가 못 본 영화가 훨씬 많았지만 나는 그 책을 아주 소중하게 읽었다.

 

보다시피 나는 많은 어른의 기대와 칭찬 속에서 아주 버릇없게 글을 배웠다. 덕분에 내 글은 엄격한 교육을 받은 글들처럼 정돈되고 날카롭지 못하고 아주 삐죽삐죽 제멋대로다. 대신 글쓰기는 내 인생에서 항상 즐겁고 마음 편안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글을 꾸준히 쓰게 된 이유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11살 박경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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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의 글이란 다 비슷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초등학생 시절 내가 쓰던 글들은 대부분 경험의 나열이었다. 하루의 일과를 나열한 후, 몇 개의 질문들을 덧붙이고, 참 재미있었다는 말로 마무리하곤 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발견할 만한 것은 없다고 치부했다. 그것도 내 착각이었다. 나도 아이들의 것을 너무 손쉽게 일반화해버리는 오만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깊은 관찰력으로 글에서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읽어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혜인이는 지금까지 주로 관찰자로서의 글을 많이 썼는데, 내년에는 네가 주인공인 글도 보고 싶어. 혜인이가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도 기대해볼게. 너의 모습이 얼마나 유일무이하고 사랑스러운지 알아채 주길. p.109

 


이 부분을 읽으면 나는 혜인이가 얼마나 멋진 아이일지 상상하게 된다. 남들을 찬찬히 관찰하는 눈을 가졌다니. 얼마나 다정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일까? 내 글은 대부분 과할 정도로 나 자신으로 가득 차 있고는 한데 말이다.


 

유나는 가끔씩 주어가 생략된 문장을 쓰곤 해. „카톡이 왔다”라든지, „싫다고 한다”라든지, „입속으로 들어간다”라든지, 누가 혹은 무엇이 그렇게 되고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 과감한 생략을 하지. 그렇기 때문에 유나의 문장은 속도를 획득해. … 유나의 글은 아주 아름다운 한 문장이나 엄청나게 참신한 표현 같은 게 눈에 띈다기보다는, 문단 단위로 빛이 나. p.133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순간에 자신의 고유한 글투를 획득하는지도 모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는 내 멋대로 이 학생이 글만큼이나 경쾌하고 시원시원한 사람일 거라고 상상하게 된다. 내 글에도 그만큼이나 내가 묻어날 것이다. 좋은 면이든 혹은 내가 싫어하는 면이든.

 

그렇게 글을 통해 미지의 학생들을 머릿속에서 한 명씩 호명해 나가다 보니, 문득 이 시기의 나는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해졌다. 들여다본 지 너무나도 오래됐던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을 다시 펴 보았다. 거기에서도 11살의 박경원을 읽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11살, 원통초에서 금암초로 이제 막 전학을 간 박경원은 솔직하고 비판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일기는 대부분 오늘의 한 일을 떠올리며 시작하고, 꼭 반성 거리나 교훈을 얻으며 끝이 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제목: 성대모사

나도 성대모사를 잘해보고 싶다. 그런데 난, 누군가 내 목소리를 따라 하면 좀 싫을 것 같기도 하다. 정작 난 성대모사 듣는 걸 좋아한다. 왜 그럴까? 나만 좋으려는 이기심 때문일까?

 


스스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끝난 일기이다. 비판의 화살이 본인에게도 예외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꽤 공평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종종 잊고 사는, 남들은 안되고 나만 되는 이기심을 이때는 지적할 줄도 알았다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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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지금도 만만치 않게 심각한 건망증은 이 당시에도 심각했던 것 같다. 며칠 일기장을 학교에 두고 갔는지 잘라 붙인 A4용지가 덧댄 일기가 이어졌다. 그 다음 날의 일기 제목은 건망증 말기이다.

 

 

며칠 전부터 건망증 악화가 되었다. 수학책도 알림장도 빼먹고 다니는 가하면, 뭐 하나 제대로 챙기는 것이 없다. 예전에도 건망증이 조금 있었다. 그래도 좀 고쳐졌나 싶었는데, 또 악화… 하필이면 시험 기간에…

 

 

다행히 이 일기는 그렇지만 시험이 끝나면 다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주에는 일기장을 한 번 더 놓고 왔던 모양이다. 덧붙여서 팔랑거리는 A4용지를 일기장 안으로 밀어 넣으며 나는 24살에도 고쳐지지 않은 나의 건망증에 대해 생각한다. 속상함이 뚝뚝 묻어나는 이 일기를 쓰던 나에게 너무 기죽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건망증은 고쳐지지 않지만, 나는 점점 거기에 잘 적응하게 된다. 지금 심각해 보이는 고민도 나중에는 내 인생에 별 무리를 주지 못한다.

 

 

 

내가 글을 쓰는 어른이 된 이유


 

돌이켜 보면 나는 24살의 어른이 될 때까지 꾸준히 글을 써왔다. 중학교 땐 백일장에서, 고등학교 땐 일기장에, 대학교 땐 문학 수업에서. 또 아트인사이트에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글과의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내가 누군가에게 글을 배우고, 글을 썼던 경험 덕분일 것이다. 운이 좋게도 마음껏 글을 쓰고, 누군가 내 글을 읽어봐 줄 기회가 가득한 세상에서 살았다.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게 마치 필연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촘촘한 역사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포기해 버렸을 게으른 나 자신을 생각하면 다행인 일이다. 11살의 박경원이 그랬듯, 오늘의 글도 반성과 함께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그러니 게으르지 말고 계속해서 글 쓰는 어른으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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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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