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느 날 내가 사망년이 되었다 [사람]

가장 자유롭고도 자유롭지 않은 존재, 대학생
글 입력 2021.04.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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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가을의 저녁. 석식을 먹고, 늘 그렇듯 삼선 슬리퍼를 끌며 학교 앞 편의점으로. 편의점에 갔던가? 아니면 학교 뒤편의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를 사 먹었던가? 어쨌든. 야자 시간에 맞추어 정문을 막 통과했을 때였던 것 같다. "어, 별똥별이다!" 하며 친구가 가리킨 손끝에는 진짜 별똥별이 떨어지는 듯한 모양새가 둘이나 있었다. 수능까지 디데이를 세며 어디에든 기도해야 할 것 같았던 날들의 사이에서 별똥별의 출현이라니.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각자 소원을 빌었다. 나는 뭘 빌었지? 아마 대학에 무사히 합격하게 해 달라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진짜 빌고 싶었던 건 대학 합격이었는지, 지겨운 고3 생활의 졸업이었는지. 심지어 저게 진짜 별똥별인지 아닌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2021년, 난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5학기째라니, 물론 더 오래 다닌 사람들도 많겠지만 열아홉, 스물 때를 생각하면 참 감회가 새롭다. 흔히 대학교 3학년을 '사망년'이라고들 한다. 온갖 스펙 쌓기, 취업 준비 등으로 사망(...)할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자 신조어다. 나는 내가 3학년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 게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 달라진 건 없다. 나는 여전히 전공 수업 중에도 '말하는 감자'에 불과하다.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 역시 온갖 말하는 구황 작물들을 자처한다. 그런데, 달라진 것도 참 많다.

 

나는 오늘 이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털어내 보려 한다. 혹시 아직 이 시기를 겪지 않으셨다면, 지레 겁먹지는 않으시길. 혹시 이 시기를 훌쩍 넘겨 또 다른 삶을 살고 계신다면, 인생 후배의 칭얼거림이라 생각해 주시길. 삶에 안 힘든 시기가 어딨겠는가. 나는 그저 닮았지만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는 우리가, 어쨌든 함께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남들이 듣기엔 조금 비관적이거나 우울할 수 있지만 정말 솔직해질 테니, 그대도 솔직한 마음으로 읽어 주시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몇 년 뒤의 나라면 조금 부끄럽고 쪽팔리고 오글거려도 그 시절의 감정이구나, 하고 귀엽게 봐주길.

 

 

 

 

나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여전히 빈틈이 많고 부족하고

세상이 그저 너무 어렵고

무섭기만 해

...

선택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조금은 내려놓고 싶기도 하고

흔들리는 마음 기댈 곳이 없어도

후회 않으려 해 견뎌보려 해

 

이승기 - 소년, 길을 걷다

 

 

 

길을 잃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파릇파릇한 새내기가 되었다. 온종일 종종걸음으로 캠퍼스 지리를 익혔고, 선배에게 하나하나 물어보며 학교생활을 익혔다. 내가 1학년 때 가입했던 동아리, 소모임 등 단체는 5개. 그만큼 어딘가에 속하고 싶었는지, 친구들을 빨리 사귀고 싶었는지. 아마 대학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설렘 그 어딘가의 감정에서 비롯된 행동인 것 같다. 통학 때문에 막차 걱정을 하면서도 온갖 뒤풀이와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했고, 활발한 과 분위기 덕분에 걱정보다는 쉽게, 나는 대학의 일원이 되었다. '대학 친구 다 의미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머쓱해질 정도로 너무 소중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2년이 지나고, 3학년. 나는 교내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속해 있던 곳들은 모두 2년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어디의 부장, 어디의 기획부장, 갖고 있던 직책도 모두 한순간에 사라졌다. 2년간의 활동에 후회는 없고, 그 일들을 내려놓은 건 섭섭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원하고 후련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새내기 시절처럼 스스로 새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보통 성인이 되면 사회에 내던져지는 거라고 말하던데. 사실 내가 느끼기에, 내 경우에는 스물은 사회에 내던져진다기보다는 대학에 잘 떠안겨진 상태였다. 고등학교가 공주님 안기라도 하듯 날 잘 들어서 대학에 앉혀 둔 느낌. 이제야 밖에 내던져진 느낌이 든다. 나는 그냥 매일 아이유의 분홍신을 부를 수밖에 없는 거다. 길을 잃었다~어딜 가야 할까~

 

 

 

가장 자유롭고도 자유롭지 않은 존재, 대학생


 

3학년이 되면 자동으로 머리에 취업, 시험, 진로에 대한 정보가 쏙쏙 들어와 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친구 문제, 성적 문제로 정신없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이제야 슬슬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길을 정하라니.

 

온종일 뭔가 하기는 한다. 수업도 듣고, 과제도 하고, 대외활동도 하고.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최강 J(MBTI 성격유형 중, 계획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로서 내가 내일 뭐 해야 할지, 다음 주 수요일에 무얼 해야 할지는 다 정해 놓았다. 하루는 너무 짧아서, 항상 과제는 마감 시간이 다 되어 제출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1년 후에, 혹은 3년 후에 해야 할 일은? 하고 있을 일은? 그걸 모르겠다는 거다. 그 미지의 세계를 생각하면 22년, 비교적 짧은 삶을 살아왔음에도 남은 인생이 너무 길게만 느껴진다.

 

'그거 다 네가 벌린 일이잖아'라는 말을 들으면 얌전히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게 대학생의 숙명. 분명히 이번 학기 휴학하겠다 다짐했던 나였는데, 휴학도 안 했고 심지어 대외활동이 이미 4개다. 자꾸 공모전에도 눈독을 들인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모두 아무도 안 시켰지만 내가 벌린 일들이 맞다. 그래도 가끔은 참 피곤하다. '진짜 내가 하고 싶어서 하겠어?!'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고. 힘들다는 말조차 눈에 보이는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까 두렵다.

 

내가 지금 바쁘게 사는 건 어쩌면 불안정함 속에서의 눈속임. 차라리 퇴근길 만원 지하철 사이가 낫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전혀 안정적인 상황이 아닌데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 내가 뭔갈 붙잡고 있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상황.


이런저런 활동들 사이에 나를 흥분시키는 일들도 있다. 즐기고 웃고 깔끔하게 끝내면 참 좋을 텐데 꼭 그걸 진로와 연결해서 기분을 다운시키는 나는 (또) 참 이상한 사람. 천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모순적이게도 가끔은 '내가 그만큼의 천재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날 때도 있다. 나에 대한 인정과 욕심 사이의 괴리. 아마 난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달 전쯤이었을까, 대외활동 면접을 봤다. 왜 이 활동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시더라. 그 활동은 스펙 쌓기의 목적보다는 내 흥미와 사심이 더 들어간 활동이었다. 준비한 예상 질문이 아니었는데, 자연스레 대답이 나왔다. "이제 절 소비하는 게 아니라 절 쌓아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

 

 

 

나의 피곤함은 이기심을 낳지만


 

대학생의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한 가지 일만 할 수 없다는 것. 특히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는 참 고역이다. 이 일 저 일, 저 과제 데드라인, 이 프로젝트 마감일 등등. 생각이 끝이 없다. 그렇게 생각의 블랙홀에 빠져들다 보면 요즘같이 집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수업을 들을 때도 쉽게 피곤해진다. 밤이 될 때까지 SNS나 메신저를 한 번도 확인하지 못하는 날도 허다하다.

 

하필 내 3학년은 코로나 시국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다 보니 정말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들도 많다. 각자 깊은 생각은 이어지지만 그때그때 그 생각을 나누기가 어렵다. 가끔 정말 오랜 시간 생각에 잠길 때면 이대로 혼자가 될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나처럼 주변 친구들도 모두 자신만의 여정을 떠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고생하고 있다. 분명 한 학과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이제는 다 하는 공부가 다르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 보니 서로를 챙기는 방법도 익숙지 않고, 모두 힘들다 보니 관계에 대한 권태도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 그럴 때면 '내 감정과 표정도 읽을 줄 모르는데 상대의 감정까지 알기엔 내가 너무 어린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정말 속상하다. 친구가 가는 길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것이. 그래도 말해 주고 싶어. 난 네 여정에서 필요한 지도와 나침반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너의 가방에 초코바 하나, 물 한 병, 그리고 중간에 힘들 때 읽어 볼 편지 한 장은 넣어 둘 거야.

 


 

 

작은 두려움 아래 

천천히 두 눈을 뜨면


세상은 그렇게 모든 순간

내게로 와 눈부신 선물이 되고

숱하게 의심하던 나는 그제야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유 - 아이와 나의 바다

 

 

내 하루는 여전하다. 해가 밝으면 다시 온라인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대외활동 회의를 해야겠지. 그래도 나는 잠시나마 우리가 서로 등을 기대고,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마치 멋진 전우들처럼. 지금 하고 있는 게 무엇이든 간에,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나만의 재능. 이 모든 순간과 고민이 하나에 3학점씩 쌓이고 쌓이면, 웃으며 이 시기를 졸업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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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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