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에서 비인간으로, 한사코 실패하는 훈련 [미술/전시]

아르코미술관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글 입력 2021.03.3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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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기간 | 2021년 1월 21일 - 3월 28일

장소 | 아르코미술관

 

 

 

휭, 추-푸



1월 21일부터 3월 28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홍이현숙 작가의 개인전 “휭, 추-푸”가 열린다. 홍이현숙 작가는 여성과 동물 등 사회적 타자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불러들여 교감하려고 시도하며, 정치적 폭력과 생태적 파괴의 시대, 공멸과 공생 사이에 놓인 위기상황 속에서 예술적 교감을 통한 대안적 상상의 공간을 창조한다. 본 고는 특히 홍이현숙 작가의 동물과의 교감의 시도에 주목하고자 한다.

 

 

 

동물의 목소리



동물들은 인간의 자연 착취의 영원한 희생자이자 대상, 노예처럼 비춰지곤 한다. 동물권 운동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 바로 ‘Voiceless Animals(목소리 없는 동물들)’과 ‘Vegan for the Animals(동물을 위해 비건)’이다. 동물은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없기에, 익명화된 이 존재들을 위해 인간이 대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동물권리 운동의 현주소다.


하지만 동물도 목소리가 있다. 동물도 분명,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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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농장에서 탈출한 소, AP Photo/Maciej Zych


 

2018년, 폴란드의 한 농장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갈 예정이던 한 소가 쇠 울타리로 돌진해 농장을 탈출하고 호수를 헤엄쳐 도망가 섬에서 생존했다. 이후 소방대원까지 동원하여 소를 끌어오려 하자, 소는 다시 호수로 뛰어들어 다른 섬으로 헤엄쳐 도망쳤다. 그 섬에는 농장에서처럼 먹을 게 풍부하진 않았지만 자유가 있었다. 2007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동물원에서 두 남자가 호랑이에게 도발하자, 호랑이는 우리를 탈출하여 그 두 남자를 찾아 공격했다. 2013년에는 삼림을 불도저로 밀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한 우림에서 오랑우탄이 몸을 날려 불도저를 막아섰다. 이처럼 농장동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동원되는 동물, 야생의 동물 모두 할 것 없이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에 순응하고 싶지 않을 때 저항으로 반응한다. 이 사건들은 모두 뉴스, 다큐멘터리, 소셜미디어 등으로 퍼지며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동물 권리를 위한 운동을 촉발시켰다.


사람들은 동물들의 저항을 보고 ‘미쳤다’거나 그 동물을 케어하는 조련사, 농부 등의 능력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동물들은 미치지 않았고, 조련사의 능력에 따라 동물이 저항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동물의 반항은 언제나 일어나는, 흔한, 보통의 일이다. 부동자세로 멈춰있는 승마장의 말, 입안이 모두 헐어버릴 때까지 우리의 쇠창살을 물어뜯는 돼지… 꼭 이렇게 기사화되거나 극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동물들은 항상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물에게 ‘목소리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중심적인 편협한 사고와 맞닿아있다. 꼭 인간의 언어로, 기득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을 해야만 목소리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저항을 목소리로 보지 않으면 동물을 생각과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주체성과 목소리를 의심함으로써 우리는 동물을 ‘위해’ 동물권리를 주장하게 되고, 동물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아 그들 대신 발화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구원자 서사에서 벗어나 동물의 대리자가 아닌 동료가 될 수 있을까?

 

 


해러웨이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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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해러웨이와 미즈 카이옌 페퍼, 러스틴 호그니스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는 자신의 반려견 미즈 카이옌 페퍼와 키스를 한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는 금지된 대화를 나눠왔다. 우리는 입으로 정을 통해왔다. 우리는 사실로만 이루어진 이야기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로 묶여 있다. 우리는 불통에 가까운 대화로 서로를 훈련하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를 살 속에 만들어 넣는다. 서로 너무 다르면서도 그렇기에 소중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저분한 감염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도나 해러웨이, <반려종 선언문>

 


해러웨이와 미즈 카이옌 페퍼가 키스를 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훈련 덕분이다. 인간과 개는 오랜 시간과 환경을 공유하며 서로를 생물학적으로 훈련한 끝에 유사성을 갖도록 진화하게 되었고, 그래서 키스를 하며 타액을 나누어도 죽을 병에 걸리지 않는다. 또한, 해러웨이와 미즈 카이옌 페퍼는 사랑, 끝없는 관심을 공유하며 서로를 훈련했기 때문에 서로의 혀를 물어뜯지 않고 키스를 할 수 있다.


동물과 인간의 훈련이라고 하면 인간이 동물을 일방적으로 훈련시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훈련은 일방적일 수 없으며,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책임감, 소통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 그리고 집중력이 필요하다. 가장 흔한 훈련으로 보상을 통한 훈련이 있는데, 가령 배변 패드에 배변을 하면 반려동물에게 간식을 주거나 칭찬을 해주는 등의 훈련을 생각해볼 수 있다. 동물은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 인간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인간은 동물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적절한 보상을 골라 제때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계속하여 반복되고, 그 반복 속에서 동물과 인간 모두 지치지 않아야만 훈련이 완성된다.


훈련은 공생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서 서로를 훈련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훈련 없이는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소통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에는 서로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고—마치 친족처럼—서로에게 가까워지려고 하는 무던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훈련을 통해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훈련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순간 인간과 동물이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조금씩 공유하는 것이 많아진다. 이렇게 훈련을 통해 우리는 동물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대리자가 아닌 동물의 앨라이로서 이야기하는 ‘친족’이 될 수 있다.

 

 


동물의 목소리를 듣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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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마리 등대(2020), 스피커 9대, 가변크기

 

 

전시장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여덟 마리 등대》다. 어두운 방 안에 뗏목이 놓여있다. 그 밑으로는 잔잔히 푸른 빛이 번져있다. 조심스럽게 뗏목 위로 올라서면 뗏목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치 파도 위를 유영하는 것처럼 조금 어지럽기도 하고 멀미가 난다.


뗏목의 바닥은 익숙한 노란 장판으로 도배되어있다. 외딴곳으로 떠날 것 같으면서도 아늑한 집 같은, 배와 방, 그 사이의 장소인 그곳 바닥에 앉아 잠시 앉아서 눈을 감았다. 9대의 스피커에서 고래 8종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고래의 목소리는 인간의 언어로 온전히 들을 수도, 묘사할 수도 없기에 녹음된 고래 목소리의 데이터를 조금씩 변형한 것이 재생된다.


고래의 목소리 중에는 우리가 들을 수 없는 매우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도 있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그 목소리를 ‘부디 이 작품에서 찾아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잠자코 앉아서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려가며 그 목소리를 찾았다. 물론 끝까지 찾지 못했다. 그것은 온전히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었다. 잠자코 앉아서 듣는 시간이 내가 고래와 시도하는 훈련이었다.


앉아있다보니 파도가 잠잠해지고 바다는 고요해진다. 뗏목은 어딘가 해변에 밀려가 닿은 듯하다.


 

 

동물의 목소리를 내어보는 훈련



《사자자세》에서 작가는 사자처럼 네 발로 걷는다. 바닥에 가까워져 사자의 시선으로 내려간다. 입을 크게 벌려 사자의 포효를 흉내 내기도 한다. 작가는 사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사자를 한다. 사자를 ‘한다’는 것은 사자가 ‘된다’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사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아가 그들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하고 무례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자를 하는 것은 다르다. 사자를 하는 것은 사자의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다. 투시법적인 시선으로 사자를 바라보기를 그만두고 다른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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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자세(2018),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고래자세》는 고래의 언어를 받아 적고, 그것을 작가의 입으로 내뱉는 훈련이다. ‘쁘-으-음 읗 믐 으~음’하는 자막과 소리를 함께 듣다 보면 작가가 얼마나 소리를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며 그것을 받아적었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가는 받아적은 것을 읽으며 고래의 목소리를 내보기도 한다. 어딘가 이상하고, 조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고래를 앞에 앉혀놓는다고 해서 고래가 작가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리 없다. 하지만 그래도 작가는 계속한다. “쁘으음!”


사자의 시선으로 내려가는 것, 사자를 하는 것, 고래 목소리를 받아적고 따라 하는 것, 이 모든 수행은 그들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무던한 노력이다. 훈련을 통한 교감의 시도다.

 

 

 

한사코 나아가는 훈련


 

물리적 접촉은 교감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접촉이 금기시되며 우리는 교감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 듯하다.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 껴안아 보듬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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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202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작가는 북한산 승강사 마애불을 카메라로 담으며 시각을 촉각으로 변환한다. 작가의 목소리는 천천히 나를 인도했다. 이곳을 쓰다듬어보라, 폭신함을 느껴보라, 천천히 훑어보라, 푹 들어간 부분을 만져보라.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기 위해 나는 멀리서 불상을 천천히 훑고 눈길로 어루만지는 훈련을 했다. 10분쯤 훈련을 지속하니 손끝이 저릿한 기분이 들며 무언가 만져지는 듯 하다. 손을 뻗어 허공에 대고 폭신한 부처의 손을 만지려고 하면, 무언가 따스한 느낌이다. 나는 그 순간 끝없는 실패의 가능성을 느꼈다.


말로 불상을 만지는 일, 고래의 목소리를 듣는 일, 사자의 시선으로 내려가는 일… 어쩌면 모두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하지만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실패다. 우리는 그들이 될 수 없고 그들에게 한없이 가까워질 뿐이다. 손끝에 화강암의 거친 질감이 슬쩍 느껴졌다면—그것은 물론 화강암을 실제로 만진 것은 아니겠지만—조금 더 훈련해서 손바닥으로 그 촉감을 확장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사자에게도, 고래에게도 말이다.

 

*

 

 

나의 시는 한사코 나이면서 나와 다른 것, 나 아닌 것, 낮은 것, 분열된 것, 작은 사람들을 향해 가는 하기의 작용이다.

 

김혜순, <여자짐승아시아하기>

 


결국 훈련이란 그들을 향해 한사코 나아가는 일이다. 완벽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고 한사코 그들을 향해 가는 일. 홍이현숙 작가는 동물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다고, 그들의 시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동물의 목소리를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동물을 대상화하여 그들을 대신해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가며 그들 위치에 서서 친족이자 동료가 되어 이야기한다.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라는 동시대적 질문의 해답이 여기에 있다. 끝없이 훈련과 교감에 실패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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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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