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타인을 통해 깊어지는 김종관 감독의 세계, 영화 '아무도 없는 곳'

글 입력 2021.03.2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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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은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이미 단단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장편영화 중 가장 잘 알려진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은 모두 사건보다는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3월 31일 개봉하는 <아무도 없는 곳> 역시 소설가 ‘창석(연우진 분)’이 네 곳에서 네 명의 인물을 만나고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는 이야기다. 전작에서 다뤄온 예술, 거짓말, 관계라는 주제는 이번 영화에서도 나타나며, 비슷한 시기에 집필된 <밤을 걷다>와 ‘죽음’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밤을 걷다>를 다시 살펴보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전작에서 다룬 주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최악의 하루>, 거짓말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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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최악의 하루>는 배우 지망생인 ‘은희(한예리 분)’가 하루 동안 세 명의 남자와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다. 은희는 연기 연습을 마치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한국에 방문한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 분)를 길에서 만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남산공원에서 배우인 남자친구 현오(권율 분)를 만나 그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유부남이었던 은희의 전 남자친구 운철(이희준 분)은 은희의 트윗을 보고 남산공원으로 은희를 찾아온다.

위의 대사는 영화의 초반과 마지막 부분에 두 번 나온다. 처음은 은희가 연기를 연습하는 상대가 이야기하고, 마지막에는 은희의 두 남자친구가 만나는 ‘최악의 하루’를 경험한 후 은희가 혼자 읊조린다. 영화 내내 은희는 현오와 운철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현오와 운철 또한 비겁한 거짓말과 궁색한 변명으로 은희의 신뢰를 잃는다.

하지만 서툰 영어로 소통하는 은희와 료헤이는 서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고 (배우와 소설가) 자조적으로 말하는 둘이지만, 오히려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기에 더 솔직해지고,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둘은 영화 마지막에 다시 만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료헤이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을 만나는 것 같은 설정도 김종관 감독의 특징적인 플롯 구성 중 하나다.

 

 

 

<더 테이블>, 카페와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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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이후 열린 GV에서 김종관 감독은 카페에서 멀리 앉은 이들의 대화를 듣곤 한다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의 대화인데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두 사람이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흥미롭고, 자연스럽게 이를 영화에도 반영했다는 것이다.

<더 테이블>은 전 남자친구를 만나는 연예인, 결혼 사기를 공모하는 두 사람, 짧게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오랜만에 만난 두 남녀, 결혼을 앞둔 전 여자친구와 만나는 남자가 같은 카페의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는,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다.

 

클로즈업과 미디엄 샷, 미디엄-롱 샷만이 반복되는 대화 장면임에도 대사가 주는 긴장감이 있고, 어떠한 정보도 없이 오로지 대화만으로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일까를 추리해보는 재미도 있는 영화다.

 

 


<밤을 걷다>, 서울의 골목길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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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삶에 저항하겠다고, 그렇게 생각한 거지.”

 

 

단편 <밤을 걷다>는 꿈속에서 자살한 연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둘의 추억이 남아 있는 서울의 골목을 걷는 이야기다. 앞서 언급한 장편영화와는 달리 단 두 명의 인물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대화가 극을 이끌어가는 구성은 같다. 배우의 차분한 대화와 잘 어우러지는 흑백의 미장센과 조명을 활용한 극적인 효과가 두드러진다.

넷플릭스 단편영화 시리즈 <페르소나>가 네 명의 영화감독이 각기 다른 배우 이지은의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기 때문에 다른 영화와 비교하여 보자면, <밤을 걷다>에서는 몽환적이고, 나른한 분위기를 주는 배우의 모습이 돋보인다.

 

<더 테이블>에서 연예인이 된 옛 연인에게 ‘찌라시’를 묻고, 지질하게 매달리던 남자 역할을 했던 정준원 배우가 다시 한 번 김종관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외로움에 공감하는 남자의 모습을 연기했다.

 

 

 

<아무도 없는 곳>, 죽음, 거짓말, 그리고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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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의 장면들은 부조리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만나기로 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냐고 묻는 여자, 공터에서 행인의 사이를 비집고 걸어가 이상한 말을 외치는 여자,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으며 자리를 뜨는 남자까지. 주인공 창석이 만나는 이들은 온통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 대사도 전작들처럼 직관적이고 일상적이기보다, 낯설고 비유적이다.

영화는 총 네 개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지하철 역사 안의 작은 카페에서 창석과 소개팅 상대(이지은 분)가 나누는 대화(이 둘의 진짜 관계는 나중에 밝혀진다), 두 번째는 창석의 후배이자 창석의 소설을 출판하기로 한 출판사의 편집자(윤혜리 분)와 창석이 나누는 대화, 세 번째는 창석과 오랜만에 만나는 사진작가 선배(김상호 분)의 대화, 네 번째는 창석과 바텐더(이주영)의 대화다.

 

앞서 언급한,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주제가 네 인물에게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비교하고, 대화를 통해 창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영화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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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네 사람의 대화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소재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관해, 혹은 죽어 있는 동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죽음은 산 사람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불쌍한 것,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작과 희망이며 어떤 이에게는 평생 몸에 남은 상처다.

 

창석은 자식의 죽음 이후로 배우자와의 관계 역시 어긋나버린 경험이 있고, 이들과의 대화는 각각 창석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창석이 두 번 주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때가 있는데, 하나는 첫 번째 대화에서 소개팅 상대에게 하는 ‘지어낸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바텐더에게 하는 ‘실제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어떤 것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어떤 것이 실제 이야기인지 구분할 수는 없다.

 

단지 창석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믿게 된다. 일상의 감각으로는 우리는 가짜 가운데서 진짜를 금방 알아볼 수 있고, 진짜만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명백히 실재하지 않는 영화 속의 세계에 2시간 동안 몰입하고, 그 세계가 마치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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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아무도 없는 곳>에는 모두 배우나 소설가처럼 거짓말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감독의 시선과 창작 방법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즉 거짓말로 창작한 세계는 분명 ‘아무도 없는 곳’이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감독이 직접 경험한 ‘진짜’가 섞여 있어 - 타닥타닥 소리가 나는 인도네시아 담배, 이문동의 토끼 등 영화 속에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상징들은 모두 감독이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이라고 한다 – 우리는 쉽게 몰입하게 된다.

 

김종관 감독의 세계에서 반복된 죽음과 거짓말, 그리고 창작이라는 주제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더욱 깊어지고, 확실한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 감독의 전작이 준 여운을 더욱 깊게 느끼고 싶은 모든 관객에게 추천한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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