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상상하는 그 세계에 관하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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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상상하길 좋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소설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채로운 감정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시집을 더 읽은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최근 들어 소설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바로 SF 장르 소설 때문이다. <지구에서 한아뿐>이라는 정세랑 작가의 책으로 SF 소설에 입문한 이후 자연스럽게 김초엽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번에 읽게 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통해 왜 그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추천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단편이 신기했다. 마치 현실에 있을 법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첨단과학이 발전시킨 미래사회, 하지만 그곳에도 당연히 그늘은 존재하기 마련일 테다. 그렇게 잊힐 수도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듯해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찡하게 울린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슬픔을 알지만 갈등과 고통, 불행은 상상의 개념으로만 남아있는, 그야말로 행복뿐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마을' 안에 사는 데이지가 소피에게 보내는 편지가 적혀있다. 편지 안에는 데이지가 '시초지'로 떠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긴 과정이 담겨 있다.
여기서 '시초지'는 '마을'에서 성인이 되기 위한 이들이 처음으로 떠나게 되는 미지의 곳으로, 어린아이들은 시초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시초지로부터 돌아오는 순례자를 맞이하는 귀환식에는 떠났던 사람들에 비해 채 절반도 되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이에 대해 데이지는 의문을 갖게 된다. 시초지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왜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지에 대해서.
유전적 결함이 없는 완벽한 인간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한 과학자 릴리를 통해 세상은 아름답고, 유능하고, 질병이 없고, 수명이 긴 '신인류'와 '비개조인'(신인류로 태어나지 못한 인간을 가리키는 말)으로 나뉘게 되고, 이 두 집단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신인류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세상의 끝으로 밀려나던 비개조인을 위한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릴리가 아마 지구 밖의 행복한 세계인 '마을'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의 수많은 기록과 과정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고통과 비탄으로 가득 찬 지구. 그러나 편지의 말미에서 데이지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은 순례자들이 그런 지구에 남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이르게 시초지로 향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고통과 비탄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완전한 행복을 찾기 위해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은 어떤 이유로 그곳에 남게 되었을까? 소피는 그곳으로 떠나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소피가 떠난 그 '지구'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같은 곳이라고 볼 수 있을까?
편지가 끝이 나고 이번에는 오히려 독자인 내게 더 많은 질문이 솟아오르게 된다. 어쩌면 소피와 나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세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억압과 차별과 혐오와 갈등. 그리고 더 완전한 행복을 위해 서로 모여 불완전한 이 세계에 대항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사랑함으로써, 이 세계에 잔류한다는 것.
스펙트럼
"나는 최초의 조우자였지."
우주에서 무려 40년 동안이나 실종되었다가 발견된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가 들려주는 믿을 수 없지만, 왠지 믿고 싶은 이야기, 바로 외계인과의 접촉에 관한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주 탐사선에 문제가 생겨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희진. 탈출 셔틀도 잃게 되면서 탈출에 대한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외계인의 존재를 마주하게 되고, 그들의 무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들은 희진에게 대체로 무관심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다정하고 온순하게 희진을 대했던 루이. 그러다 희진은 아주 특이하면서도 믿기 어려운 사실을 알게 된다. 외계인들의 수명은 굉장히 짧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 그렇게 첫 번째 루이, 두 번째 루이, … N번째 루이와 함께하면서 그와 그들의 무리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소통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꼭 외계인만 이렇게 낯선 존재로 인식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처음 만난 사람, 오래 보았지만 속을 도통 알 수 없는 사람, …. 같은 인간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에 대해 알지 못한다. 말도, 몸짓도, 표정도, 문화도 모든 것이 다른 외계 생명체와 희진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보며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세상을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된다. 얼마나 낯선 인물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으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 애쓰는지를.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최초의 조우자이면서도 희진처럼 그 의미를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공생가설
"류드밀라의 행성을 보며 사람들이 그리워한 것은 행성 그 자체가 아니라 유년기에 우리를 떠난 그들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곳'에 대한 기억을 그림으로 그린 화가 류드밀라. 류드밀라는 보육원에 있을 적부터 자신이 '그곳'으로부터 왔음을 주장해왔고, 기억을 좇아 '그곳'을 그린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죽고 난 뒤 뇌를 해석하여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통해 언어를 분석하던 '뇌의 해석 연구소'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 아기들의 울음을 분석하니 굉장히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드러나 오류인 줄로만 알았지만 그 생각들의 정체가 바로 '류드밀라의 행성'에서 온 '그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기들의 뇌 속에서 공존하는 '그들'은 우리들이 아주 어릴 때 함께하며 지성을 가르치다 일곱 살을 전후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서 더욱 궁금해지는 류드밀라의 정체. '그들'이 영영 떠나지 않길 바랄 만큼 외로웠던 류드밀라와 '그들'이 떠나지 않을 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던 그들의 신비로운 공생 관계.
이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인간적 소양을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되는 그 과정에 류드밀라의 행성으로부터 온 '그들'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정황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인간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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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하지만,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세계를 보다 선명한 색으로 그린 그림을 보는 듯이 담아낸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기는 수많은 질문과 이해.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들여다보게 되는 내 상상 속 미래의 세상까지. 여러 가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혹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말하고 싶다.
[고민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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