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영화]

그게 그냥 좋으니까.
글 입력 2021.03.2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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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치자마자 재수를 결심했고 그다음 해에 친 수능 성적도 그저 그래서 결국엔 원래 처음에 붙었던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줄곧 재능에 대해 생각했다.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고 그걸 뛰어넘을 만큼의 재능도 없었다.

 

그저 그런 한 해를 보내고 나니 21살이 됐고 어린 날의 순간이 만든 격차의 잔혹함을 받아들이기엔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렸다. 하지만 딱히 학벌 콤플렉스는 없었다. 나름 내 성적에 맞는 학교였기도 했고 고등학교 선생님이 비전이 좋은 학교라더니 진짜 매해 입시 결과가 올라 꽤 뿌듯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학벌에 대한 내 생각은 늘 미지근한 정도였다.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항상 그 중간에 머물렀다.

 

하지만 늘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이들은 부러웠다. 그 사람 주위로 보이지 않는 원이 쳐진 듯 사람도 기회도 당연히 그쪽을 향했다. 누군가 항상 노력과 재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상 보면 천재도 그에 못지않게 노력해 늘 그런 거로 토론하는 게 나로서는 조금 귀찮았다. 내 안에서는 이미 논의가 끝난 일이었기 때문에. 노력이 재능을 이기기는 힘들고 그게 특히 노력하는 천재에 해당한다면 그냥 두 손 놓고 편하게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굳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의 사기를 꺾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노력이 천재성을 이길 수 있다는 성공 신화를 나 역시도 조금은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좋아하는 일에 목매지 않았다. 글쓰기도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꿈도 모두 어딘가 아득한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어차피 닿지 않을 거라면 굳이 발버둥 쳐 험한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고고한 척 그 자리를 지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넘어지는 날 마주한다면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질 걸 알았다. 열정 하나만 가지고 재능의 세상이 뛰어드는 건 잔인한 일이었고 나는 그 전투에서 패배한 이들의 뒷모습을 너무 잘 알았다. 그리고 처음엔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에 나온 마에다가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다.

 

 

 

공백의 시작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배구부 에이스로 활약하던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게 된 후 학교 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키리시마를 중심으로 많은 인물이 교차하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키리시마가 그만두자 다른 남학생이 그의 포지션을 대체하기도 했고 그의 여자친구는 충격에 빠져 대성통곡을 하고 키리시마의 친구들은 그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하던 농구에 회의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가 빠지며 생긴 공백에 모든 게 조금씩 엇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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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그리고 마에다는 그들과 멀리 떨어진 행인1 정도에 해당하는 인물로 영화감독을 꿈꾼다. 하지만 입상 성적은 그저 그렇고 친구들은 자신이 만든 영화의 제목을 비웃기나 하고 여러모로 고등학교는 그에게 꿈을 펼치기엔 그렇게 호의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또 거기에 선생님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으라고 강요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때 마에다는 선생님의 반대에도 울컥 치솟는 마음으로 자신이 쓴 좀비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학교 전체를 뛰어다니며 영화를 찍는다. 하지만 그게 순탄할 리는 없었고 영화 촬영은 번번이 학생들로 인해 방해받는다. 마침내 영화 끝에 가서는 옥상에 키리시마가 있다고 생각한 학생이 몰려드는 바람에 기어코 중요한 씬을 망치기까지 한다. 화가 난 히카리는 좀비 분장을 한 배우들에게 촬영을 방해한 친구들을 물라고 시키고 그렇게 옥상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아이들이 옥상에서 내려간 후 키리시마의 친구 중 한 명인 히로키는 남아 키리시마에게 장난스레 카메라를 들이대며 “영화감독이 되실 건가요?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건가요?” 하고 묻는다. 그리고 그 둘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마에다 : 영화감독은 무리야.

 

히로키 : 그럼 어째서, 이런 지저분한 카메라로 굳이 영화를 찍는 거야?

 

마에다 : 아주 가끔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랑 지금 우리가 찍는 영화가 연결됐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그게 그냥 좋으니까.

 


그때 마에다는 천진난만하게 웃었고, 그 말을 듣고 있던 히로키는 멍해진다. 영화는 처음 키리시마의 폭탄선언과 함께 진로 조사서가 배부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 공백에 뭘 채워 넣어야 할지 모르는 아이 중 한 명이 히로키였다. 그러니까 영화의 인물들이 감당해야 했던 건 키리시마가 만든 것이자 또 다른 진료 조사서의 거대한 공백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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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키>

 

 

히로키 힘들이지 않고 모양새를 유지하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괴짜 취급받던 마에다와 달리 예쁜 여자친구도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친구도 두었고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운동도 제법 잘한다. 하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히로키는 여자친구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열정을 가지는 것도 딱히 없고, 그냥 어쩔 줄 모르는 고등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타고난 몇 개의 요소로 별다른 노력 없이 운 좋게 적당한 선에 맞춰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그랬던 그에게 마에다의 화사한 미소에 담긴 행복감,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아무런 구김 없이 하는 마음은 꽤 버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카메라로 담으며 멋있다고 말하는 마에다에게 “됐어, 난”이라 말하며 아이처럼 울 수밖에 없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조금은 재능과 노력이란 게임의 본질을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승패의 문제가 아니었다. 재능이 이겼다고 해서 노력이 진 것도 노력이 이겼다고 해서 재능이 진 것도 아니었다. 같은 선상 아래 겹쳐 보였지만 실은 층위가 달랐다. 그러니까 이겨야 할 대상은 부재하다. 자신이 원한다면 그래서 행복하다면, 히카리가 말했던 것처럼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잘하지 못하면, 그런데도 열심히 한다면 그게 창피한 것처럼 여겨지는 주위의 시선이 우리의 마음을 구김살 지게 한다. “실은 나 그거 못해도 그냥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냥 취미로 한다고 말하는 쪽은 여러모로 좋은 핑계가 돼주곤 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하고 싶은 것은 결코, 질 수가 없다. 핑계를 댈 곳도 없다. 하지만 그걸 깨닫기엔 청춘은 미숙하고 치기 어린 순간의 연속이다.

 

 


키리시마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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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끝에 가서도 키리시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의중도 결국에는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다. 그저 추측 상으로 동아리 부원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대학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않을까 이야기하는 정도다. 하지만 뭐가 됐든 그는 재능에서 도망쳤다. 그러니까 그렇게 빛나 보이는 재능에도 때로는 도망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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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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