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마음이 설레지 않아서

마음에 파동이 일지 않는다
글 입력 2021.03.16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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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매화가 피고 모란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꽃집마다 프리지아가 가득하고 화원 앞에는 사람들이 그득하다. 미세먼지 속에서도 세상을 알록달록 색채를 더해 가는데 내 마음은 잔잔하기만 하다.


코로나 때문일까, 답답한 마음을 분출할 수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오늘도 미열람 상태인 입사지원현황 때문일까. 하나씩 되짚어보려니 마음이 설레지 않은 이유는 끝도 없이 나올 것만 같다.


책을 읽어도,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마음이 시큰둥하다. 예약해놓고 잊고 있었던 책이 도착해도 잠시 놀랄 뿐, 미국에서부터 신발이 날아올 준비를 하고 있어도 무덤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주는 영화나 연애하고 싶어지는 드라마나 뭐라도 하게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무언가 하나 없는 그저 잔잔하기만 한 일상.

 

내면에 파동이 일지 않는다. 누가 돌멩이라도 던져주었으면 좋겠지만 요즘 시국에 기대할 수 없으니 내가 이곳저곳 들쑤시면서 찾아다니는 수밖에. 부산스럽게 굴면 뭐라도 하나 떨어질테니까.

 

 

 

SLOW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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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친구를 사귀려고 손가락을 놀리고 있다.

 

십 수년 전에는 펜팔을 사귀려고 인터넷을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스마트폰으로 아날로그 펜팔 감성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2000년대, 온갖 변태가 넘쳐났던 2010년대의 랜덤 채팅 사이트를 지나 의미있는 소통이 가능한 앱이 생겨났다. 오늘 미국으로 보낸 편지는 내일 도착할 거고, 오늘 아제르바이잔에서 출발한 편지는 내일 아침에 나에게 도착할 예정이다. 편지가 몇 시간 후에 도착한다는 알림이 사람 마음 살짝 두근거리게 했다.

 

사실 시작은 새벽감성과 '홧김'이었다. 이상하게 새벽만 되면 어디서 이상한 용기가 샘솟는다. 자기소개에 대충 적극적으로 보일만한 문구들을 넣고, 나와 일치하는 주제가 많은 사람 중 본인 소개를 상세하게 한 사람을 골라 메시지를 보냈다. 남들을 살펴보다가 나도 Creative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아서 그런 사람들에게 나도 나름 창의적이고 싶은 사람이고, 글을 쓰고 수공예에 관심이 많다고 어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원하는 상대에게선 답장이 얼마 오지 않아서 맥 빠질 뻔 했는데, 내 소개글을 읽고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아니라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평소라면 얘기를 나눌 일 없는 다른 시간대, 다른 환경의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나누다보니 소소하게 리프레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 없는 인도 벵갈루루의 누군가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고, 16시간 후 도착 예정이다. 요 며칠 답장을 주고 받기만 해서 새로운 메시지에 다시 또 잠깐 설렜다.

 

 


내가 되고 싶은 건

Number one 아닌 Only one


 

 

 

작곡가 황현이 케이팝으로 예술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 가사가 있는 온앤오프의 신곡 Beautiful Beautiful. 이 노래에서 내 마음에 살짝 노크를 하고 간 가사는 내가 되고 싶은 건 최고가 아닌 유일한 사람이라는 부분.

 

'너/나는 유일한 존재야'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봤다. 저 위로에 시비를 거는 건 아니지만, '우리 모두 유일한 존재'라고 말을 하면 유일하다는 말이 더이상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말에 익숙하다 못해 무감각해지고 있어선지,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가사가 조금 다르게 들렸고 그래서 좋았다. 나도 어떤 only one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저 가사를 듣고 생각해봤다. 저기서 말하는 only one은 뭘까. 지금 내 마음에 대입해보니 나에게 only one은 대체불가능한 존재다. 사람이 넘쳐나고 우수한 인재도 넘쳐나고 나는 변변찮은 스펙이 없지만 그래도 나는 좀 대체불가능하고 싶다.

 

아무것도 아니기만 하던 때를 지나 무언가가 되길 바라다가 내가 이상으로 하는 존재에 다가가는 게 목표가 된 지 몇 년이 흘렀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외부자극에 무뎌진 탓인지 줄곧 정체상태였다. 나는 내가 그래도 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되고 싶은 목표조차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 고민하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내가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그 방향으로 움직이면 나를 마음 설레게 할 뭔가가 있을 것 같단 기대도 품으면서.

 

  

*‘내 삶의 모든 외침이 곧 예술’이란 파트를 무슨 생각으로 썼냐는 말에 ‘케이팝으로 예술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라고 농담 섞인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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