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계절을 붙잡으려는 사람들 [영화]

글 입력 2021.02.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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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여름에는 소설을 썼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것도, 하다못해 어디 공모전에 제출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그 이야기가 너무 쓰고 싶었다. 당시의 나는 상당히 진심이었는데, 취미로 다니던 중국어 학원에서 30분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지하철을 내버려 두고 1시간 반이 조금 안 되게 걸리는 버스를 고집하며 돌아 돌아 집에 왔다. 그 버스가 한강대교를 지나오기 때문이었다.

한강대교와 그 가운데에 위치한 노들섬은 소설의 중요한 소재였다. 매일 도보로 그 다리를 건너 출근하던 주인공이 여느 때처럼 생각 없이 다리를 움직이다 우뚝 멈춰 선다. 너무나 지친 나머지, 어느 날엔가는 이 다리를 끝까지 건너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덮쳐서다. 비록 그게 오늘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무너져버리고 말겠구나. 그런 불안감에 덜컥 잠식된 주인공은 다리의 끝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습한 여름밤 한강대교 위에 서서 가만히 바람을 맞고 있자면 복잡하게 꼬여버린 것 같던 전개가 절로 풀려나가곤 했다. 그래서 가끔은 아예 노들섬 버스 정류장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몇 시간이고 글을 썼다. 그때는 노들섬이 개발되기 전이라 인적 하나 없는 정류장이었는데, 셀 수 없이 많은 차량이 발 앞을 스치고 마침내 노트북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집에 돌아가는 식이었다.

한참을 잊고 살았던 이 오래된 기억이 다시금 머리에 스친 건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를 관람하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설을 쓰던 기억이 아니라 그 당시 나를 사로잡았던 감정을 다시 마주한 것일 테다. 할퀴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하는 아휘와 보영을 보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상대가 자신을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되려 몰아붙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 형용할 수 없는 눈빛으로 상대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들. 나는 아휘와 보영에게서 오래전 내 주인공이 지었던 얼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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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소설을 통해 특정 상대에 대한 '분리 불안'의 감정을 그려내고 싶었다. 떠나가려는 계절의 끝을 붙잡고 몸이 부서져라 버티는 그 숭고한 집착과 질척임, 알면서도 상대방을 놓지 못하는 불가항력의 감정에 못내 이끌렸다. '곁에 있어주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죽어 줘'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그런 마음에 대해 자책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또 멈출 수는 없는 그런 지독한 굴레에 매료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돌아왔을 때도 그가 있을지 궁금하다'라는 아휘의 대사가 직접적으로 보여주듯 두 사람은 상대가 떠날 것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은 각자의 삶을 좀먹는다. 오프닝에서 차가 고장 났던, 그 갈 곳 하나 없어 보이는 허허벌판에서도 어딜 가냐며 날카롭게 캐묻던 아휘는 <해피 투게더>의 메이킹필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에 소개되는 비하인드 씬에서 방에 보영을 두고 나오며 자물쇠를 사야겠다고 중얼이는 모습을 보인다. 보영 역시 아휘가 떠난 빈자리에 고통스러워할 뿐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해나가지 못한다.

영화가 아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탓에 역시 먼저 눈에 띄는 건 그일 것이다. 이 역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에 등장하는 비하인드 씬 중에 하나인데, 여권을 찾지 못해 방을 통째로 뒤집어 놓은 보영이 분에 못 이겨 뛰쳐나가려던 순간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보영." 이때 카메라는 곧바로 인물을 비추지 않기에 관객은 목소리의 주인을 모른 채 잠시 기다린다. 상황 상 아휘일 게 당연할 텐데도, 난 순간 아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꼭 다른 사람의 육성인 것처럼 몹시 나직하고 차가운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뭐 워낙 신출귀몰한 편집의 귀재로 유명한 감독이니 금세 다른 씬의 또 다른 인물로 넘어갔나 했는데, 알고 보니 아휘가 맞았다.

아휘는 진심 어린 경고를 한다. 지금까지는 계속해서 너를 받아줬지만, 이번에는 아닐 거라고. 나도 떠날 수 있다고. 다만 그러기 싫었을 뿐이라고. 이때 그를 연기하는 양조위가 뿜어내는 눈빛과 표정을 보며 깨달았다. 낯선 목소리가 아니라, 이 순간이 사실 아휘의 본모습일 수도 있음을. 영화 내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을 뿐 보영을 만나기 전 원래의 그는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단지 그를 사랑하기 위해 항상 기다리고, 망가진 걸 고치고, 떨어진 것을 주우며 사는 삶을 살고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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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눈에 더욱 밟혔던 것은, 즉 내가 그려내고자 했던 분리 불안의 형태에 더욱 가까운 것은 보영이었다. 그는 파괴적이다. 표면적 시선에서 관계의 갑에 위치했던 그의 힘은 그들의 관계뿐만 아니라 보영 자신 또한 망가뜨린다. 매번 헤어짐을 통보하고, 훌쩍 떠났다 맘대로 돌아오는 그는 겉보기에는 관계의 성패를 쥔 채 제멋대로 구는 야속한 철부지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그는 갑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아휘보다 더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물이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 있다. 헤어졌던 그들이 아휘가 일하던 탱고바에서 안내원과 손님으로 재회하던 때에,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모르는 척하며 내내 다른 이들과 어울려 다니던 보영은 아휘의 속을 뒤집어 놓겠다는 못된 심보를 갖고 있다. 떠나기 위해 차에 올라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그는 차가 출발하고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그제야 힐끗 뒤를 돌아본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린 흑백 화면 속 보영의 얼굴에는 어떠한 목적을 달성했다는 성취감도, 반대로 아휘의 반응에 대한 걱정도 없다. 찾아볼 수 있는 건 오로지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필연적인 고독뿐이다.

보영은 아휘와 다르게 불안정하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아휘를 사랑하고 관계를 지켜내고 싶지만 자꾸만 발을 밟아 탱고의 흐름을 끊어버리곤 한다. 보영은 불안정한 본인의 내면을 자꾸만 침범하는 아휘가 두려웠을 것이고, 그 영역이 커질수록 제 잘못으로 아휘가 떠날까 싶은 두려움 역시 그를 잠식했을 테다. 악순환은 계속되어 끝내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먼저 끝을 말하는 선택으로 도달한다. 그러나 그 위태로운 홀로서기는 매번 실패하고, 결국 그는 다시 아휘의 품으로 되돌아온다.

내가 그려내고 싶었던 분리 불안이라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 너 없으면 안 돼."라고 쉽게 툭 뱉어지는 말뿐인 가벼운 감정이 아니라, 당장의 나 자신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약하기에 도저히 현명하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는 붙잡을 수 없는 것. 이럴 거면 차라리 떠나라고 역정을 내면서도 그렇게 혼자 남겨지면 아직 그의 체취가 남아있는 이불을 붙잡고 몸을 떨며 우는 것. 이제는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나 싶은 기대 때문에 계속해서 문을 살피게 되는 것.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그대로 부서져내리는 것.

보영이 잠들어 있는 아휘의 눈썹 뼈를 손가락으로 쓸어보던 것은 물론 사랑스러워서였겠지만, 한편으로는 눈을 뜨면 자신을 떠날 것 같아 차라리 이대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에게서 나의 천성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구아수 폭포에 도착하니
보영 생각이 났다. 슬펐다.
폭포 아래 둘이 있는 장면만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삐거덕대는 두 사람이 추는 탱고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러닝타임 내내 경직되어 있던 아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을 보이고, 또한 그가 유일하게 보영에게 기대는 모습이 담긴 그들의 탱고. 관객은 그 미소가 오래가지 못할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보영과 아휘는 틈 사이로 드는 한 줄기 햇볕이 너무나 간절했던 이들이기에, 행복을 느낌과 동시에 그만큼 행복이 깨질까 날을 세우게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기도(Happy), 같이 있기도(together) 어려웠던 그들의 이야기에는 한 씬이 멀다 하고 컬러와 흑백이 정신없이 뒤섞여 있다. 결말부에서의 아휘는 문란한 생활에 발을 들이고 보영은 담배를 잔뜩 사 벽장에 넣어 둔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그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안될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진짜 이별이 아니기를 마음을 다해 바라게 만든다. 홀로 이구아수 폭포로 가는 길 주위의 풍경은 흑백으로 연출되지만 차를 운전하는 아휘는 여전히 컬러의 세상 속에 존재한다. 아휘가 떠난 집에 홀로 남은 보영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아휘가 자신의 몸을 닦아주던, 추억이 묻어있는 자리를 골라 아휘가 했던 걸레질이라는 행위를 흉내 낸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출이다.

그렇기에, 완전히 홀가분하게 마음을 정리한 듯한 아휘의 엔딩 씬에도 불구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두 사람의 재회를 빌게 된다. 떠나는 아휘가 침대 위에 여권을 떡하니 올려둔 것은 이제 미련 없이 너를 놓아주겠다는 선포가 아니라, 나를 보고 싶다면 홍콩으로 따라오라는, 보영이 자신을 따라오기를 바라며 남겨둔 아휘의 메시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한 짝씩 나누어 낀 귀걸이가 다시금 제 짝을 찾기를 바란다. 여느 소설이 그렇듯 중후반부에서 멈춘 채 추억으로 남아있는, 내 소설의 주인공들과 똑 닮은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는 다소 사심이 가득한 바람일 테지만 말이다.


[김수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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