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양도성, 서울의 표상 [공간]

600년 역사의 시작
글 입력 2021.02.13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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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 11월 23일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처음 명칭은 서울 성곽이었으나 2011년 7월 사적의 통일된 지정 명칭 부여 사업으로 지금의 서울 한양도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서울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우리 곁에 자리하지만, 명칭을 모르거나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한 번 명칭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확실하게 콕 집어 말할 수 없으나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흐릿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종묘, 궁궐과 함께 조선의 수도 한양부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까지 한양도성은 역사가 흐르는 약 600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켰음에도 그에 대한 관심은 시들하다. 그래서 한양도성이 세워지는 시작점부터 살펴보며, 한양도성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한양도성의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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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전도> ©문화재청

 

 

서울은 전국의 중심이자 정치와 행정의 핵심이었다.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조선 팔도 그 어느 지방보다 높은 곳이었다. 서울은 전 국토의 중앙에 있고, 교통이 편리하며 지형이 방어와 생활에 알맞고, 인구가 가장 많다. 또한, 조선 시대의 ‘한성부’로 왕이 기거하며 활동하는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었다.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갖고 있던 조선왕조에서 한성부는 왕도인 동시에 수도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울이 곧 수도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왕도이자 수도인 도시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 건조물은 종묘(宗廟), 궁궐(宮闕), 도성(都城)이다. 이 셋은 왕도이자 수도인 도시에만 있으면서 왕조의 정통성과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표상으로 역할을 맡았다. 그렇기에 조선 태조 초에 한양을 새로운 도읍으로 정하여 천도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 세 건조물을 건설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즉, 세 건조물은 왕도의 혹은 수도의 상징적 의미를 갖추고 실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건설해야 할 대상이었다. 1394년(태조 3) 11월 3일,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서 태조에게 올린 글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침묘(寢廟)는 조종(祖宗)(의 신주)를 봉안하여 (백성들의) 효성과 공경(의 기풍)을 높이는 곳이요, 궁궐은 나라(왕)의 존엄을 과시하고 정령(政令)을 내는 곳이며, 성곽(城郭)은 안팎을 엄하게 (구별)하고 나라를 공고히 하려는 곳입니다. 이들은 모두 나라를 가진 사람이 마땅히 먼저 갖추어야 할 바입니다.”

 

 

위 인용문에서 말하는 성곽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 곧 도성을 가리킨다. 서울을 서울로 기능하게 하는 세 번째 시설물은 바로 도성이었다. 즉, 도성은 서울이 왕도이자 수도임을 겉으로 드러내 보여주던 대표적인 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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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이란 좁은 의미로 내사산을 따라 쌓은 이 성곽을 가리키고, 조금 더 넓게 보면 이 성곽이 보호하는 성안을 가리키며, 아주 넓게 보면 도성 주위 약 10리에 이르는 성저십리(城底十里)까지를 포함하기도 하였다. 도성은 시설물을 가리키는 말에서 서울을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어 쓰였다. 한양도성을 쌓음으로써 비로소 서울이라는 공간이 개념적, 공간적으로 탄생해 기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 사람들이 도성을 쌓은 이유는 단순히 외부 세력의 침입을 막고 성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도성은 성안과 밖을 엄하게 구별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서울의 안팎을 나누는 내사산이라는 자연 지형에 인공적으로 경계선을 추가한 것이었다. 이렇게 경계선을 명확하게 한 까닭은 성안을 보호하려는 데 있었지만, 나아가 왕으로 대표되는 조정, 더 나아가서는 나라를 공고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


또한, 당시 조선 사대부들은 성곽의 문에 ‘인의예지신’을 녹여낼 만큼 성리학적 이념을 도성에 부여하는 데 집중했다. 성안의 것을 보호하고 밖을 차단하기도 하지만, 성곽의 바깥과 안을 구별하는 것에 집중했다. 즉, 당시 도성 내의 한양(한성부)은 으뜸가는 선의 공간으로써 봉건왕조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관념적인 측면에서 도성을 건축하고 활용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봉건 지배계층에게 내려지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 물리적으로 서울을 떠나게 한 것이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몸만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상적·정신적으로도 한양(한성부), 선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큰 징벌로 여겨졌던 것이다. 따라서, 한양도성은 왕도이자 수도의 주인으로 인식되는 왕과 그러한 왕의 권력 영역을 더 공고하게 하고, 국가권력의 위엄을 과시하는 시설물로도 활용되었던 것이다.

 

 

 

한양도성, 서울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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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은 조선시대 서울의 울타리이자 서울과 지방을 나누는 경계였다. 성문은 닫히면 성벽이고 열리면 길이였기에, 그 개폐는 백성의 생활 리듬을 지배하는 질서였다. 성문과 연결된 도로들은 팔도로 가는 조선의 대동맥이었고, 먼 곳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에게 멀리 보이는 한양도성은 반가움의 상징이었다.


더 나아가 도성은 왕의 존재를 알리고, 국가 권력의 위엄을 과시하는 시설물이었다. 도성은 온 나라 백성이 참여하여 쌓았고, 보수하고 개축하는 노역에 동원되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노출되어 있었다. 백성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었고, 또 그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기에 서울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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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도성이 가진 여러 의미 중 도성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성 안’인 ‘성곽 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성저십리 지역을 포함하는 서울의 영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양도성이 곧 서울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한양도성은 다른 여러 성과 관계되어 있다.


먼저, 도성은 궁성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축성·관리되었다. 도성 안에 자리한 핵심 건조물인 종묘와 궁궐을 보호하였다. 실제로 종묘는 창덕궁, 창경궁과 하나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활동 공간은 아니었기에 중점적으로 다루기 어렵다. 반면, 궁궐은 서울의 실질적인 핵심공간으로, 궁을 감싸는 궁성이 자리한다. 이에 궁성을 내성(內城), 도성을 외성(外城)으로 볼 수 있으며 양자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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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도성은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가까이는 도성 주위에 바로 연결되는 성들을 거느렸으며, 멀리는 전 국토의 성들을 거느렸다. 전자의 경우 북으로 탕춘대성(蕩春臺城)과 북한산성(北漢山城)이 도성과 연결되어 도성을 엄호하고 있었다. 좀 더 멀리는 개성의 대흥산성(大興山城)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외적을 막아주었다. 남으로는 한강의 송파나루를 건너 남한산성(南漢山城)이 남에서 올라오는 외적을 막아주었다. 더 멀리는 수원의 화성(華城)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이어지는 길목을 지켜주었다.


이러한 성들은 군사 시설뿐 아니라 조선 후기, 고위 행정구역이 되어 한성부를 뒷받침해주었다. 한성부는 이러한 도시들, 더 나아가서는 전국을 거느리는 왕도이자 수도인 국도로 자리하는 표상이 되었다.



참고문헌

홍순민, 『한양도성』

홍순민, 『홍순민의 한양읽기: 도성』

서울특별시청 문화관광디자인본부 한양도성도감, 『서울 한양도성』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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