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혹한 정의, '레미제라블' 자베르 [사람]

살아온 만큼 바라보는 세상
글 입력 2021.02.02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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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신념, 불분명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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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른 신념을 갖는다. 어떠한 신념은 사회적 위치와 역할에 따라 개인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념이라는 것은 강제성을 띤 제도라기보다 도덕적 법률에 가까워서 누구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신념을 굽히지 않는 행위는 상황에 따라 절개로 칭송받기도 하고 때로는 융통성 없는 고집이라 비난받는다. 그 기준을 정의하는 것은 누구인가.

 

신념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나는 '레미제라블'의 자베르를 떠올렸다. '어린 왕자'가 어른이 된 후 다르게 읽히는 대표적인 작품인 것처럼 레미제라블을 다시 읽으면 자베르라는 인물의 삶이 보인다.

 

장발장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악인이 아니라 신념을 좇는 한 남자의 갈등이 드러난다.

 

 

 

자베르의 신념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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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자베르는 점쟁이인 어머니와 범죄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 시절은 아마 그가 교도관이 된 이후 마주한 범죄자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경찰로 성장한 자베르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았다. 절대 교화될 수 없는 범죄자와 그렇지 않은 선민. 그에게 범죄자는 사회를 악으로 몰아넣는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었으며, 그런 사람들을 억누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자베르는 가난한 사람들의 통곡 소리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천민들을 혐오했다기보다 그들을 돕는 것이 사회를 범죄자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과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창부 팡틴을 희롱한 시민권자 바마타부아 사건을 다루면서 오히려 피해자인 팡틴에게 징역을 선고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의 사고 방식으로는 '시민권자'는 절대 '범죄 사실이 있는 사람'보다 악하다는 가설이 성립되지 않았다.

 

 

 

자신에게조차 공정하게 적용되는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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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베르는 정직함과 진실성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혁명단의 바리게이트에 숨어들었을 때 밀정이 아니냐고 묻는 말에 자신은 정부 관리라고 실토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것은 감옥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신은 그들과 절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자신만의 규칙이었다. 그래서 자베르는 장발장이 절대 교화하지 않았을 거라 믿었다. 그가 보이는 모습도 전부 거짓이라 생각했다.

 

자베르의 신념은 '범죄자란 거짓과 오만으로 가득한 반사회적 집단'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장발장도 일개 범죄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자베르가 장발장을 쫓았던 이유는 장발장이 거짓된 모습으로 사회 질서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베르는 평생 장발장을 죄수 번호 '24601'이라고 부른다. 인격체가 아닌 번호로 나열되는 죄수로 본 것이다.

 

 

 

견고했던 신념이 무너진 순간


 

 

 

그런 자베르의 신념이 흔들리게 된 것은 자베르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장발장이 그를 풀어준 후부터였다.

 

한 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믿음과 신의라고는 없다고 생각했던 그의 믿음이 송두리째 뒤바뀐 순간이었다. 자베르는 평생 신념 하나로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했다.

 

그 순간 자베르는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사이 장발장에게 처음으로 존댓말을 사용했다. 벗겨진 베일 밖에서 마주한 장발장은 사기꾼, 오만한 난봉꾼이 아니라 일반 서민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자괴감과 혼란을 이기지 못해 센 강에서 투신한다.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 그가 살아온 인생 자체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만큼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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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베르가 피도 눈물도 없는 공직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융통성 없는 사람을 기피하면서도 그런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집단이 잘 굴러간다고 말한다.

 

자베르는 모두가 인정과 동정이라는 사적인 감정에 해내지 못한 일들을 대신 처리하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정의에 가까운 법칙을 파괴한 것은 장발장이었고 당연히 자베르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만큼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때로는 그 신념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내가 살아온 인생과 내린 모든 결정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자베르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믿음에 따르면 정직함은 타고난 사람만이 갖고 있는 것이었다. 장발장은 자베르의 신념과 반대되는 유일한 예외였고,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이처럼 신념은 개인이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무너뜨리는 가장 파괴적인 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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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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