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나는 지하철 유랑민 [지하철 유랑기]

글 입력 2021.01.2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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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00. 00역입니다.

0호선 열차로 갈아타실 수 있는

00. 00역입니다.

 

 

지하철1.jpg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나의 하루는 언제나 지하철과 함께한다.

 

지하철은 남들보다 적어도 1시간은 빨리 일어나야 하는 한탄과 짜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막차가 얼마 남지 않았단 이유로 모임에서 먼저 빠져나올 수 있는 고마운 핑계가 되기도 한다.

 

그런 애증의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지나쳤던 익숙하면서도 낯선 역에 대한 기억을 모아본다.

 

 

 

일상의 지하철


 

 

유랑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

 

- 표준국어대사전

 

 

매일매일 4시간씩 지하철에서 수십 개의 역을 지나치다 보면,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지하철이 갑자기 노선을 바꾸어 동해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철로는 이어져 있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가 잠에 들 즈음, 흐릿하게 내가 내려야 할 역의 도착 안내 멘트가 들려온다. 짐을 챙겨 부랴부랴 내린다. 그리고 눈을 반쯤 뜬 채 수백 번도 더 오고 간 환승 통로를 따라 걸어간다. 지하철이 연착되었다는 기사가 뜰 정도가 아니라면, 나의 환승 시간과 루트는 정해져 있기에 서두를 필요 없다.

 

중간에 화장실을 들러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지하철에 탑승한다.

 

 

지하철3 이수.jpg

 

 

서로의 목적지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지하철은 무심하게 달려 나간다. 그렇게 누군가는 내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탄다. 모두가 서로의 출발지와 행선지를 모른다. 그저 무표정으로 각자의 할 일에 집중하고 유랑한다.

 

자연스레 나도 지하철 유랑민이 되어 안정적이고도 약간의 위험이 공존하는 지하철에 내 몸을 싣는다.

 

 

 

지하철 유랑민


 

결국엔 정해진 노선에 따라 돌고 도는 무료함을 잊기 위해, 히피들이 방랑하며 떠돌아다니며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까 감히 상상해본다.

 

가본 적이 없어 문이 열리고 닫힐 때의 네모난 모습으로 기억되는 낯설지만 익숙한 이름의 역들, 매일 탑승하고 하차하는 역의 익숙한 풍경까지. 나는 지하철 속 유랑민이 되어 그들을 눈으로 코로 귀로 느끼기 시작했다.

 

 

naver_subway.jpg

 

 

집에서 제일 가까운 역에서 내 행선지가 있는 역까지, 평소 36개의 역을 지나간다.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의 왼편 아래에서 오른편 위쪽으로 가로지른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민이 천만에 육박하니 그들과 경기도, 인천 시민을 합하면 적어도 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것이다. 그들의 흔적과 기억은 이 공간에 남지 않고 사라진다.

 

내가 오가며 무심코 지나쳐 간 수많은 역들과 노선에 대해서 어떠한 추억도 할 수 없다면, 나의 발자취도 사라질 것이다. 이미 없어져 버린 상태일지도 모른다.

 

지하철도 대중교통으로서 기능하다가 노후되면 조금씩 보수를 하다가 더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아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희미하게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젊은 날의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기억하고자 한다. 나의 발이 되어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생각과 추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존재로서의 지하철 역사를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지하철 유랑민이 되어 내가 겪었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서울 생활을 위한 지하철에 대한 단상을 끄적이고자 한다.

 

나에게 지하철은 더는 대중교통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다. 나의 시발역부터 시작해보자.

 

 

이번 역은 석천사거리.

석천사거리 역입니다.

 

 

 

컬쳐리스트 이수진.jpg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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