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유튜브 알고리즘 N년차 후기
글 입력 2021.01.2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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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의 컴퓨터를 쓰는 나는,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유튜브를 켜놓고 일하거나, 작업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근무시간에 영상을 진득하니 보면서 일한다는 건 아니지만, 종종 배경음악을 깔거나 집중에 좋은 음악을 틀어놓을 용도로 사용하곤 했다.

 

문제는 집 밖에 못 나가다 보니 자기 전에도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주간 스크린 타임 중 유튜브의 비율이 60%가 넘을 정도로 막대하게 유튜브에 의존한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말이다.

 

일과를 마치면 타로 유튜브를 보면서 힐링하기도 하고, 이사할 시기가 돼서 랜선 집들이를 관음증 걸린 것마냥 찾아보기도 했다. 심지어 검색할 때도 유튜브를 썼다. 그래도 매일매일 비슷한 패턴으로 보는 콘텐츠들이 고정되다 보니 어느 순간 유튜브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친구들이 비슷하게 뜨고 있었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 시간이 꽤 좋았다.

 

 

타로 유튜브.jpg

유튜브 지니타로

 

 

문제는 매번 보던 것들을 보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점이다. 일과를 마치고 타로를 보며 힐링하는 건 하나의 습관이 되어, 매번 그렇게 '안정'을 찾았다. 매번 듣던 종류의 음악, 이를테면 같은 음악 유튜버의 음악을 계속 듣는 일은 비슷한 계열의 음악만 계속 듣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된 선택은 '안정'을 주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너무나 바쁘게 변화하는 현생에 지칠 때 늘 보고 듣던 것에서 안정을 얻는 것은 안정제를 맞는 듯 감정에 꽤 효과가 있을 때가 많았다. 물론 그 어떤 곳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플랫폼인 유튜브에서 안정을 찾는다는 게 모순이긴 하지만. 매번 새롭게 올라오는 콘텐츠들 속에서도, 구독한 유튜버, 비슷한 계열의 콘텐츠에서 오는 그 '예상 가능한' 가치란, 꽤 사람을 중독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취향'에 맞는 것들만 보는 일, 동질감에서 오는 편안함과 안락함은 점차 나를 따분하게 만들었다. 유튜브를 들어가면 이미 봤던 것들이 또 있을 때, 그 지루함이란! 비로소 이건 아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듣던 노래만 듣고, 보던 유튜버만 볼 때 취향의 심화라기보단 '매너리즘'이라던가, '예측 가능한'이라던가, 그도 아니라면 '좁아진 인간관계'만큼이나 무서운 '좁아진 취향의 폭' 정도에 놀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유튜브 댓글에서 종종 그런 말이 보인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날 이곳으로 이끌었다'라고. 그리고 그런 말속엔, 낯선 즐거움이 꽤 싫지 않았다는 뜻이 담겨있다. 마치 내 취향과는 전혀 달라서, 내가 찾아보진 않았을 텐데, 막상 보니 꽤 재밌달까. 혹은 아예 정반대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이곳으로 이끌어서 당황했다는 식의 반응일 때 말이다.



알수없는알고리즘.jpg

 

 

유튜브 알고리즘이 어떤 원리로 영상을 추천해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의외성에 꽤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나 역시 이런 걸 왜 추천해줬을까 싶은 의외의 콘텐츠들이 때때로 반가울 때가 있다. 물론 그런 새로움을 만나기 위해선 새로운 액션을 주입해야 한다. 즉, 의도였든 아니든, 사용자가 기존과 다른 영상을 재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서 알 수 있다. 예전엔 의외의 길, 변수를 만나기 더 쉬운 환경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떠먹여 주듯 원하는 걸 쏙쏙 뽑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내 취향, 내 시각에 맞춰진 정성스러운 추천을 뒤로하고, 타인의 손길이 묻어있는 편집숍이나 독립책방 등에 환호하는지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주인장'의 손때가 묻은 공간이 우연히 내 취향과 맞을 때의 그 카타르시스는 공간을 경험으로 만드는 방아쇠가 되곤 한다. 이런 관점에서 유튜브로 돌아오면, 매번 비슷한 걸 보게 만드는 것도 알고리즘, 그 와중에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걸 보여주는 것도 알고리즘. 병주고 약주는 셈이다.

 

 

성수키오스크키오스크.jpg

성수 KioskKiosk

 

 

서비스 기획 및 디자인을 하는 나는, 거짓말 안 보태고 한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신규 서비스 제안에 '추천' 키워드를 꼭 넣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취향'에 맞는 '추천'이란 지성과 향수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조합으로 꽤 잘 먹혔던 것 같다.

 

 

추천.jpg


 

유튜브 메인 화면에 이젠 '네 취향과 다르지만 준비해봤다'거나,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랜덤 콘텐츠'라는 식으로 새로운 메뉴 섹션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시간 인기 콘텐츠나, 게임, 영화, 학습 따위의 탐색 메뉴와는 결이 다른 '무작위', '랜덤' 등의 전혀 예측 불가한 방식의 새로움이 꽤 필요해진 요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항상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부러라도 넣을 필요가 있다. 설계된 불편함은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늘 선택하던 것에서 오는 안정을 뒤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은 갑자기 화면에 뜬 순둥이 카피바라의 유자 온천 체험기를 봐야겠다.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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