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장' - 당신의 위선에 대한 이야기 [영화]

글 입력 2021.01.23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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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송준은 세계적인 퀴어 연극의 주인공, 빌리로 발탁된다. 주인공으로서, 진짜 빌리가 되어 진정성이 담긴 연기를 하고 싶었던 그는 퀴어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그 안에 스며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송준은 빌리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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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연히 자신의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혼란스러운 송준. 분명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송준은 결국 동생에게 지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만다.

 

 

영화 <분장>은 인간의 위선을 직면하는 영화이다. 유명 연극의 성소수자 주인공을 맡게 된 송준은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적극적으로 퀴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친구의 커밍아웃에도 덤덤히 안아줄 수 있는 여유까지 가지게 된 송준. 그는 그 자신이 진정으로 성소수자의 심정을 이해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송준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 말라고 말하며, 네가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기에 이른다. 제발 멈춰달라고 사정하는 송준, 하지만 그는 현재 빌리이다. 연극 무대 위에서 성소수자가 되어 연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양가감정 속에서 괴로워하는 송준은 연극 무대에 오르기 전, 동생을 찾아간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차갑기만 하다. "위선 떨지 마."

 

*

 

영화 <분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끝난 이후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가 딱 그랬기 때문이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커다란 주제가 영화의 전반에 깔려 있어 영화가 끝난 이후 주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영화는 위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송준의 위선을 통해 자신의 위선을 돌아보게 만든다. 빌리에 몰입하기 위해, 빌리를 이해하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송준은 자신이 진정으로 그들을 지지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믿는다. 하지만 막상 가족의 문제가 되자, 그 사실에 괴로워하며 현실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위선"이라 꼬집는 동생의 말에서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송준의 위선을 마냥 비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위선의 가면을 단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활한 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명목에서도 '척' 하는 위선의 가면을 쓰게 된다. (이 가면에 책 <인간실격>의 요조는 도통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면을 가면이라 인식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불편함과 불쾌함이 느껴진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 하는 듯하다. 오히려 가면을 쓰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말한다. "진심으로 이해해요."

 

가면을 쓰고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 나는 그것이 위선이라 생각한다. 가면을 쓰고 말하는 진심은 위선이다. 위선은 거짓보다 더 나쁘다. 그리고 위선을 판단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더군다나 위선은 스스로를 속인다. 진심일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위선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모두, 삶의 한 순간 송준이었을 것이다.

 

영화 <분장>의 영상은 거칠다. 송준이 혼란을 겪을수록 영상은 더욱 어지러워진다. 개인적으로는 영상과 함께 송준이 겪는 혼란을 함께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 좋았던 부분이었다. 매끄럽게 정제된 영상이 아니어서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덧,

 

1. 영화 <분장>을 통해 남연우라는 감독을 알게 되었다. 굉장히 입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앞으로도 <분장>과 같은 통찰이 있는 영화들을 기대해본다.


2. 영화가 끝나고 나의 위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만일 나의 가족 중 누군가가 자신은 사실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한다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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