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수와 번영을 - 스타트렉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1.2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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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과 판타지를 사랑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해리 포터’ 시리즈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머릿속으로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남들과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나의 상상 속에서, 나는 엄청난 힘을 가진 마법사, 무림 고수, 혹은 초능력자였다.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곤 했다.

 

이런 나에게 SF 장르란, 판타지의 연장선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예상이 희망적이지 않더라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내 상상 속에서 얼마든지 변주될 수 있었다. 마법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과 타협한 나는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데에 내 상상력을 썼다. 그리고 내가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만났다. 바로 ‘스타트렉’이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스타트렉’ 역시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예전에 한 통신사에서 광고 문구로 ‘WARP’를 적어 놓고 캐릭터로는 ‘스타 워즈’의 다스 베이더를 쓴 것만 봐도 그렇다. 나는 다스 베이더가 ‘워프’를 외치는 광고 영상을 보며 화가 났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스타트렉’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SF 작품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철저한 과학적 고증을 바탕으로 하지도 않고, 대단한 그래픽으로 우주를 재현해내는 것도 아니다. 배경만 우주로 바뀌었을 뿐, 미래 사회를 인류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그려내면서 현재 우리가 삶에서 직면할 만한 윤리적 갈등이나 문제 상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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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TV 시리즈(그리고 리부트 시리즈)의 함장인 ‘제임스 커크’와 부함장 ‘스팍’은 종족도 다를뿐더러,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충동적이고 직감을 믿는 인간 ‘커크’와 논리적이고 이성을 중시하는 외계 종족 벌칸인 ‘스팍’은 감정과 이성의 대립을 두 캐릭터로 만들어 놓은 듯하다.

 

둘의 대립은 극을 이끄는 주된 동력이다. 리부트 시리즈 2편인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첫 부분에서 ‘커크’는 화산에 갇힌 ‘스팍’을 구하기 위해 행성 연합의 기본 원칙인 ‘외계 문명 발달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을 어긴다. ‘스팍’은 이 규칙을 깨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려고 하지만, ‘커크’는 함장직을 박탈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구한다.

 

‘스팍’은 아직 발달 초기 단계인 외계 문명이 엔터프라이즈 호에게 지나친 영향을 받을까 우려했다.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 외계 원시인들의 수많은 생명과 그들의 문화를 더 아낀 것이다. ‘커크’는 그보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스팍’은 그런 ‘커크’의 행동이 지나치게 비이성적이라고 판단하며, 자신을 구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커크’는 초반의 ‘스팍’처럼 엔터프라이즈 호의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스팍’은 그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임을 알지만 ‘커크’의 죽음에 분노한다. 우리는 두 인물이 각자 내린 결정을 두고 무엇이 옳은 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일까?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나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많은 목숨을 포기하고 한 사람을 구한 것이 비판받을 일일까?

 

얼핏 보면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관련 없는 우주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보편적인 윤리적 갈등 상황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인물들과 우리의 삶을 동일시할 수 있게 된다. ‘스타트렉’이 만들어 진지 벌써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렉’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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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이 이런 윤리적인 판단에 대한 질문만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오리지널 TV 시리즈는 1966년에 제작 및 방영되었지만, 통신 장교로 등장하는 ‘우후라’는 흑인 여성이고, 조타수인 ‘술루’는 동양인 남성이다. 능력 있는 흑인 여성 캐릭터, 그리고 악당이 아닌 동양인 남성 캐릭터의 등장은 그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여전히 백인 남성 중심적이던 문화계와는 상반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진 로든베리의 오리지널 TV 시리즈에 반영된 이상향은 리부트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 리부트 시리즈 3편인 ‘스타트렉 비욘드’의 마지막 부분에서 ‘술루’는 자신의 남편과 행복하게 재회한다. 물론 옛 오리지널 시리즈의 팬들은 이 장면이 원래의 설정과 어긋난다고 보지만, 나는 이것이 실제로도 활발하게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해왔던 오리지널 TV 시리즈의 배우 ‘조지 타케이(술루 역)’, 그리고 로든베리가 창조한 세계관에 대한 헌사였다고 생각한다.

 

‘스타트렉’이 윤리적으로 완벽한 작품은 아니다. 극을 이끄는 두 명의 주연 캐릭터는 모두 백인 남성이었고, 많은 유색인종, 혹은 여성 캐릭터는 조연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화의 힘은 강력하다. 로든베리의 오리지널 TV 시리즈가 방영될 무렵, 미국에서는 여성 운동, 성소수자 운동 등 다양한 사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사회를 꿈꿨고, ‘스타 트렉’은 그것을 우주로 가져와 영상화 했던 것이다.

 

‘스타트렉’은 인류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당장 소수 인종과 여성, 그리고 간접적으로 그들을 대변하는 외계 종족들의 모습만 봐도 그렇다. 정말로 미래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물질적인 것을 쟁취하기 위해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올지도 모른다. 내가 ‘스타트렉’을 통해 위로를 받았던 이유다.

 

‘Live long and prosper(장수와 번영을)’는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 벌칸의 인사말이다. 손가락을 벌린 채 상대방에게 건네는 이 헤어짐의 인사는 어쩌면 우리 인류에게 건네는 말일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도 인류가 끊임없이 살아 숨쉬고, 또 꽃 피우길 바라는 마음이다. '스타트렉'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현재의 우리에게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리에게, ‘스타트렉’은 꼭 필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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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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