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전히 트로트를 사랑하는 20대로부터 [문화 전반]

당신도 부디 나의 사람들을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글 입력 2021.01.1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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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내가 트로트 프로그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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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된 미스터트롯

 

 

생전 처음 하는 덕질이 트로트가 될 줄은 몰랐다. '우리 부모님 점수 집계하고 있으니까 방송국 긴장해라', '미스터트롯 브로마이드 사드렸더니 할머니 엄청나게 좋아하신다'. 커뮤니티에서 '부모님 세대가 덕질하는 법'으로 유명했던 짤들이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그랬다. 미스터트롯 화보를 부모님 아니면 누가 사겠냐고? 덕질을 하다못해 직접 굿즈를 만들어 소장했다. 목요일 밤 10시가 되면 텔레비전 앞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우승자 발표가 미뤄진 날에는 아침마당 속보로 띄우라며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말하던 사람이 나였다.

 

 

 

트로트를 사랑해서, 솔직하게


 

그래서 오늘날 과열된 트로트 열풍이 누구보다 안타깝다. 눈 감고 봐도 뻔한 레파토리의 연속이라는 비판, 어느 채널이든 비슷한 플롯을 재사용하여 지겹다는 불만에도 모두 동의한다.

 

한때 내가 간절히 응원하던 사람들을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은 팬으로서 물론 행복한 일이다. 다만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사랑했으면 한다.

 

'내 장르는 나만 욕할 수 있어', 덕질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지켜지는 룰이다. 예능을 사랑하고 트로트를 아꼈던 사람으로서 '어느 채널이든 트로트만 나와서 텔레비전을 보기가 싫은' 현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들의 평범함 속에서 피어나는 다채로움을 사랑했다


 

 

 

미스터트롯이 20대와 50~60대 혹은 그 이상까지 통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트로트만의 고유한 매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트로트보다 트로트를 부르는 사람들을 사랑해서 노래마저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모두가 알다시피 트로트는 외면받던 장르였다. '뽕짝'이라는 표현은 주류 음악 중에서 대중의 선호를 만족시키지 못한 노래들을 낮잡아 부르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미스터트롯에 참가한 경연자들 중 대부분은 각자 트로트라는 장르에 몸을 담구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았고, 소속사 연습생 생활이 보편적이었던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달리 가슴속에 간직한 꿈을 이루기 위해 나온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다채로움이 있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연예인의 삶이 아니라 마치 내 주변 사람들 중 하나가 인생을 담아 노래하는 것 같은 경연의 연속이었다. 경연자들을 '대디부', '신동부', '대학부', '현역부' 등등으로 나눴던 이유도 저마다 살아온 집단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유일한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각각의 방식으로 트로트를 사랑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의 노래에는 가족, 친구, 형제, 동료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제까지 일반인들과 다를 것 없는 내일을 고민하던 출연자, 멀게 느껴지지 않는 마음의 거리가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았다. 그래서인지 미스터트롯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보다 출연자의 서사에 더욱 주목했다. 그런데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평범함이 공감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간절하지만 치열하지는 않았던 순한 맛 서바이벌


 

 

 

미스트롯부터 미스터트롯까지, 모든 경연은 간절했지만 치열하지는 않았다. 일명 서바이벌과는 어울리지 않는 '순한 맛'이었다. 주로 5~60대가 시청하기 때문에 자극적인 장면들을 편집했겠지만 경연 프로그램에서 처음 보는 단조로움이 오히려 편안했다. 경쟁보다 협동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평화로운 오디션이었다.

 

참가자들은 경쟁보다 '그동안 외면 받았던 트로트라는 장르에 어떻게 하면 나의 색을 입혀 다양성을 살릴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트로트하면 올드한 가사와 촌스러운 리듬만을 떠올렸던 젊은 세대에게 영탁의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신인선의 '사랑의 재개발' 등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구수한 노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참가자들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출연진들이 미숙하고 완벽하지 않다는 점은 미스터트롯만의 차별성이었다.

 

 

 

트로트의 과도기,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기에


 

이렇게 세대의 대통합을 이루었던 트로트 프로그램이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트로트의 매력은 '삶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트로트는 아직까지 5~60대 혹은 훨씬 이전 세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2~30대가 트로트에 열광했던 이유는 노래하는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플롯을 재생산하는 프로그램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지속적인 인기를 끌리라는 기대는 과분하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과거 노래에만 갇혀 있다. 옛날 노래들을 전부 지워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K-pop처럼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를 하나의 '음악적 분야'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2~30대가 선호하는 예능 플롯을 차용하거나 트로트가 갖는 폭넓은 장르성을 홍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트로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다시 '어르신들만 즐겨듣는 뽕짝'으로만 남아있을 수도 있다.

 

예능을 즐겨보는 사람으로서 트로트의 매력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형식 안에서만 표출된다는 것이 다소 아쉽게만 느껴진다. 최소 내가 함께 울고 웃으며 응원했던 사람들은 더 깊은 잠재력과 다양성을 갖고 있다.

 

 

 

그래도 부디 도전해주세요


 

트롯 어워즈, 화제가 된 장윤정의 소감

 

 

사실 나는 오늘날 똑같은 프로그램의 향연이 트로트가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너무 오랫동안 외면받고 고정관념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던 분야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트로트를 가지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 트로트라는 장르의 매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어필이 될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선례가 없으니 새로운 시도가 두려운 것도 당연하다. 다만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2~30대와 5~60대가 접점을 찾은 상황에서 또 다시 K-pop과 트로트 사이 양극화가 생기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빨리 이 정체기를 지나 트로트도 음악의 한 장르로서 존중받기를 응원한다.

 

 

 

내가 사랑하는 트로트와 트로트를 부르는 사람들


 

다음은 미스터트롯에서 내가 최고로 꼽는 무대들이다.

 

당신도 부디 나의 사람들을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1. 임영웅, <바램> (원곡: 노사연)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를 위해

진심을 담아 부르는 노래

 

 

2. 영탁, <내 삶의 이유 있음은> (원곡: 이미자)

 

음악을 사랑하는 인생과 닮아 있는 노래

 

 

3. 정동원, <눈물비> (원곡: 홍진영)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노래

 

 

4. 김수찬, <나팔바지+아모르파티> (원곡: 싸이, 김연자)

 

내가 가장 간절히 응원하던 사람이 빛났던 무대

 

 

 

에디터_허향기.jpg

 

 

[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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