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굿피플이 되고 싶은 그들과 나 - 굿피플 [예능]

글 입력 2021.01.1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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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을 마치고 마음 정리도 마치기 전에, 새해가 밝았다. 상상하기도 싫었던 취준생 4학년이 되었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로 4학년이 될 순 없단 생각에 휴학을 생각하곤 있지만, 막상 휴학 신청을 할 용기는 나지 않아 그냥 멈춰 있었더니 벌써 1월의 절반이 흘렀다.
 
확실한 진로를 정하지 못한 나는 이리저리 나에게 맞을 만한 일을 찾아보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법조계가 떠올랐다. 나의 전공 건물 옆에 있는 법학 건물이 생각나서, 그리고 순전히 문과에서 할 수 있는 전문직 중 하나니까 그렇게 찾아보게 되었다. 불현듯 몇 년 전 언니가 애청하던 TV 프로그램 <굿피플>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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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탄생기

 

<굿피플>은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로펌에서 한 달 인턴쉽 프로그램을 겪으며 최종 2인만이 실제 입사의 기회를 가져갈 수 있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서로의 경쟁보다는 사회초년생들의 노력과 여러 방면에서의 배움이 더 많이 묻어난다. 실제로 로펌에 지원한 로스쿨 재학생들이 인턴쉽 프로그램의 과제들을 해나가며 변호사들의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리얼리티라고도 할 수 있고, 유명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하트 시그널>의 제작진들이 만든 것이라 연출이나 구성, BGM의 분위기까지 비슷하다. 일반인의 연애를 담은 TV 프로그램 중 가장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낸 만큼, <굿피플>도 구성이 깔끔하고 VCR를 보고 패널들이 예측 결과를 맞히는 방식도 비슷하다. 사랑의 작대기를 예측하는 패널이었다면, 여기선 과제의 등수를 맞힌다.
 
인턴사원들의 과제 수행과 평가를 주로 다루었지만, 무엇보다도 참여자들의 속마음과 성장을 잘 담아냈다는 점에서 지금의 나에게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다소 부적절해 보이는 패널 구성이나 흐름 같은 아쉬운 점들은 뒤로하고, 이 글에서는 개인적으로 공감된 부분이나 이야기들을 할 것이다.
 
 
 
시청자에서 애청자로

 

겨울이라 추워서 움직이기도 싫은 와중에 그냥 틀어두고 보기나 하자라는 마음으로 본 이 프로그램은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걸 던져주었다. 2019년에 방영된 터라 새로운 방송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처음이라 색다른 새로움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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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와서 이 프로그램을 보니, 본방송 당시 취업을 하고 적응하고 있던 언니가 왜 이 프로그램을 좋아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았고 학교에서 친구들이 애청하던 <하트 시그널>의 제작진들이 만들었다고 해서 잘나고 예쁘고 완벽한 일반인들만 모아놓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방송에 신물이 났던 상태라 보지 않았다. 그때 언니와 함께 봤다면, 지금의 내가 아예 다른 모습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느낀다. 지금이라도 봐서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이 방송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배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턴을 해보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갖다 붙이고 나름 열심히 쓴 자소서를 넣어보고 했지만, 우수수 서류 탈락을 맞고 나서 얼마나 대단하고 노련한 사람들이 인턴이 될 수 있는 걸까 싶은 울적한 마음이었다. 지난 대학 생활 동안 열심히 살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결과물이 있다고 믿었는데, 기업들이 안 믿어주니까 와르르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 구하기도 힘들어 금턴이라고 부르는 인턴을 하고 있는 그들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턴쉽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기도 해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서툰 처음, 그리고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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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첫 과제는 "리서치 작성"이었다. 과제를 설명해주는 변호사님의 모습만 보고도 '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법조계를 생각하면,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법이라는 형태를 체내화하여 거짓과 진실을 밝혀내고 옮음과 그름을 판단해주는 일이 떠오르는데 그런 신의 영역에는 도저히 발들일 수 없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몇 시간 안에 그렇게 여러 정보를 모아 리서치를 훌륭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고 나랑은 다른 천상계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실수하고 자신이 부족했던 모습에 속으로 앓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사실 이 방송에 출연했다는 것은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 그렇게 들어가기 힘들다는 로스쿨까지 다니고 있는, 실력이 출중한 인재임을 방증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역시나 공부 잘하고 잘나가는 사람들끼리 짜고 치는 흔한 서바이벌 방송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하는 실수가 안타깝고 그들의 어린 감정에 너무나 공감했기에, 이 방송을 통해 선배 변호사님들이 해주는 말씀을 듣고 성장하는 그들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소중했다. 그들도 결국 나와 같은 사회 초년생이고, 공부하는 학생이고, 어린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성을 둘러맨 그들이 이번 과제에서 잘하기를, 떨지 말기를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변호사님들 앞에서 첫 발표 때는 너무나 떨었던 이주미 인턴사원을 보면서, 마치 마지막 면접에서 떨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떨리는 음성에서부터 불안과 긴장이 느껴졌던 면접장에서의 내가 저 앞에 서 있었다면, 울음이 나와 발표가 중단됐을 것이다. 내가 발표하는 그 문장 하나하나에 자신감을 가져야 했지만, 내가 이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것과 거짓말임을 들켜 비난당할 것 같다는 그 불안함에 결국 패배당했던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아직도 날 괴롭히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이주미 인턴이 이를 극복하고 다음 과제에서 누구보다 완벽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청산유수로 떨지 않고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위안받았다.
 
 
 
함께, 그리고 같이

 

인턴사원 8명은 어느 하나같은 면 없이 모두 색다르고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낸다. 그들은 공동체가 되어 조직 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힘내라고 응원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모습들이 내가 원하는 공동체의 이상향과 몹시 닮아있어 한편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함께 팀을 이루어 자료를 조사하고 이에 적절성을 따지고 합심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힘들고 이 프로그램이 비록 서바이벌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경쟁심을 한 번 느꼈다면 함께하는 마음과 서로를 향한 애정은 10번 느껴졌다. 그만큼 이 일을 하고 있는 자신에서 느껴지는 뿌듯함과 행복, 그리고 동반하는 성장이 부러웠다.
 
원래, 개인적으로 팀 프로젝트나 누군가와 함께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번 학기에 친한 친구와 함께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팀플의 긍정적인 점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함께'보다는 '혼자'를 선호했다. 적절한 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보기 좋게 정리해 발표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이런 작업을 하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는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방송을 통해 인턴사원들이 개인 과제와 그룹 과제를 겪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룹 과제를 할 때,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한 점이 많음을 느꼈다. 서로 느낄 수 있는 소통과 교류를 통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돌아보면 나는 잘못된 리더십을 가진 다소 독단적으로 일을 무리해서 하려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이 TV 프로그램을 보며 진정한 공동체에서의 내 역할과 태도를 정립하고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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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남 구례군 무변촌에 가서 무료 법률 상담을 하고 2명이 팀을 이루어 상담한 사건을 정하여 조사하고 해결안을 구상하는 과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느낀 점은 '나도 변호사 하고 싶다'였다.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머리를 쓰고 내가 가진 전문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너무나 큰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난 평소에 봉사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대학생 봉사활동'이라는 이름과 명분으로 청년의 노동을 보상 없이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제대로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무료 법률 상담으로 만나게 된 주민분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사건을 해결해가는 모습을 보며, 봉사의 진가를 깨달았다. 어떠한 일을 자발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이룰 때 물적 보상이 없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스스로 행했다고 느낄 수 있다. 이번 편을 보고서 나도 전문성을 활용해 누군가의 삶에 웃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성취도의 기준

 

한 달 동안의 인턴 생활을 통해 변호사님들께서 해주고 싶으셨던 이야기를 모두 방송에 담아낼 순 없었지만, 그 진심은 전해졌다. 특히 나는 권상욱 변호사님께서 송지원 인턴사원에게 해주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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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욱 변호사님은 송지원 인턴사원이 일에는 자기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를 채워야 일을 끝나는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그 기준이 제대로 없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전한다.
 
열심히 다 해서 완벽함에서 조금 떨어지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보다 대충해서 나오는 결과물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권상욱 변호사님의 말씀이 더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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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해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보다 대충해서 못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 내 성취도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보다 그저 '나름 열심히'라는 명목으로 이제껏 대학 생활을 해온 것 같다. '이만하면 됐지.'라는 대충의 다른 말로 나를 포장하며 진짜로 열심히 했다면 완벽했을 것이라고 나 스스로 위안해왔다. 나는 제대로 하면 다 잘하는데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않아서 이 정도에 머무는 거라고 나를 숨기고 자기 합리화했다.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고 사회를 탓하고 남을 평가하기 바빴다.
 
권상욱 변호사와 송지원 인턴사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진로 결정과 생활에 힘들어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성취도의 기준이 너무나 높고, 결과물이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지만, 그럴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필사의 노력을 했어도 실패할 미래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많고, 그에 속하고 싶지만 실패할 것 같아서 차라리 외면하고 핑계 대기만 하고 있다. 공부할 때도 그저 '밤을 새우고 더 열심히 했으면 더 잘 나왔을 거야'라고 생각할 정도로만 했고, 엔간하게 남들이 할 만한 대외 활동을 찾아서 내가 적당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들을 골라, 이 정도면 됐다고 멈춘 결과물을 만들어 왔다. 나에게도 성취도의 기준을 찾고 그에 마음을 다하는 노력과 도전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제 이를 정립해나가야 할 차례다.
 
*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공감하며 동질감을 느끼고, 깔끔히 과제를 수행해낸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고 응원했고 그들의 인생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다시금 찬찬히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나의 공부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내 삶의 모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선택의 길에 서 있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내가 내 능력을 키워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아직 답을 찾진 못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때의 열정을 채우려고 한다. 두려움과 설렘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우리 모두의 ‘처음’ 그 열정을 응원하는 신입사원 탄생기, "굿피플"이다. 우리 모두 굿피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눈물 흘리지만, 그 진심으로 이미 우리는 모두 굿피플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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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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