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희생은 사랑의 증명인가 [문화 전반]

추억은 다르게 읽힌다
글 입력 2021.01.11 13: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내가 없더라도 넌 행복해야 해


 

[크기변환]1.jpeg

 

 

영화나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는 '희생'이다. 대의를 위한 희생,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 가족을 위한 희생. 그리고 그 장면마다 주인공들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내가 없더라도 넌 행복해야 해."

 

과연 이것이 사랑인가? 나는 희생이 사랑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겨진 이들의 삶은 기나긴 죄책감과 후회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희생은 고문과 같다. 평생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을 기억하고, 책임져야 하며, 그 순간 인생은 타인의 몫까지 짊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희생은 이기적인 행위이다. 원하지 않는 극복의 시간을 선물하며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희생은 결코 숭고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음을 일깨워주고자 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을 위한 희생


 

 

 

'레미제라블' 캐스팅 과정에서 마리우스의 연인인 코제트보다 그를 위해 희생하는 에포닌의 경쟁률이 더 높았다고 한다. 에포닌은 지극히 자기희생적인 캐릭터이다. 마리우스를 사랑하면서도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코제트와의 사랑을 멀리서 바라본다.

 

당연하지만 마리우스는 이 사실을 모른다. 따라서 에포닌에게 악의 없는 다정함과 호의를 보인다. 그에게 있어 에포닌은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마리우스를 대신하여 총을 맞고 희생한다. 그리고 사실은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고, 마지막 순간에 나의 곁을 지켜줄 수 있겠냐고 노래한다.

 

그녀의 희생은 옳은 것이었을까. 물론 마리우스는 에포닌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없더라도 바람대로 코제트와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에포닌의 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두 사람이 함께한 추억은 다르게 읽힌다.

 

아무 의미 없이 베풀었던 친절이 그녀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음을 깨닫게 되고, 에포닌을 진심으로 아꼈기 때문에 코제트와의 사랑을 털어놓았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때부터 에포닌은 마리우스에게 뜨거운 날들을 함께 보낸 동지가 아니라, 내가 상처를 입힌 사람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도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호위무사 설은 선비 허염을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설보다 신분이 높았고 심지어 공주의 부군이었다. 허염 또한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고 설을 동생처럼 각별히 아꼈다. 끝까지 마음을 숨겨오던 설은 허염을 죽이려던 자객의 손에 자신을 희생하며 그의 품 안에서 죽음을 맞는다.

 

허염은 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것, 자신을 위해 죽은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살아간다는 것, 그런데도 결국 그녀를 사랑해 줄 수 없다는 것. 그는 설과 자신이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사랑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그녀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삶을 선물하는 희생


 

 

 

영화 '타이타닉'은 희생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이다. 암초에 부딪혀 기울어지는 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방식은 모두 달랐다. 남성들은 부인과 아이들을 구명보트에 먼저 태우고 떠나가는 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주인공 잭 또한 바다에 표류하는 널빤지 위에 로즈를 올린 채 자신은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후 구조된 로즈는 새로운 남자와 결혼을 하고, 할머니가 된 모습으로 그날 있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과거 잭이 죽음을 맞이했던 바닷가를 바라보며 똑같이 세상을 떠난다. 그와 사랑했던 날은 단 하루였지만 그녀가 평생 꿈꿔왔던 모습은 타이타닉 호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잭이었다. 결국 로즈는 길었던 인생보다 한평생 순간에 불과했던 잭과의 추억을 더 그리워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남자가 선물한 삶이라는 이유로, 그날의 기억에서 자유로웠던 순간보다 그리움을 삼켜온 날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내 마음속에 더 강렬히 남았던 것은 잭의 희생이 아니라 물이 들이차는 순간에도 서로를 껴안으며 죽음을 맞이했던 노부부의 모습이었다. 내가 정의한 사랑은 서로에게서 서로를 지키는 것이었다.

 

 

 

모성애의 상징, 희생


 

 

 

'수상한 그녀'의 주인공 말순은 한평생 자식을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전형적인 어머니이다. 가수라는 꿈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일찍이 남편을 잃고 아들을 키워내기 위해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이후 영화에서 등장한 표현에 따르면 '남이 내다 버린 음식을 주워 먹을 정도'로 눈물 나는 모성애를 지녔다.

 

특별함 없이 말년을 보내던 말순은 수상한 사진관에서 청춘의 모습을 돌려받고, 평생 꿈꿔왔던 가수로서의 가슴 뛰는 인생을 산다. 그러나 어느 날 손자가 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새로 얻은 삶을 다시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가족 중 피를 수혈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녀뿐이었던 것이다. 이에 아들 현철은 문숙에게 가라고, 다시 돌려받은 청춘으로 그녀의 인생을 살라 말한다.

 

이 장면에서 문숙은 '나는 다시 태어나도 백번이고 똑같이 살아야 한다, 그래야 네가 내 아들이고 내가 네 어미이며, 손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사실 수상한 그녀 외에도 어머니의 희생은 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다. 그것이 자식에게 과연 옳은 일일까.

 

나라면 당신이 나의 어머니로 태어나지 못하더라도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보내줄 수 있다 답할 것이다. 당신이 나를 위해 삶을 버린다면 그것은 희생이지만, 헌신적인 어머니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희생은 사랑의 증명인가


 

[크기변환]common.jpeg

 

 

디즈니 '라푼젤'과 '겨울왕국'에서는 각각 사랑하는 사람과 자매를 위한 희생이 등장한다. 다행히도 앞선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게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그런데도 희생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아, 이 사람이 날 이 정도로 사랑하다니'라는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한쪽만 살아남는 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캐릭터를 되살리기는 하지만, 희생으로 인하여 사랑이 돈독해졌음을 어필한다.

 

이는 사실 모순적이다. 남겨진 이들에게 희생은 절대 좋은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마치 견고한 사랑의 증명처럼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가 과연 효녀인가'라는 논쟁이 발생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한 사랑이다.

 

 

 

에디터_허향기.jpg

 

 



[허향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08841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