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슈퍼밴드 시즌2, 여성 참가자는 어디에 [예능]

더 이상 편한 마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글 입력 2021.01.10 13:0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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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음악, K-POP, 클래식, 국악, 록, EDM, 힙합, 뮤지컬, 재즈, 월드뮤직 등 각 분야의 실력파 남성 뮤지션이라면 나이 / 국적 / 학벌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 가능!

 


최근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가 시즌2에 출연할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여성 뮤지션을 배제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남성 출연자만 시즌1과 마찬가지로 시즌2에서도 지원 자격을 남성으로만 한정한 것이다. 홈페이지에 모집 공고가 올라온 이후 시청자게시판에는 성차별적 지원조건을 규탄하는 항의글이 달렸으며, 밴드 새소년의 리더 황소윤, 가수 오지은 등 여성 뮤지션들은 SNS를 통해 불쾌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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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새소년 보컬 황소윤 인스타그램

 

 

필자는 재작년 <슈퍼밴드> 시즌1이 방영될 당시 이 프로그램의 열렬한 시청자 중 한 명이었다. 좋아하는 무대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고, 종영 이후에는 출연자들 전원이 나오는 콘서트에 다녀왔으며, 음원은 아직도 즐겨 듣는다. 밴드 음악, 락 음악의 인기가 많지 않은 한국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기는 와중에도 밴드를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정말 반가웠고 좋았다.


<슈퍼밴드>는 지난 시즌1을 통해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되는 강점을 보여줬다.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흥행과 재미를 위해 출연자들의 경쟁이나 갈등을 강조하고, 억지스러운 서사를 만들어내거나 소위 말하는 악마의 편집을 거치는 것에 비해 <슈퍼밴드>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출연자들의 무대만으로 매회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특정 장르의 밴드만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첼리스트와 같은 클래식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들의 참가를 허용하여 무대에 다양성을 더했다는 점 등은 이 프로그램만의 고유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가요와 달리 밴드 음악은 아무리 그 음악이 좋다고 하더라도 가요나 다른 장르의 음악에 비해 알려지기가 쉽지 않다. 특히 독자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류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가 부족한 많은 인디 밴드의 경우 그들의 입지는 매우 좁다. 많은 사람은 음원 차트에 있는 노래만 들으며, 그에 가려진 이들의 음악은 사람들의 귀에 한 번 닿기도 전에 쉽게 사라지고 잊힌다.


시즌1 출연자들 역시 오디션이라는 형식이 무색하게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자들이었으며 이미 음원을 내고 활동하고 있는 참가자도 있었다. 그러나 인디 음악을 꽤 즐겨듣는다고 생각하는 내게도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이전에 알지 못했던 밴드와 그들의 음악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이처럼 <슈퍼밴드>는 감춰진 실력자들을 발굴하여 대중들에게 이들의 음악을 앞장서서 전해주었다는 점에서 미디어가 가지는 본연의 순기능을 십분 발휘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논란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많은 뮤지션들이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 기회가 남성 출연자에게만 부여된다는 점은 일차적으로 여성 뮤지션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가 '마룬5와 같은 글로벌 팝 밴드를 만드는 것'이라는 PD의 말처럼 애초에 남성 밴드를 만들겠다는 취지라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이 여러 라운드에 걸쳐 경쟁하며 최종적으로 우승한 팀에게 혜택을 주는 ‘오디션’ 형태의 프로그램임을 고려했을 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우선적으로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지를 필연적으로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슈퍼밴드 2>가 남성으로만 지원자를 제한한 것은 기회의 공정성 면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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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밴드 시즌1 조원상 팀 'Adventure of a Lifetime' 무대 장면

 

 

좀 더 본질적인 면에서 바라보면 해당 모집조건은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한 팀을 이루는 밴드 본연의 성격과도 어긋난다. 밴드는 서로 다른 성향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팀을 이뤄 음악을 들려주는 하나의 작은 단체다. 시즌1에서 다양한 특성의 출연자들이 서로에게 다가가고, 마음에 맞는 이들끼리 모여 곡을 정하고, 편곡하고, 합을 맞춰보며 연습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 결과물인 무대 못지않게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예컨대 1라운드에서 기타 연주자들 4명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각기 다른 주법과 리듬으로 콜드플레이의 ‘Adventure of a Lifetime’을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은 과장을 보태자면 공동체의 힘 비슷한 것을 느끼게 했다. 이는 밴드 음악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자 밴드 오디션만이 구현할 수 있는 강점이다.


그런데 밴드 구성원을 남성으로만 제한하는 것은 이처럼 출연자들이 여러 조합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너지를 일으킬 가능성을 저해한다. 또한, 여성으로만 구성된 여성 밴드는 차치하더라도 혼성밴드의 가능성마저 배제한다는 것도 문제다. 굳이 외국의 사례를 말할 것도 없이 국내만 보더라도 새소년이나 아도이(ADOY), 바이 바이 배드맨과 같은 여러 혼성 밴드들이 존재하며 이들의 음악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밴드들까지 포함한다면 아마 훨씬 많을 것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혼성밴드라고 부르는 것도 우스운 게 아닐까 싶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음악을 하는데 굳이 혼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


<슈퍼밴드 2>의 모집요건이 논란이 된 것은 단순히 여성을 배제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밴드의 속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별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프로그램을 통해 훨씬 더 다양한 조합을 바탕으로 다양한 매력의 밴드가 만들어질 수 있다. 글로벌 팝 밴드를 만들겠다는 기획 의도를 고려했을 때도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더욱 바람직해보인다. 이러한 다양성의 실현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다는 점은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이자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큰 아쉬움으로 느껴진다.


제작진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음악 산업의 특징에 있을 것이다. 공연, 앨범, 음원 등 국내 음악 시장의 주요 소비자층은 여성이며, 남성 가수와 남성 아이돌 그룹의 수요가 여성 가수나 아이돌 그룹에 비해 높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프로그램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남성 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특히 아이돌이나 일반 가수를 뽑는 오디션과 달리 밴드 오디션의 경우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장르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확보하려면 그러한 시장 논리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겨레>의 기사에 의하면, <슈퍼밴드 2> 관계자는 “향후 지원 요건을 여성으로 넓히는 것을 열어놓고 고민하겠다”고 전했다고 한다. 시즌3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들이 함께 밴드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방송사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해보고 싶지만, ‘나이, 국적, 학벌과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는 문구를 내걸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표방하는 지원의 자유와 기회의 공정성이 기이하게도 성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더는 이 프로그램을 편한 마음으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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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도혜원
    • 저도 슈퍼밴드 시즌1 애청자로서 이번 모집요건이 많이 아쉽고 답답했는데, 이런 글을 볼 수 있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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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영은
    • 2021.01.15 14: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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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혜원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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