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안녕하세요. 백수입니다.

글 입력 2021.01.0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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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K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이 되었고, 오늘 하루도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언제나 같은 루틴이니까요.

 

어차피 숨길 것도 없으니 바로 말씀드릴게요.

 

저는 백수입니다.

 

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백수 맞아요.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사회는 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를 부르는 호칭에 '준비'라는 단어를 넣어준 걸 보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사회는 우리가 취업을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일자리가 없다, 취업이 되지 않는다라며 호소하면 일자리는 많은데 청년들이 대기업이나 편한 자리만 찾아간다고 반박하는 게 주로 보이는 패턴이지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제가 느낀 바는 이랬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우리 취준생에서 벗어나요.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취업의 압박을 딛고 힘차게 벗어던지는 거죠. 그러니 불평할 시간에 먼저 가는 친구들처럼 내 앞가림이나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긴, 취준생이 모여 인식을 바꿔주세요, 일자리를 늘려주세요, 주장하는 것도 보기 힘든 모습이긴 하네요. 그럴 시간에 ncs 한 문제라도 더 풀고 인강 하나라도 더 보는 게 이득이니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과 나를 자연스럽게 비교한다는 사실이 참 슬프게 다가옵니다. 지금도 혼자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경쟁자들은 한발 더 앞서가고 있겠죠?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

 

아침밥을 준비하면서 태블릿을 펼칩니다. 누구보다 아름답게 사는 것 같은 유튜브 브이로그를 틀고 홀로 앉아 식사를 합니다. 영상 속의 그들은 과연 실존하는 사람이 맞을까요? 화이트톤의 잘 꾸며진 깔끔한 방에 따사로운 한 줄기 햇빛을 받으며 기분 좋은 기지개, 가볍게 세수를 하고 부엌으로 이동하지요.

 

싱그러운 채소를 손질하고 토스트를 구워 가벼운 아침을 테이블에 보기 좋게 세팅하며 식사를 시작하는 그들을 보며 나도 함께 아침을 시작합니다. 브이로거들은 고맙게도 한 두 마디 질문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작은 방 안에 혼자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를 느낍니다.

 

괜히 나까지 산뜻한 하루를 시작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산뜻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검은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죠. 방금 전까지 보이던 따사롭고 아름다운 아침은 온데간데없고 후줄근한 잠옷에 대충 차린 아침을 먹고 있는 모습이란, 정말 '백수' 그 자체였어요. 영상 속 인물은 동화에 있는 집처럼 정말 이상적인 모습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데 반해 내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정 나를 비참하게 하는 건 따로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존재가치'입니다. 

 

저들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이죠. 그건 그만큼 영상 속 인물이 누군가에게 존재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내 인생 살기도 바쁜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시간을 투자한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에게 가치가 있다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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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나는 어떤 존재인가요? 누가 나를 필요로 할까요? 내 존재가치는 어떻게 증명해야 하죠?

 

아직은 모르겠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걸요.

 

자소서나 면접에서 종종 나오는 질문이 있어요. '당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꼭 달성해야 하는 성격입니다. 좋게 말하면 끈기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죠. 이렇게 장점과 단점은 모두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입니다. 그렇기에 딱 잘라서 장단점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목표와 달성'입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의 목표를 잡으면 그것만 보고 달성하고자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부족한 나도 만날 것이고, 능력 있는 나도 만날 것입니다. 그렇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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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돌려 말하기라고 할 수 있어요. 장단점을 물어봤는데 분명하게 답을 하지 않고 교묘하게 흘려버린 거니까요. 아직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나를 당당하게 소개하는 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위와 같은 답변을 미리 준비한 거예요. 면접 때 답한 나의 모습이 곧 나의 이미지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사실 참 그래요. 짧은 질문과 답변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건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릴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얼마든지 꾸미고 속일 수 있는 면접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성을 평가하고 이미지를 만들다니, 꼭 바꿔야 할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

 

'띠링'

 

미리 설정한 알람이 울린 덕에 잡생각에서 깨어났습니다. 더 암울해지기 전에 얼른 나갈 준비를 해야겠어요. 어딜 가냐고요?

 

오늘은 면접 날이에요.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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