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빠의 눈물 [공간]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남해
글 입력 2020.12.2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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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항상 1년에 2번, 가장 춥고 가장 더울 때 남해로 내려간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언제나 따뜻하게 적당한 온도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외양간에 있던 소들에게 여물을 주고, 닭장에서 알을 꺼내고, 염소에게 괜히 말을 걸어보고, 동네 똥개에게 밥을 가져다주며 나는 시골 체험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에게 남해는 아주 찰나의 시골 구경이었을 뿐. 할머니, 할아버지와 어떤 유대 관계도 느끼지 못했다. 어렸던 나에게 경남 사투리는 마치 외계어 같았고, 당신들의 투박한 손길은 참 낯설었다.

 

그리고 장남과 손자에 대한 깊은 애정은 그 어렸던 나의 눈에도 여실히 보였고, 그것이 나의 마음 어딘가에 박혔었다. 그렇게 나에게 남해는 '어쩔 수 없이 와야만 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으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약 1년 전, 평소와 다름없이 도착한 남해는 달라져있었다. 투박하지만 항상 잘 정돈되어있던 마당, 집으로 놀러 오던 동물들, 따뜻하게 데워진 방.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남해에 수년간 오고 가며 열심히 나의 나이를 키워갈 때 남해 또한 열심히 나이를 먹어간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눈에서 더 이상 강인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한 모습에 우리 가족은 열심히 움직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남해의 모습들을 조금이라도 채워두기 위해. 집을 청소하고, 마당을 쓸며 그들의 손길 대신 우리의 손길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아주 예뻤고, 푸르렀으며 정이 가득했던 남해의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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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기록이란 나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기록은 내가 가지고 있던 남해에 대한 정의를 바꾸어놓았다. 80년이 넘는 세월을 지키며 자신들의 몫을 온전히 다해낸 곳. 그곳에서 나는 그 흔적들을 따라가며 기록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꾸 아빠의 뒷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강하고 현명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조금씩 끝을 준비해나가는 모습을 애써 뒤로 넣어두며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참 슬펐고, 어려웠다.


남해를 떠나기 전, 아빠는 나에게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오라고 했다. 할머니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또 꼭 나를 안아줬다. 그리고 "이삐다"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또 잘 커줬다며 나를 토닥여주셨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손녀가 참 많이 보고 싶으셨구나. 손녀의 행복을 바라시는구나. 그래서 그 손의 감촉과 그 눈빛을 좀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아주 꽉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남해를 떠나는 차 안에서 흘리던 아빠의 눈물에 나는 애써 자는 척하며 눈을 꽉 감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멋졌던 인생과 기꺼이 그 인생의 화선지가 되어준 남해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먼 훗날까지도 남해를 잊지 않고 기억하길.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몫을 온전히 해냈던 남해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길. 그렇게 되뇌었다.

 

남해대교를 지나갈 때 비로소 느껴지던 남해만의 공기와 냄새, 추억은 여전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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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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