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이 보이나요? - 어둠 속의 대화 [시각예술]

글 입력 2020.12.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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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날마다 반복되는 빛과 어둠이 있다. 두 요소는 상반된 시간대의 조건 속에서 공존하지만, 인식되는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빛을 떠올리는 순간 온갖 감각이 깨어나는 듯한, 생동감 있는 느낌을 전달받는다. 그것은 일상 깊숙이 들어와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너무나 익숙한 존재이기에,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될 필연적인 요소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빛이 내리쬐는 환하고 밝은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이야기하며 응시하는 눈과 표정의 변화를 통해 쉴 새 없이 순간마다 감정을 공유한다. 그러한 과정에 있어 시각은 주된 역할로써 작용한다.

 

한편, 밝음과 대비되는 어둠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앞선 빛의 개념과는 또 다른 의미로 나아가게 된다. 어둠이 빛의 공간에 들어서면, 그곳은 암흑으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갇힌 공간으로써 변모한다. 시각에 의존하던 공간의 의미는 곧 시각이 배제되어버리는 무(無)의 상태가 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주변의 모습들을 생경하게 느끼며 특이한 감정으로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캄캄한 환경은 우리를 둘러싼 채 자리하는 주변의 것들뿐만이 아닌, 나 자신의 모습과 존재 자체까지도 낯설게 한다.

 

그때 우리들은 본능에 따라 의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자연스레 자기 자신에게서 찾게 되고, 그러면서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새로움을 느낀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차 어둠 속에서 익숙함을 느끼게 되고, 시각이 전해주지 못하는 본질적인 의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 발자취의 끝에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눈을 통해선 볼 수 없는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어둠이 주는 얻음의 미학, 그것은 바로 전시 ‘어둠 속의 대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일깨워주고자 하는 가치 있는 메시지다.

 

시각과 그로 인한 감상이 중요한 전시기획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전시가 주는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의 경향 속 자리한 ‘어둠 속의 대화’의 독립적인 주체성을 살펴보고, ‘어둠’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시사해주는지 전시의 전반적인 특성을 통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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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대화’는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32개국에서 1,2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문화콘텐츠 전시다. 이는 국내에서 2007년에 처음 선보여졌으며, 서울 북촌에서 상설 전시되고 있다. 본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각 배제 전시회’라 할 수 있고,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들을 체험하는 형태로 구성된다.

 

보통 ‘전시’라 함은, 시각을 기반으로 하여 작품을 관람하고 더 나아가 작가의 삶 전체를 이해하게 하는 일련의 인문학적인 콘텐츠로써 기획된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시각’인데, 전시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시각 중심의 콘텐츠 수용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감각을 배제한 전시라는 건 분명히 역설적이다. 관람이라 칭하기에도 약간의 애매한 지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둠 속의 대화>에서의 ‘전시와 관람’은 나머지 감각들을 통한 문화예술의 적극적인 수용을 일컫는 말로써 표명되는 이채로운 의도다. 지금까지의 전시콘텐츠에 관한 연구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게끔 고려되어 작품 매체의 특성과 시대에 맞는 미적 탐구와 같은 여러 복합적인 요소를 결합한 산물로써 추진돼왔다.

 

미술사의 측면으로 보아도, 예술을 통한 대중문화의 형성과 관심은 액자 또는 공간 안에 설치된 작품과 그것을 보고자 하는 군중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식으로 발전해 소비되어온 문화예술은 시각 중심적인 성격의 보편성을 꾸준히 강화하며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앞선 일련의 공식에 부합하는 흐름이 지속될 수 있도록 고안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본 전시가 제시하는 구성과 그에 따른 감상 방법은 그 자체로 충격적임과 동시에 신선하기도 하다. 보편적인 공식을 제외한 부분은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기도 했고, 특히나 미술계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파격적인 행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대적 입증으로 볼 때, <어둠 속의 대화>는 독특한 예술의 영역을 새로이 개척해나간 전시로써 예술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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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모든 과정은 완전한 암흑 속 공간에서 100분간 전문 로드마스터의 인솔하에 이루어진다. 한 타임 당 10명 이내로 구성된 관람객들의 무리는 어둠 속에서 여러 장소를 거닐며 오직 상상과 로드마스터의 목소리로만 전시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 존재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기에 가상공간이라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보는 것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활용할 기회를 부여받음으로써, 평소에는 잘 사용해보지 않은 감각을 앞세워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잠재한 것들을 끄집어내게 된다. 상상력은 시각을 대신하여 주체적인 임무를 수행하면서, 공간적 이미지의 구성을 분별하도록 한다. 그때 상상을 하는 주체인 관람객들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그들로 하여금 전시에 관한 담론의 형성을 맡겨 능동적으로 완성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전시의 동향을 보아도, 이처럼 관객의 역할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더군다나 대개 전시장의 풍경을 보면, 제시된 동선을 따라 도슨트 또는 오디오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선보여진 작품을 관람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일부 취하는 모습이다. 다만 능동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관람하는 동안 작가와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전시의 전반적인 의도를 헤아리려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형태로 전시 대부분이 진행되고 있기에, 그 과정에서 능동적인 부분이 과반수를 차지하기란 불가능하고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특정하게 지시된 관람대상이 존재하지 않고, 상상력이 곧 현실이자 전시의 주제가 되는 ‘어둠 속의 대화’의 특성은, 관람자들의 능동적인 태도와 참여를 자연스레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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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마스터는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6개의 공간마다 그에 맞는 질문을 던지고 미션을 부여하여, 어둠이 주는 주제성과 가치에 도달하게 한다. 닿아서 느껴지는 촉각, 맡아지는 후각과 들리는 청각 등 예민해져 있는 감각을 언어로써 표출하게 하여 복잡한 상태에 놓인 감각을 환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의 역할을 자처하여 관람객 사이의 친밀감을 결속시킨다. 그러한 의미에서 로드마스터는 어둠 속 여정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감정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중개자나 다름없는 존재다.

 

이렇듯 전체적인 공간을 숙지한 채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그의 행동에 따라, 관람자들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의 구조적 판단과 본질적인 메시지의 탐색을 주체적으로 수행해나가야 한다.

 

한편, 이는 <어둠 속의 대화>의 소개 문구인 “switch off the sight, switch on the insight”와도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사람들은 오늘날을 ‘통찰의 시대’라 정의한다. 그것은 단순히 바라보기에서 끝나는 단편적인 시점이 아닌, 예리하고도 지적인 관찰력을 지님으로써 사물과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통칭한다.

 

통찰력은 창조적이며 직감적이고 때로는 현실을 뛰어넘는 성질을 드러냄으로써 본질적인 측면을 바라보게 한다. 역사,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통찰은 그 분야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수단이자, 국한되지 않는 방향으로의 성장을 그리게 한다. 그러한 이유로, 현대적인 사고이자 앞으로의 세상을 주도할 창의적인 능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찰은 어디로부터 어떻게 비롯되는 것일까. 이러한 방법론은 본 전시를 통해 보다 명확하고 명쾌히 드러난다.

 

 

 

어둠 속 통찰과 현시대적 메시지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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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로의 도달을 위한 준비는 생각의 틀을 깨는 것에서 시작된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편견을 가지곤 한다. 즉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현상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도 이때까지의 경험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는데, 경험의 대부분은 시각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만큼 시각적인 이미지는 인간의 사유 방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데도 본 전시에서는 그러한 위상을 갖는 감각을 차단해버리는 대신, 그동안 잠들어 있던 여타의 감각을 깨운다. 그렇게 시각적 편견의 틀을 깨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접속해 근본적인 통찰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빛의 공간에서와 달리, 어둠 속에서의 사유는 주변을 의식할 수 없는 캄캄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평소에 체감하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기에 적합한 명상의 장소인 것이다.

 

바쁘고 힘든 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소소한 일상이 주는 가치를 느낄 새 없이 현재, 혹은 미래만을 바라보고 달려간다. 그 과정에 있어 정신적인 가치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들을 우선시하고 좇으며 그게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자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게 나타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는 보이는 것, 그 너머에 존재한다. 어둠 속에 자리한 사람들은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과 다른 타인과 소통하며 일종의 안식처에 머무르게 된다.

 

또 한편으로, 어둠은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드는 밀실 같은 존재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위치와 타인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각기 다른 가면, 즉 페르소나를 장착하여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페르소나는 만연해져 있다. 이처럼, 타인에게 투사된 자아를 지니고 살아가는 현시대 사람들에게 있어 어둠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어둠은 페르소나라고 일컬어지는 인격의 가면을 쓸 수조차 없는 곳이며, 있는 그 자체를 서슴없이 보여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다하기 때문이다.

 

존재의 근본적인 이유와 정체성의 재확인 등, 인생에 있어 한 번쯤은 의문을 가지게 되는 사안들에 대한 답이 <어둠 속의 대화>로 인해 하나둘씩 채워진다. 단 하나의 빛도 허락하지 않는 어둠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려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당신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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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본래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요소였다. 중세 때까지의 서양 문화권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해, 빛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악과 죄를 대변하며 공포심을 유발하는 공간으로써 인식해왔다. 그러한 이유로 화가들도 밝음만을 그림에 표현하려 했다. 어둠에 대한 본격적인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건 르네상스 이후였고, 그때서부터 사람들은 어두움이 선사해주는 의미적인 가치들을 인정하며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문헌 기록이 있듯, 현재 우리에게 있어서도 어둠의 의미는 철학적이고 실존주의적인 기준의 척도로부터 일정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삶의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써 자리 잡았다. 때때로 아무런 감흥 없이 느껴지는 우리들의 삶을 더없이 밝게 비추어주는 명상의 공간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의 밀실과 같은 공간으로써, 선명히 보이는 현실에 가리어져 보이지 않던 이면에 자리한 메시지를 건네준다.

 

<어둠 속의 대화>는 바로 그러한 메시지를 조명함으로써 가치의 증명에 일조한다. 물질적인 게 아닌,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정신적인 얻음의 미학을 그 자체로 경험하게 해주어 본질적인 실상을 마주하도록 한다. 시각에 의존했었던 지난날의 모습을 잠시 벗어던지고, 다른 감각에 오롯이 집중하여 어둠 본연의 미(美)를 통찰해봄으로써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달음이 <어둠 속의 대화>가 시사해주는 바일 것이다.

 

 

기본자료

<어둠 속의 대화>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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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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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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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ena
    • '전시를 본다'라는 말 보다 '전시를 느낀다'가 맞는 표현 처럼 느껴집니다. 전시에서 시각을 배제시키고 그 외의 촉각, 후각을 통해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시각에 의존하여 보이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던 것 같습니다. 본다는 것이 모든게 다 올바른 진실이 아닌데 말입니다. 보이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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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_s2h
    • 2021.01.21 11: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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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ena피드백 감사드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시’라 하면 대개 시각을 우선한 콘텐츠만을 기대하고 그렇게 비롯된 가치에 익숙해져있는 듯합니다. 어둠속의 대화는 바로 그러한 익숙함에 긍정적인 충격을 주어 또 다른 정답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려 한 전시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저 역시 에디터님의 피드백처럼 보이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어둠만이 자리하는 게 아닌 우리가 비로소 보아야만 하는 것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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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J
    • 전시가 시각을 제외한 여타의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동안은 전시는 시각을 통해 보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글을 보면서 잠시 제가 생각했던 전시라는 생각의 틀을 깨야겠다는 생각도 하게됩니다. 아직 전시를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경험한다면 조금 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바쁘게 나아가기만 했던 하루에 쉼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전시에 대해 상상해보았는데 실제로 경험한다면 어떠한 감정과 느낌을 갖게 될지도 궁금해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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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_s2h
    • 2021.01.21 11: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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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J피드백 감사드립니다! 어둠속의 대화 전시를 처음 경험했던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시각을 통해 보는 것이 당연한, 그런 방식이 당연해진 시대에 본 전시의 관람 형식은 흥미, 신선한 충격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까지도 되돌아보게 하기에 인문학적이면서도 예술의 모든 면을 앞서나가는 패러다임적인 전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디터님의 ‘하루에 쉼표가 될 수 있는 전시’라는 표현이 너무나 공감됩니다. 그런 표현의 직접적인 실체를 하루빨리 만나보고 경험해보시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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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금미
    • "하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는 보이는 것, 그 너머에 존재한다. 어둠 속에 자리한 사람들은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과 다른 타인과 소통하며 일종의 안식처에 머무르게 된다."
      라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파격적인 형태의 전시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둠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지는 글이어서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 다른 것보다도 유독 어둠을 무서워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눈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알 수 없어 불안해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너무 선명한 것들이 저를 더 두렵게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술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점점 패러다임을 깨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아직 제 식견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전시를 소개해줌과 동시에 통찰력 있는 시선까지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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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_s2h
    • 2021.01.21 11: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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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금미피드백 감사드립니다! 어둠속의 대화 전시를 통해 철학적인 질문을 저도 모르게 끊임없이 던지고 또 던지며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나갔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에디터님처럼 ‘어둠’이라는 존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는데요, 그저 어둠이라하면 무섭고 공포스럽고 외로움과 고독을 던져주는 부정의 실체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본 전시는 어둠의 무수한 가치를 선명한 것보다도 더 선명한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해줌으로써 우리가 보아야 할 진정한 세상을 발견하게끔 해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선명한 것들이 더 큰 두려움을 준다는 에디터님의 말씀이 참 동감됩니다. 저도 패러다임을 깨는 작품들이 많아질 때면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에디터님의 회신을 읽으면서 예술, 그리고 세상에 대한 충분한 식견을 가지신 분이라는 게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제게도 통찰력 있는 시선을 지닌 피드백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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