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라면 용서하겠습니까? - 슬기로운 감빵생활 [TV/드라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의 역설
글 입력 2020.12.06 21: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범접할 수 없는 공간 속 이야기



[크기변환]포스터.jpg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방영된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검찰이나 변호사 같은 '선인'이 아니라 범죄자라는 '악인'의 시각에서 전개된 드라마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원칙을 준수하고 범죄자들에게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 캐릭터가 이질적으로 묘사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기본 모토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이다. 깡패, 약물 중독자, 도박꾼, 사기 전과범, 그리고 더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모인 감옥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당한 범죄의 기준



[크기변환]김제혁.PNG

 

 

주인공 김제혁은 유명 야구선수였다. 감정 표현이 서툴고 모든 일에 무던한 그는 여동생을 강간하려던 남자의 머리를 가격해 뇌사자로 만든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사유는 과잉진압이었다. 범죄를 저지르려던 의도는 있었지만, 미수에 그쳤기 때문에 남자는 강간범이 아닌 피해자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 김제혁을 가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대한민국 법체계 속에서는 이미 당하고 난 후에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지만, 그것이 부당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정당방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헌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가해자의 사연을 배제하고, 아무 죄 없는 사람을 뇌사자로 만들었다고 했을 때 이를 옹호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보편적인 감정과 도덕성이 개입했을 때, 어떤 범죄는 때로 정당성을 갖는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 상황에서 누구나 남자의 머리를 가격했을 것이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외부적인 요인들과 무관하게 객관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평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특정 상황 속에서 가장 멀리해야 할 요소인 '감정'이 개입된다는 사실은 다소 모순적이다.

 

헌법이 허용하는 관용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법체계가 지켜야 할 적정선은 어디인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사람


 

문래동.PNG

 

 

영화나 드라마처럼 선과 악이 명백히 구분된다면, 이 세상에서 모든 범죄는 사라질 것이다. 악인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격리해 놓으면 선인들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무작정 욕하더라도 그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면 우리는 마음이 약해진다. 그와 반대로 마냥 선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한 번의 실수를 저질렀을 때, 미련 없이 돌아서는 것도 사람이다.

 

김제혁과 감빵 동기인 강철두는 어떻게 보면 가장 위협적인,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2상 6방 내 분위기 메이커인 그는 수용자들과 골고루 사이가 좋으며, 김제혁이 믿고 따르는 동기 중 하나이다. 죄질을 살펴보기 이전에 강철두는 우리 주변에서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사람이다. 장난 많고, 지저분하고, 생각 없어 보이지만 주변인들을 은근히 챙긴다. 만약 감옥이라는 장소를 배제하고 본다면 오히려 모두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는 전과 10범의 사기범이며 자식이 있음에도 상습적으로 바람을 피운다. 이를 알고 강철두의 행동들을 다시 본다면 익살스러운 모습이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선인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인이 될 수도 있는 사람.

 

우리는 김제혁의 여동생을 강간하려 한 범죄자를 혐오한다. 그가 잠재적 가해자인 만큼 김제혁의 여동생 또한 잠재적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강철두라는 캐릭터에게 애정을 느낀다. 김제혁의 시선에서 드라마가 전개되기 때문에 시청자도 그의 눈을 통해 인간적인 강철두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철두가 저지른 10건의 사기 행각에 대한 피해자들은 과연 강철두의 숨겨진 인간성을 보고 그를 용서하려 할까?

 

깊게 생각해 보았을 때, 김제혁이 강철두를 믿고 의지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굉장히 양면적이다. '피해자인 가해자, 가해자인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본인도 모르게 범죄자를 미화하고 있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그렇다. 강철두가 동일 선상에 있지는 않지만, 동물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죄자가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손을 흔들어 줬다는 이유로 선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중적인 잣대


 

나과장.PNG

 

 

시청자들이 가장 미워했던 등장인물은 범죄자 중 하나가 아닌 융통성 없는 교도관 나과장이었다. 나과장은 같은 교도관 팽부장과 대비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2상 6방 사람들과 가까운 사이인 팽세윤 교도관은 범죄자는 교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감옥에 불이 났을 때, 그들의 선함을 믿으며 교도소의 잠금장치를 해제시킨다.

 

반면 나과장은 원리원칙을 준수하는 교도관이다. 김제혁이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특혜받는 사실을 부당하게 생각하고, 사적인 감정을 내보이지 않으며, 범죄자들의 이런저런 호소들을 기각시킨다. 원칙 못지않게 인간성과 감정을 우선시하는 팽부장과 매번 대립한다.


그러나 만약 이 드라마가 교도관의 입장에서 쓰였다면 오히려 밉상은 팽부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악역인 줄 알았던 나과장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교도관일 뿐이었다. 범죄자들을 대할 때 그는 내면에 존재하는 인간성보다 교도소에 오게 된 이유, 범죄 사실에 주목했다. 이미 한 번 윤리를 어겨 감옥에 온 사람들에게 또 다른 믿음을 주는 것은 새로운 범죄에 대한 발판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나과장을 원망해야 한다면 그가 직업 가치관을 유지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 범죄자를 원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인간성의 기준은 이토록 이중적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윤리 규범임에도, 드라마 속 나과장은 피도 눈물도 없는 비윤리적인 인물로 느껴진다.

 

 

 

결국, 교화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한양.PNG

 

 

<슬기로운 감빵생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해롱이이다. 드라마 속 해롱이는 일명 '뽕쟁이'로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현실 속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무서운 약물 범죄의 대상자와는 다르게 해롱이는 귀엽고 우스운 인물로 그려진다. 심지어 약을 투약한 이후의 모습이 멀쩡할 때의 모습보다 더 인간적이어서 약에 취한 듯한 어눌한 발음이 캐릭터의 매력 포인트였다.

 

이후 마약에 손을 댄 이유가 삶에 대한 결핍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해롱이를 범죄자로 보는 시각은 점차 옅어졌다. 또한, 보편적인 마약 사범들과는 다르게 약으로 인한 추가적인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따라서 출소 이후 해롱이의 행복한 삶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드라마의 후반부에서 해롱이는 출소하자마자 마약에 다시 손을 대고 재수감된다. 이 장면으로 인해 엄청난 갑론을박이 있었다. '드라마 내내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참아왔던 인물이 어떻게 같은 범죄를 또 저지를 수 있냐'는, 개연성 부족이라는 항의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현실에서 입버릇처럼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주변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일반적인 낙인이다. 비록 김제혁의 시선에서 전개된 드라마였지만, 해롱이는 결국 변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인간성을 보았다고 해서 비윤리성까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다음과 같은 주홍 글씨가 어떤 양면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지 깨닫게 된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추후 발생할 범죄를 방지하는 순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람을 다시 악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선 49%와 악 51%, 혹은 악 51%와 선 49%



결국 사람은 하나의 모습만 갖고 있지 않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범죄자 미화라는 혹평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를 다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도리어 깨닫게 되는 사실들이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감빵 또한 격리되지 않은 사회와 같다.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에 그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교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낮은 가능성 속에서 실제로 변화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법률은 강력하지만 때로는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약하기도 하다. 이성과 감성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다.

 

 

*본 Opinion 속 사진 자료의 출처는 모두 tvn의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에디터_허향기.jpg

 

 

[허향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