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연을 담은 책과 커피. 책방 카페 - 책 그리고... [문화 공간]

글 입력 2020.12.0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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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책 그리고..."는 이수역에 위치한 북카페다.

 

여느 카페들처럼 커피를 판매하고 카페의 벽면에는 여러 책이 구비되어 있어 세계문학, 한국문학, 시집, 에세이, 비문학 책들까지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또 널찍한 카페 앞마당과 내부의 한 켠을 차지하는 선인장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을 담은 북카페라는 소개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좋은 점은 추천도서를 설명하는 문구들이 손글씨로 적혀 있는 점이다. 손글씨로 적혀진 안내 문구에선 대형 서점들과는 다른 동네 서점의 인간미와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추천 도서들은 주로 북카페에서 진행하는 북클럽 안에서 선정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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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고..."의 북클럽에 참여한 지 거의 2년이 되어간다. 열심히 참여한다고 참여했지만, 일상에 쫓겨 몇 달간 참여하지 못한 적도 있다. 매주 나오는 고정 멤버들을 보고서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책은 주로 혼자 읽는 것이다. 혼자서 읽고, 혼자서 생각하며, 혼자서 감상을 정리한다. 전시회, 공연,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와 영화를 같이 볼 수는 있어도, 책을 동시에 읽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생각하고, 인터넷에서 책의 후기와 해석을 찾아보면서, 누군가와 함께 이 감상을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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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 북클럽에서는 그러한 바람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북클럽은 크게 자유 책, 지정 책으로 분류된다. 자유 책 모임은 한 사람씩 자기가 읽은 책을 가져와 소개하는 형식으로 여러 책을 소개받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추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엔 투표를 통해 오늘의 책을 선정하기 때문에 책 그리고...의 추천도서로 걸릴 수도 있다.

 

지정 책 모임은 한가지 책을 미리 정해 토론 주제를 정하고, 각자의 감상을 나누며 깊게 파고드는 모임이다.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하고, 다른 관점에서 책을 해석해보고, 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북클럽에 참가하면 책을 읽는 양이 늘어나고 독서의 질도 높아진다. 모임 날짜가 있으니 그전까지 꼭 책을 읽게 되고 다른 정보들을 얻으면서 책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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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책 모임에서 추천받은 책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다. 1975년 발표된 작품은 그해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에밀 아자르란 작가는 74년 첫 작품 <열렬한 포옹>을 발표한 뒤 바로 다음 해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신예 에밀 아자르는 평단의 찬사를 들었고 천재 작가의 탄생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에밀 아자르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에밀 아자르는 폴 파블로비치를 통해 수상을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공쿠르 아카데미는 “아카데미는 한 후보가 아니라 한 권의 책에 투표한 것이다. 탄생과 죽음이 그렇듯, 공쿠르상은 수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것이다. 수상자는 여전히 아자르이다”라는 답변을 남겼다.


공쿠르상은 한 번 수상한 작가에게는 다시 수여 하지 않는 법칙이 있다. 에밀 아자르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5년이 지난 1980년 사실이 밝혀진다. 66세에 권총으로 자살한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가리의 시신 옆에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Vie et Mort d' Emile Ajar)』(1981)이 놓여져 있었다.

 

이 기록으로 인해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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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 귀화했고 1935년 21살의 나이에 <폭풍우>가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세계 대전에 참전한 뒤 돌아와 1956년에는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수상,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는 1962년 미국에서 최우수 단편 상을 수상했다.

 

시간이 지나 노년 작가로 평론가의 혹평을 받았던 그는 가명을 사용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어떨 때는 로맹 가리로, 어떨 때는 에밀 아자르로. 하지만 여전히 로맹 가리의 작품은 평단에서 혹평을 들었고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였다는 사실과 공쿠르 상을 두번 수상한 작가가 나왔다는 사실은 당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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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 만큼 소설의 작품성 자체도 매우 뛰어나다. 주인공은 열네 살 소년 아랍인 모모와 그를 돌보는 유대인 로자 아줌마다. 모모는 매춘부에게서 태어나, 과거 매춘부였던 로자 아줌마의 집에서 다른 고아들과 자라는데 모모는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 자신이 유대인인지 아랍인인지도 알지 못한다. 로자 아줌마는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고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두려워하는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닌 그녀가 좋아하던 지하 방에 그녀를 옮기고 곁을 끝까지 지킨다.

 

아랍인 고아를 돌보는 유대인 매춘부라는 설정에서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 연상된다. 이외에도 작중 인물들은 매춘부, 이주 노동자, 고아, 성전환자, 유럽 속의 유대인과 아랍인으로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갈등 중인 민족들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래서 책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북클럽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책을 소개받고,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작품 해설까지 들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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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책 모임은 또 여러 갈래로 나뉜다. 비문학 책, 문학책을 선정하거나 또는 작가를 한 명 선정해 작가의 여러 작품을 몇 주에 걸쳐 다루기도 한다. 지난 11월에 진행한 지정 책은 특이하게도 시집이었다.

 

9월 발간된 <마음 챙김의 시>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으로 코로나 이후 삶의 성찰이 필요한 시기에 삶의 아름다움에 관해 생각하며 잠시 휴식할 수 있는 시집이다. 그러다 보니 불교나 명상에 관련된 시들이 많았다.


 

의자는 내주지 말라

 

– 아잔차


마음은 우주의 중심인 

하나의 점과 같고

마음의 다양한 상태는 이 점에 찾아와

잠시, 혹은 길게 머무는 방문객과 같다.


이 방문객들을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대가 자신들을 따르도록 유혹하기 위해

그들이 그린 생생한 그림을 보여주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것들에 익숙해지되,

그대의 의자는 내주지 말라.

의자는 그것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의자를 계속 지키고 앉아

각각의 방문객이 올 때마다 반갑게 맞이하고

알아차림 속에 흔들림이 없으면,

만약 그대의 마음을 꺠어 있는 자, 아는 자로 만들면

방문객들은 결국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그 방문객들에게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들이 몇 번이나 그대를 유혹할 수 있겠는가.


그들과 대화를 해 보라, 그러면

그들 하나하나를 잘 알게 될 것이니

마침내 그대의 마음은 평화로워질 것이다.

 

 

시인은 분노, 외로움, 고통, 행복, 기쁨 등 사람이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방문자라고 표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그 감정을 외면하거나 빨리 없애버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시인은 어두운 감정이건 밝은 감정이건 손님으로 맞이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해보라 말하고 있다. 다만 주체적인 의지로 표상되는 의자를 내주지 말고 우울, 분노, 고통, 기쁨, 행복과 익숙해지라고 한다.


감정이란 파도와 같다. 어떨 때는 잔잔하게 일렁이다가 어떨 때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커진다. 한때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감정의 파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은 감정이란 파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시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감정들을 무엇이든 간에 받아들이고, 그 감정들이 왜 생겼는지 고찰해보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파악하면서 흔들리지 않다 보면 결국에는 평화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행복을 연장하고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성찰하는 자세가 마음의 평화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새와 나 

 

- 하룬 야히아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으면서

새는 왜 항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최고로 뽑은 시는 <새와 나>다.

 

많은 사람이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성을 추구하곤 한다. 나도 사소하게 음식 메뉴를 고를 때나 물건을 구매할 때 익숙했던 메뉴를 고르고 익숙한 물건을 구매한다. 또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해야 할 때 과연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이미 늦은 건 아닐까, 잘못되면 어떡하나 등을 걱정하면서 시간을 끈다. 기회를 놓치면 시간이 부족해서 못했다 혹은 어차피 해도 안 되었을 것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계속 제자리에 머물곤 했다.


가끔 나도 시인처럼 새나 물고기같이 어느 곳이던 날아가거나 헤엄칠 수 있는 동물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내가 지금도 멈춰있다면 새나 물고기가 되어서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어디에 도착했냐는 결과가 아니라 어느 곳이던 날아간다는 과정이 중요한 법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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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는 책 뿐만 아니라 다이어리, 여행 책자, 선인장 등을 판매하고 있다. 정성을 들여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책장을 집 안으로 옮겨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제는 서점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원하는 책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서점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또 색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책의 표지를 보고, 만지고, 종이 냄새를 맡으며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볼 수 있는 이 공간은 책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 만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복잡한 머리를 잠시 식히고 싶은 사람이라면 혹은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음미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수역에 위치한 북카페 "책 그리고..."에 방문해 보는게 어떨까?

 

 

[오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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