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홍등가에 갇힌 여인들 - 홍등 [영화]

장예모 作, 홍등(1991)
글 입력 2020.10.2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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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 감독의 <홍등(1991)>은 192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다. 여학생 ‘송련’은 집안이 경제적으로 궁핍해지자 대학을 중퇴하고 진어른댁 넷째 첩이 된다. 진사댁은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가풍이 있다. 매일 동침할 부인을 한 명을 선택하며, 선택된 부인의 처소에는 홍등을 밝히는 것이다. 홍등을 밝히면 미리 발 마사지를 받고, 아침 메뉴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남편의 선택을 받기 위해 들끼리 시기와 모략이 난무한다.

 

송련은 처음엔 관습에 부조리함을 느끼지만, 서서히 권력의 맛에 물들어가며 홍등을 욕망하게 된다. 시녀를 죽이게 되었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술주정으로 인해 셋째 부인의 불륜이 발각되어 죽임당하는 것을 목격한 송련은 결국 미쳐버린다. 송련이 미치게 된 것과는 별개로 진사댁은 다섯 번째 부인을 새로 들인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가부장적 사회의 악습은 계속된다.

 

 

 

가부장제의 축소판, 홍등가(家)



<홍등>에서 가부장제의 축소판인 진 어른 댁에서 생존하기 위한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특히, 외부인이었던 여학생 ‘송련’이 넷째 부인으로 들어오면서 진 어른 댁의 체제 안에 거하면서 변모하는 과정을 화려하고 붉은 옷차림으로 보여준다. 송련은 나름 대학을 다니던, 이른바 ‘신여성’이었다. 그러나 집안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부잣집으로 팔리듯 진 어른 댁 부인으로 들어가게 된다. 꽃가마를 거부하고 걸어서 진 어른 댁에 도착하고, 연아의 빨래를 기꺼이 거들어주는 행동에서 송련의 꿋꿋하고 자력으로 노력을 보여주어 나름대로 주체적인 삶을 살려는 인물인 것을 암시했다. 그러나 가부장제에서 내려오는 권력의 맛을 보고는 송련은 점점 진 어른댁의 구조 속에 스며들고 누구보다 권력을 욕망하는 인물이 되어버린다.

 

부인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남편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남편에게 애교를 부리고, 마사지해주고, 때로는 앙칼진 질투를 내보이는 등 남편의 심기에 꼭 어울리는 부인이 되어야 한다. 남편에 선택받는다면 부인은 발 마사지를 받을 수 있고, 아침 식사 메뉴를 정할 수 있는 권력을 얻게 된다. 반대로, 남편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하인들의 무시를 받고, 부인으로서의 입지를 잃게 된다. 아들을 낳는다는 것도 또 다른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그야말로 부인들이 권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오직 남편의 선택을 통해서다.

 

권력 욕망의 계기는 사소한 발 마사지였다. 홍등을 건 부인은 동침하기 전 발 마사지를 받는다. 송련은 처음에는 발 마사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어느 정도 진 어른댁 속 체제에 익숙해진 송련은 발 마사지를 욕망한다. 다른 부인이 발 마사지를 받을 때 연아에게 발 마사지를 요구하고, 의자에 앉아 발 마사지를 받는 상상을 한다. 발마사지를 받기 위해 가짜 임신 헤프닝을 벌이고, 자신을 저주한 둘째 부인의 귀를 자르는 등 영화에서는 발 마사지 받기를 통해 송련이 변화는 과정, 욕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제목이 ‘홍등’인 만큼 영화에서는 붉은색이 부각된다. 처음 진 어른 댁에 왔을 때 흰옷을 입고 있던 송련이 진 어른댁에 물들어 가면서 흰색 옷은 점점 붉고 화려하게 변한다. 주로 붉은색은 욕망, 경고의 의미를 담는다. 게다가 붉은색은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붉은색 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는데, 홍등가이다. 일반적으로 홍등가는 사창가를 의미한다. 붉은 조명에 자신을 전시하고, 남성을 선택을 기다리는 홍등가의 풍경이 진 어른 부인들이 마당으로 나와 진 어른을 기다리는 모습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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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선택된 부인은 침소에 홍등을 걸어놓는 모습이 사창가의 모습과 비슷하다. <홍등>에선 그렇기에 홍등은 여성(부인)의 권력을 의미한다. 첩의 자리를 탐냈던 여종도 버려진 홍등을 주워 방에 걸어두면서 언젠간 자신도 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홍등이 주는 권력은 절대적이지 않다. 송련의 가짜 임신 헤프닝이 발각되면서 송련의 홍등은 불을 켤 수 없게 봉등이 되어버린다. 아들을 임신함으로써 가졌던 권력은 한순간에 빛을 잃어 봉인되어버린다.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은 불이 꺼지면 가치가 없는 홍등과 같이 일시적이다.

 

 

 

여자의 적은 과연 ‘여자’인가?


 

가부장제라는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남성들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군림하며 권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교묘히 자신들의 존재를 지우고, 억압받고 피해입은 여성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여성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투쟁해야 하며, 여성들의 상대는 더 높은 남성들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처지에 놓인-권력을 얻기 위한- 여성들이다. 권력을 얻기 위한 통로는 오직 남성뿐이고, 여성은 남성이 부여한 권력을 얻음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싸움은 다분히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망하는 권력욕을 위해서, 어떤 이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투쟁을 흔히 말하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여성들의 싸움은 단순히 ‘질투’에 눈이 먼 싸움으로 만들어 버린다.

 

여성들의 진짜 적은 여성이 아니라 가부장제이다. 가부장제가 만든 사회, 그리고 권력이다. <홍등>에서도 가부장제가 만든 사회를 진 어른 댁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진 어른 댁을 가해자로 묘사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억압받고 피해받는 것은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위치한 ‘진 어른’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제’ 내지는 ‘가부장제가 만든 사회’로 인해서다.

 

진 어른 댁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진 어른의 모습은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대신 처첩 간의 갈등, 부인과 여종 간의 대립이 부각된다. 부인들의 모습에 집중되며, 그 암투를 제 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관객들은 부인들의 암투에만 시선이 몰리게 된다. 여성들의 싸움은 거대한 직선이 밀집해 있는 마당, 대문이 만든 틀 속에서 일어난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길 만큼 큰 대문을 틀(frame)로 설정해 틀 안 속에 위치시킨다. 네 명의 부인들과 여종 연아, 새로 들여온 다섯째 부인조차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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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갇힌 여인들 : 여성들을 프레임 안에 위치시킨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에 카메라가 멀리서 건물을 바라본다. 주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게 하는 ‘하이 앵글 숏’으로 비추는데, 여성들의 무력감과 동시에 사각 링에서 싸우는 여성들의 레슬링을 ‘관람’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지막 송련이 미쳤을 때에는 익스트림 하이 앵글 숏으로 촬영하면서 결코 가부장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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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여종 연아, ‘하이 앵글 숏’

(우) 마지막 장면, ‘익스트림 하이 앵글 숏’

 

 

자연스레 스크린(프레임) 안에 있는 관객들은 여성들을 판단하게 된다. 가령, 여성들의 기 싸움과 암투, 송련의 아군과 적군이 누구인지, 선과 악, 여종 연아의 주제넘음, 부인들의 잘잘못을 따지며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는 등의 판단에 집중하게 된다. 여성들의 암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진 어른이 부여하는 권력, 더 나아가 가부장제에 있다.

 

진 어른 댁 속에서 부인들은 순응하거나 부조리를 깨닫고 미치거나 둘 중 하나의 모습을 한다. 아들을 방패 삼아 처첩 간의 싸움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첫째 부인, 권력을 얻으려고 아래 부인들을 음해하고, 남편의 환심을 사려는 둘째 부인은 아직까지 가부장제 체제 속에서 권력을 얻으려고 한다. 넷째 부인인 송련은 부조리를 깨닫고 미쳐버린다.

 

셋째 부인이 죽었을 때 봉인되었던 홍등을 켜고, 셋째 부인의 처소를 홍등으로 붉게 물들인 채 공허한 표정을 짓는 송련은 가부장제의 모순을 깨닫고 이 권력이 부질없음을 느낀다. 결국, 미쳐버린 송련은 대학생 옷과 머리로 다시 돌아가서 집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결국, 가부장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셋째 부인과 연아처럼 죽음을 통해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송련과 엇비슷한, 아니 더 어려 보이는 다섯 번째 부인을 들인다. 영화 처음 송련이 진 어른 댁으로 시집을 가게 되고, 미쳐버린 이야기를 본 관객들은 다섯 번째 부인의 미래가 어떠할지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 진 어른 댁의 가풍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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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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