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웃는 남자 [영화]

우연, 혹은 기이하고 특별한 기술이, 그에게 만들어 준, 전대미문의 얼굴이 홀로 웃었다.
글 입력 2020.10.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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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 양쪽이 찢어져 슬퍼도 늘 웃어야만 하는 '웃는 남자'. '웃는 남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조커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조커의 모티브는 바로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속 주인공 그윈플렌에서 영감을 얻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주목할 점은 이 '웃는남자'가 17세기 영국에 실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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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등을 쓴 프랑스 소설의 거장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는 《웃는 남자》를 쓰고서 "나는 이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쓴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윈플레인은 웃으며 사람들을 웃겼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웃었지, 그의 생각은 웃지 않았다. 우연, 혹은 기이하고 특별한 기술이, 그에게 만들어 준, 전대미문의 얼굴이 홀로 웃었다.


-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 中

 

 

영화 <웃는 남자>는 신분 차별이 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입이 찢긴 채 버려진 그윈플렌의 여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어렸을 때 입가 양쪽이 의도적으로 찢겨진 채 늘 웃는 얼굴로 살아가게 된 그윈플렌은 열 살에 해안에서 버려졌고, 죽기 직전의 갓난아기인 데아를 구해낸다.

 

매서운 눈보라를 맞으며 그윈플렌은 이집저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그의 두드림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갓난아기인 데아를 품에 안고 돌아다니다가 늑대(호모)를 데리고 있는 떠돌이 우르수스를 만나게 된다.

 

우르수스와 함께 생활하게 된 그윈플렌과 데아. 그윈플렌은 남들과 다른 외모로 극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되었고, 거기에 우르수스가 쓴 대본이 합쳐져 그들의 유랑극은 점차 성공을 향해 올라갔다. 여러 광대가 모여있는 곳에서도 크게 성공을 한 셋은 즐거워한다. 하지만 그러던 중 어느 날 그윈플렌의 공연을 보게 된 한 여공작이 그윈플렌에게 끌리게 되면서, 즐거운 나날에 점차 금이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그윈플렌은 자신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통해 사실은 자신이 귀족인 것을 알게된다. 귀족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여공작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던 그윈플렌은 마찬가지로 처음엔 갑자기 주어진 직위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가족들에게 돌아가려 한다. 그러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평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자 하기 위해 남아있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콤프라치코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 언급되는콤프라치코스는 어린아이(chico)를 사고파는(compra) 상인을 뜻한다. 17세기 귀족 사이에는 기형적 생김새의 애완 인간을 소유하는 것이 유행했다. 그러나 기형인 사람의 수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기형보다 더 괴기스러운 외형을 바란 귀족들을 위해 콤프라치코스는 돈을 주고 사온 아이를 기형적으로 제조한 후 매매했다.

 

아이의 성장을 막고 왜소증으로 만들기 위해 좁은 틀 안에 아이를 가두어놓고,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음식만 주고, 밧줄로 온몸을 묶어 뼈가 자라지 못하게 만들거나 그윈플렌처럼 입을 찢고, 특별히 제조한 약물을 얼굴에 주입해 이목구비를 망가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후유증으로 죽어나갔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오히려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귀족들을 단번에 매료시킨 쇼가 있었으니, 괴물 쇼였다. 키가 유난히 작은 왜소증 환자나 키가 유난히 큰 거인증 환자, 머리가 둘 달린 소년 등 특이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에 가두어 전시하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공연이었다.

 

괴물 쇼에 흥미를 느낀 귀족들은 쇼에 섰던 특이한 외모의 사람들을 물건처럼 구입해 자신의 광대로 고용했고, 심지어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녔다. 이는 영국 전역에 유행처럼 번저 나갔다.

 

-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 中

 

 

콤프라치코스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다. 그러나 콤프라치코스라는 조직은 실제 이름이 아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런 조직이 실제로 있었고, 고발하기 위해 소설을 썼으나 실제 조직명은 알 수 없기에 임의로 콤프라치코스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와전돼서 콤프라치코스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조직이라는 얘기가 생겨났는데, 이런 조직이 실존했다는 역사적인 근거는 없다. 하지만 선천적 기형이나 사고, 질병으로 인해 후천적인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서커스에서 강제로 전시하는 '프릭 쇼(괴물 쇼)'는 실존했다고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원래는 뮤지컬 <웃는 남자>를 보고 싶었으나, 상황이 맞지 않아 영화 <웃는 남자>를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소 아쉬웠다. 94분에 1000페이지 가량 되는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좀 더 섬세하지 못했던 거 같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것이 와닿았다.(스포가 될 수 있으니 마지막 장면은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땐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졌다"라고, 광대 극을 하며 자신을 보러 온 귀족들에게 당당히 말하는 그윈플렌의 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웃는 남자'라는 제목과 달리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 작가 빅토르 위고가 존경스럽다. 사람인 우르수스에게 '곰'을 뜻하는 이름을 붙인 것도, 늑대에게 '인간'을 뜻하는 호모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평민이었다가 귀족이 된 그윈플렌을 통해 인간성이 사라진 혼란한 세상을 고발한 것도. 어떻게 이런 여운 남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을 쓸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최근 많은 고민이 든다.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아직 대답을 내릴 수가 없다. 스스로에게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물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요새 이런저런 작품을 찾아보고, 사회적 이슈거리를 검색해보고 있다. 대단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운이 남는 '나'의 작품을 쓰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 <웃는남자>를 보게 된 이유는 그래서였다. 만화,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각색되어 사랑받은 소설. 무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 언젠가 나도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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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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