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발적 '글쓰기 리그' 참가자에게 - 짧게 잘 쓰는 법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건네는 "잘 만들어진 두부" 같은 책
글 입력 2020.10.1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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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잘 쓰는 법』

_벌린 클링켄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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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자발적 '글쓰기 리그' 참가자에게

 

 

새삼 글쓰기에 대한 도서를 읽은 후 글을 쓰는 이 과정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마치 “글에 대한 글을 읽었으니 이제 글을 직접 써보시게!”라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함께 나만 아는 시험대에 올라온 것만 같다. 물론 이 글에 대해 ‘시험’이란 명목으로 직접적인 평가가 오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대신 또다시 시작된 “나만의 글쓰기 리그” 중 하나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내가 쓰고 완성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뛰어든 전쟁터.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문장으로 쓰고, 고치고, 넘기겠다고 자처한 몸부림. 그 끝인 ‘완성’의 정의조차도 내가 내리기로 한 참으로 고독한 전쟁이다.


꽤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내게 글쓰기는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얼마 전 쓴 글에선 “혼자 벽을 마주하고, 혼자서 벽을 향해 공을 쳐 내는 핑퐁 게임”이라고 나의 글쓰기를 표현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리그, 게임에는 승자가 없다. 어떻게든 완성된 글을 보내고 나서 혼자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나만이 끝에 남아있을 뿐이다.


*


책을 처음 봤을 때 “짧게 잘 쓰는 법”이라는 제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훌륭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토록 담백한 책 제목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마치 틀에서 막 튀어나온 두부 같았다. 먹고 음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곤 “잘”이라는 수식어, 소금 조금 톡 뿌리고 마무리한 것만 같은 제목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나 자신이 마치 온갖 좋다고 소문난 향신료들을 가져다 놓고도 별 멋스러운 요리 하나 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도 명료하고 담백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글을 써보고 싶다”라는 막연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짧게 잘 쓰는 법』은 '좋은 글쓰기'를 둘러싼 화려한 말들에 혼란스러움을 겪는 작가들에게 건네는 “잘 만들어진 담백한 두부” 같은 책이다. 글을 쓰며 조급한 마음으로 온갖 재료들을 사용해보려 하기 전에 글의 가장 기본적인 '문장' 그 자체를 들여다보고 성찰하기를 청한다. 저자 벌린 클링켄보그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는 “글을 쓰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문장을 만드는 일이다”라는 명료한 문장에 드러난다. 『짧게 잘 쓰는 법』은 '잘 완성된 글', '훌륭한 내용', '기발한 주제', '매끄러운 흐름', '모든 독자가 이해하는 글'과 같이 익숙하게 떠도는 글쓰기에 대한 급한 목적에서 한 발짝 물러난다. 그리고 글을 쓰는 모두가 지금 당장 쓰고 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장’에 초점을 맞춰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글을 쓰는 독자가 숱하게 마주했을 고민과 과정을 지적하고 그에 대해 질문한다. 글쓰기에 대한 지나치거나 잘못된 방향의 고민을 덜어내는 한편, 분명 필요했으나 놓쳤던 질문 혹은 새로운 방향의 성찰과 고민거리를 데려온다. 그래서 『짧게 잘 쓰는 법』을 읽는 시간은 내 안에 제멋대로 자란 ‘글쓰기’라는 못난 나무의 나뭇가지를 가지치기하고 다시금 다듬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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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에 한 문장씩. 『짧게 잘 쓰는 법』이 말하기 위해 선택한 형식이었다. “시나 문학 작품이 아닌 이상 어색한 형식이지 않은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와 잘 맞물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몇 페이지 넘기다 작게 감탄해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짧은 문장 몇 개로 내용을 충분히 전하고 있잖아...!”


어디 정확히 발 디디지 못하고 마감에, 불안한 마음에,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써 내려 갔던 지난 나의 문장, 문단, 글들을 떠올렸다. 참으로 울퉁불퉁 못났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던 파편 같은 생각을 얼른 문장이란 틀에 집어넣으려고 애쓰곤 했다. 문장이 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늘 내가 쓰는 건 글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문장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글에서 중요한 건 그것이 담은 의미나, 모든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설득력 같은 것이라 생각해왔다. 물론 중요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에 허덕이면서 정작 그 모든 것을 성취할 나의 문장들을 충분히 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글에서 내용은 분명 중요하나, 결국 그 내용을 전하는 건 문장과 문장들이 이루는 관계, 연결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말하고자 하는 바나 말하고 있다고 믿는 내용에

집중하기는 쉽습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택한 단어들이 실제로 말하는 내용에

집중하기란 어렵습니다.

 

-15p

 


‘흐름’은 감정의 토로, 즉

문장을 정제하지 않고 방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숨은 속뜻은 손쉬운 글쓰기를 가리킵니다.


(…)


죽은 문장과 살아 있는 문장을 구별하지 못하면

‘흐름’을 믿기 십상입니다.

실수로 쓴 모호한 문장을

식별해내지 못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흐름’은 대개 무지와 게으름의 동의어입니다.

서두름과 충동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 96p

 

 

짧은 문장들로 깔끔한 리듬 속에서 정확하게 문제를 짚어가는 『짧게 잘 쓰는 법』을 읽으며 당연하다 생각한 나의 글쓰기에 관한 태도가 얼마나 많은 핵심을 놓치고 있었는지, 지금까지의 그런 태도가 부끄럽게도 오만한 것이 아니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책은 단지 잘못된 점을 고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글을 쓰며 숱하게 마주하는 ‘정답 없는 고민’에 대해 다시 성찰할 수 있는 질문을 함께 던진다. 예를 들면 ‘완성'에 대한 문제다. 나로선 이것이 글쓰기에 있어 애증이라면 지독한 애증이었다. 얼른 도달하고 싶은데, 도대체 언제 수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마감을 할 때 100에서 99는 늘 후회스러운 마음이었다. 기뻤던 마음이 있었나 싶었고, 언제쯤 기쁜 마음으로 마감을 할 수 있을까 질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마감을 위해 나 스스로 글과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있었다. 그런 '마감'에 대한 태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록의 세계에서 영구불변한 것은 없습니다.

문자로 적힌 문장은 검토 대상이지요.

 

(…)

 

기뻐하거나 절망에 빠지는 건 퇴고에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호기심, 참을성, 융통성이 좋습니다.

기꺼이 글과 소통하는 능력 또한 좋은 자세입니다.

 

- 152~153p

 

 

그 이후의 내용도 쭉 읽고 나서 나는 나의 글을 위해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더 단단히 마음먹고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야 글을 쓰는 주체이자 동시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과 소통할 수 있는 독자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나의 또 다른 문제는 글쓰기에 대한 자기불신이었다. 내가 쓰는 글이 뭐 특별한 게 있나 싶고, 내 생각이 맞나 싶고, 이렇게 내용을 풀어가는 것이 맞는지, 그냥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었다. 이는 글을 쓰는 의지를 단번에 꺾어버리는 문제였다. 부끄럽게도 그런 불신이 몇몇 글에 흔적처럼 드러나기도 했다. 이 고민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는지 『짧게 잘 쓰는 법』역시 이 문제를 짚어가고 있었다.


 

자기불신의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을 둘러싼 세상과

여러분이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알아차리는 데 있어서요.

여러분은 자신의 인식을 부정하고 묵살하는 데

익숙해져 있을지 모릅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가요?

 

“나의 문제점은......”이나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와 같은

만성적인 자기폄하의 언어를 포착하세요.

이런 말이 아마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거예요.

이는 가정교육이든 학교교육이든 교육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주의를 기울여

얼마나 해로운 말인지 곰곰 따져보세요

그런 말은 여러분의 인식이 가치 없다는 메시지를 -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 띱니다.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세요.

 

- 170~171p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저자는 분명하고 꾸밈없는 글쓰기를 제안한다. 사실을 이해한 대로 단호히 내세우고, 내가 축적해온 인식을 확고히 드러내는 글쓰기. 그리고 문장이 좋아질수록 글쓴이로서의 권위(나는 이를 작가의 주체성이라 요약했다)가 굳건히 자리 잡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아이디어가 좋지 않다거나 문장이 따분할 것 같아 걱정하는 것에 대해서 “하지만 여러분의 아이디어가 조리 있고 사려 깊다면, 여러분의 인식이 치밀하고 진실되다면, 여러분의 문장이 명료하고 꾸밈없다면 어떨까요?”라고 다시 질문한다. 그러는 한편 “여러분에게는 명백해 보이는 아이디어가 독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놀랍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여러분의 상식이 독자에겐 깨달음이 될지도 모르죠”라며 글의 아이디어를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준다. 그렇다면 글의 아이디어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저자는 다시 작가로서의 주체를 불러온다.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시험하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관심을 끄는지, 기대감을 자극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죠.

그것에 관해 쓰면서 얼마나 많은 놀라움을 발견하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172~173p

 


*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조만간 글을 쓰다 또 막힐 때면 이 책을 아무 페이지나 들춰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글을 쓰며 했던 질문들은 늘 막연한 것들이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물어도 명확한 정답을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짧게 잘 쓰는 법』은 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기보다는, 그 문제를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끌고 있었다. 가령 앞서 본 것처럼 “내 아이디어가 별 의미 없는 것이면 어쩌지?”라는 질문에 대해서 (1) 그 아이디어가 나의 관심을 끌고 기대감을 자극하는지 생각해 볼 것 (2) 그 아이디어에 관해 쓰며 얼마나 많은 놀라움을 발견하는지 확인해 볼 것, 두 가지로 명확하게 정리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시 글쓰기가 무엇인지 짚어가며 지침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글 쓰기의 한 가지 목적은 -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죠 -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세상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생소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단지 관찰한 것이 아니라 사실로 보이는 것만 말해야 하는지

세심하게 제한된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어쩌면 언제나 사실인 것을 말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사물의 존재 방식을 말하라고 요청을 했나요?

그런 증언을 할 권위는 어디서 구했나요?

답을 찾는 것은 여러분 몫입니다.

 

- 173p

 


『짧게 잘 쓰는 법』 후반부는 여러 예시와 각 예시에 대해 저자가 정리한 질문을 함께 두어 독자가 직접 글과 문장을 마주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말 독자가 글과 문장을  명확하게 마주하고 생각하기를 원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 후반부를 다 읽지 않고 남겨두었다. 내가 쓰는 문장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마다 책의 후반부에 찾아가 다른 문장들을 보며 보다 명확하게 판단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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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빨리 이 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정말 다양하다. 그중에서 만난 『짧게 잘 쓰는 법』은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건가 싶을 정도로 내가 오랫동안 겪었던 글쓰기에 대한 문제, 고민, 질문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었다. 내게 『짧게 잘 쓰는 법』은 글쓰기에 필요한 도구가 가지런히 정리된 요약집 같은 것이었다. 이후에 또다시 뛰어들 고독한 글쓰기 리그에서 유용하게 그리고 더 명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러 도구가 담긴 공구함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짧게 잘 쓰는 법』이 내게 알려준 도구들을 잘 사용하고 싶다. 앞으로도 그렇게 어려워하면서도 ‘나만의 글쓰기 리그’에 또다시 자발적으로 뛰어들 내가 이 도구들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전쟁’이나 ‘몸부림’이라는 거친 말들로 표현되어야 했던 나의 글쓰기가, 나의 고독한 글쓰기 리그가 조금 더 즐거운 것으로, 조금 더 확실한 것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을 가지고 『짧게 잘 쓰는 법』을 만나고서는 처음 입장한 또다른 ‘나만의 글쓰기 리그’에서 퇴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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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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