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intermission - 우리가 사랑을 노래하는 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10.0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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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시리즈 번외편 무채색을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타임을 가지겠다. 뮤지컬, 연극, 오페라 등 공연이 2시간이 넘어가면 중간에 관객들을 위한 휴식시간을 가진다. 그 시간을 ‘intermission’이라고 한다. 그 시간 동안 관객들은 화장실을 갖다 오기도 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전반부에 진행되었던 공연에 대해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번 오피니언은 그렇게 잠시 눈을 돌려 문득 스쳐 지나갔던 나의 이야기를 꺼내 보는 시간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가졌던 불만이 있었다. K-POP라는 장르에 눈을 떴을 때 왜 가사에는 온통 사랑 얘기만 있냐는 것이었다. 주체적인 나, 진로 등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을 담은 가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사랑’ 얘기였다. 진부했다. 계속되는 사랑놀음에 지루해졌다.

 

최근에 sns에서 한 동영상을 봤다. 다 보고 나니 코끝이 찡해졌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제목은 ‘한 청년이 취객을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그 청년은 어떻게 취객을 제압했기에 그 동영상을 본 많은 누리꾼이 감동을 하였을까. 세상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던 취객을 청년은 온몸으로 안았다. 청년의 따스한 온기는 취객에게 온전히 전해졌나 보다. 거칠어진 그의 숨소리가 조금씩 고르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바뀐 그의 태도를 본 누리꾼들의 댓글이 주옥같았다.

 

“저분에게 필요한 것은 ‘경찰’이 아니라 ‘경청’이었습니다. 주변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여유와 사랑이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눈물 난다...살면서 때로는 바닥까지 가는 경험은 다 있을 텐데.. 그럴 때 누군가 포옹을 해줬던가??? 사람에겐 사랑이 최고의 위로구나.”

 

“저 청년은 저 한 분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안아주었네요. 저까지도요. 이 힘든 시기를 서로 위로하고 공감하며 잘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힘내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무엇일까? 남녀 간의 뜨겁고 애절한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한 청년이 취객을 안아주는 행위를 보고 누리꾼들은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사랑이라 할 수 있는 범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사랑은 흔히들 모든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정서라고 한다. 단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동물에게도, 식물에도 무생물에도 사랑은 늘 존재한다. 사랑의 감정은 근원적이라고 여러 학문의 이론에서 말한다.

 

사랑은 본능적이다.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사랑에 대한 논의는 기원전부터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랑 노래로 알려진 <황조가>도 먼 옛날 고구려가 아닌가. 사랑의 역사는 길다.

 

요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즐겨보고 있다. 잔잔한 클래식 감성이 묻어나는 청춘 이야기다. 나는 드라마에 푹 빠지다 보면 내부의 이야기에서 줄기를 뻗어 외부의 배경까지도 관심사를 확대하곤 한다. 작가가 이번 드라마를 쓰며 했던 인터뷰에 눈길이 가는 문구가 있었다. 왜 클래식 음악 학도들을 주인공으로 했나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출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공식 홈페이지)

    

 
클래식 음악가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매일매일 몇 시간씩, 평생 악기 연습을 해온 사람들이다. 연습 시간 인풋 대비 아웃풋의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이 전혀 아닌데도, 평생 매일매일 연습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음악을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인물들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클래식 음악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그들의 사랑 방식은 느리면서도 애달프고 서정적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8회 고백씬은 최고 시청률과 최고의 조회수를 자랑하며 많은 시청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설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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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의 당찬 고백에 조금만 기다려달라던 준영이의 한 마디. “좋아해요. 좋아해”

 

‘사랑해’는 ‘좋아해’로 대치되기도 한다. 내 느낌상 ‘좋아해’는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수줍은 고백 같다면, ‘사랑해’는 한참 서로에게 흠뻑 빠져있는 연인들의 불타는 고백 같달까. 어감이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작가는 사랑한다는 고백이 아니라 왜 좋아한다고 대사를 썼을지 궁금하다.

 

얼마 전 친구와 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친구에게 사랑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사랑하는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을 구별하는 법을 아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단지 내가 사랑한다, 좋아한다고 명명하는 이 마음은 수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잣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게 얘기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계속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래.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래. 사랑하는 마음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래.

 

희생을 동반한다고 얘기하는 사랑은  종교에서도 주장했던 것 같고. 글쎄. 그런 사랑은 아직 내게는 부담스러우면서도 거창한 듯하다. 사랑은 참 어렵다.

 

돌고 돌아서 왔다. 사랑을 노래한 수많은 곡 중에서 내가 애정하는 두 곡을 소개해볼까 한다. 이 곡들을 듣고 있으면 사랑을 노래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라도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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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곡은 선우정아의 <구애>다. 몽환적이고 독특한 음색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한 선우정아가 2017년 7월 8일에 발매한 싱글이다. 평생 사랑의 말을 속삭이고 싶다는 화자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노래다.

 

이 화자는 누구에게 그토록 애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이 노래를 마주했을 때 가슴이 쓰라렸다.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멜로디에 너무나도 슬픈 가사가 담겨있었다. 계속해서 채우고 싶은 마음의 항아리를 채우지 못한 채 텅 비어있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새벽에 침대 위에서 우두커니 앉아 들으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를 것만 같은 감성적인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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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곡은 서자영의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이다. 2018년 2월 21일에 발매한 싱글이다. 단편 드라마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처음 접한 음악으로 마음을 울리는 곡이라 너무 좋은 나머지 지금까지도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에 담겨 있다.

 

만남 뒤에는 헤어짐이 있듯이 사랑이 찾아오면 이별도 함께 찾아온다. 사무치게 그리운 그 사람은 어떤 심정으로 이별을 고한 것일까. 마음이 바뀌는 것도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너의 마음은 알 수는 없는 걸까. 가사가 시적이다. 잔잔하고 고요한 멜로디에 얹어진 담백한 음색이 화자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마지막 가사를 내뱉은 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옅게 이어지는 멜로디의 여운이 좋다.

 

사랑은 국경과 나이와 성별 등 모든 차별적인 요소를 초월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이 연인 간의 사랑을 얘기하지만 창작자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기에도 좋고, 리스너들이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위로와 공감을 얻을 기회가 많은 가사가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없이 사랑을 노래한다.

 

어쩌면 뻔한 답을 내놓는다. 여전히 쏟아져 나오는 사랑 노래에 지금도 불만을 가지느냐고 묻는다면 살짝은 있다. 지루한 사랑놀음이라고 부정적인 시선까지 가지 않는 정도? 그렇지만 사랑은 아름답기에 미워할 수 없다. 우리에게 사랑은 너무나도 필요하니까.

 

요즘은 특히 사랑에 관한, 인간관계에 관한 에세이가 많이 쏟아지는 듯하다. 이런 시점에서 내가 이렇게 또 사랑 얘기를 꺼내는 건 새 발의 피일 수도 있겠다. 단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 다시 꺼내 봤다고 바라봐주면 좋겠다. 식상하고 진부한 사랑 얘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았지만 어느 한 부분은 맞장구를 쳐줄 수 있는 구간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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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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