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독회를 다녀와서. [문학]

같은 열도를 지닌 시집을 한 글자씩, 한 단어씩, 한 문장씩 읊어보는 자리.
글 입력 2020.10.0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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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jpg

 

 

지난달 말 낭독회를 다녀왔다. 참여한 인원이 10명 남짓 되는 작은 낭독회였다.

 

저녁을 먹고 서점에서 마련한 행사 공간에 들어갔다. 그 공간에는 편안함도, 비장함도 아닌 데면데면한 공기가 들어차있었다. 어떤 시를 읽기 위해 평일의 저녁에 사람들은 모인 걸까.

 

사람들을 모이게 한 것은 김희준 시인의 시였다. 지난 9월 10일 김희준 시인의 첫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시들지 않기 때문,』 이 나온 후 처음 있는 낭독회였다. 자리를 마련한 유희경 시인과 더불어 평소 김희준 시인과 작게나마 연이 있던 서윤후, 손미, 박은정 시인, 그리고 시집을 만든 김민정 시인이 함께했다.

 

여기에 김희준 시인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오해다. 그는 자기의 일부를 참석자의 손에 쥔 시집 곳곳에 흩뿌려놓았다. 시인 자신은 보지 못한 시집으로 우리는 그를 잠시 감각하고 오래 기억했다.

 

이 낭독회는 그런 자리였다. 시인의 죽음을 애달아하고 비통해하기보다는 생전의 그와 같은 열도를 지닌 시집을 한 글자씩, 한 단어씩, 한 문장씩 읊어보는 자리. 그리고 느슨하게 얽힌 기억 속에서 시인을 더 뚜렷하게 위치시켜보는 시도.

 

김희준 시인이 영면한 후 김민정 시인이 시집을 내기로 약속한 날은 그의 생일인 9월 10일이었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고, 마음은 촉박한데 이 불가능에 가까운 시간 싸움에 기진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시간 중에 김민정 시인에게 언뜻 찾아온 전화 한 통. ‘선생님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의아한 마음에 되물으니 9월 10일이 시인의 49재라고. 단지 우연에 그칠 수도 있지만 분명 시는 궤적을 벗어나는 행위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껴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김민정 시인 곁의 여러 쓰는 사람들은 여기를 떠나면서 시인에게 글들을 맡기고 갔다. 황현산, 허수경, 그리고 김희준... 이 의도하지 않은 책임감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연초에 소유정 평론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민정은 “그들이 떠나고 내가 붙든 건 그들이 남긴 텍스트”였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두고 간 글들이, “그게 또 엄청 사람을 안도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고 고른 숨을 쉰다.

 

 

“있었던 사람이 없고 함께했던 사람이 없으니까. 그 부재라는 텅 비어 있음을 저 혼자 책임져야 하니까(…) 그랬는데 기실 끝에 남는 건 오롯하게 나, 시소 위에 혼자 앉아 있는 나더라고요. 얼마나 찬데요, 그 기분. 처음에는 유고집 만드는 데 있어 감정이 앞서다가 시간이 갈수록 대단히 이성적이 되면서 제가 엄청 냉해지더라고요.”


- 릿터 22호_김민정 인터뷰 中

 

 

이 글이 어디에 닿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읽는 사람으로서 이 기억들을 적지 않으면 왠지 시소 위에서 계속 미끄러질 것 같은 기분이 내내 들었다. 이곳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공백 앞에서 여전히 쩔쩔매고 있는데, 그 도리 없이 기울어진 시소 반대편에서 남은 사람이 만든 떠난 이들의 단단한 책들이 무게 추 역할을 해줬다.

 

그 무게에 열심히 빚지며 시소 위에서 발을 구르고 있다.

 

"올리브 동산에서 만나요."_ 『언니의 나라에선 시들지 않기 때문,』 시인의 말.

 

 

 

조원용 에디터.jpg

 

 

[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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