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다호 - 낯익은 도로, 그리고 성장통 [영화]

글 입력 2020.09.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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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버디 무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퀴어에 가까운 이야기. 가난하지만 아직 희망이 있던 청년들의 이야기. 이런 몇 가지 지점에서 나는 영화 〈아이다호〉를 보는 내내 〈미드나잇 카우보이〉가 겹쳐 보였다.

 

살아남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삶이 앞으로 어찌 흘러갈지 모른다는 다소 열린 결말로 남겨두는 것까지도 비슷하다. 그래서 확신했다. 나는 아무래도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나 보다.

 

사람들이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 등잔 밑의 서사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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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 주인공 마이크는 기면증을 앓고 있다. 따라서 영화 중간 중간 편집이 중단되면서 낯선 장소, 낯선 상황에서 눈을 떠야만 하는 마이크의 입장을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첫 장면부터 마이크는 어딘가 낯이 익지만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도로에서 깨어난다. 미국 서부 특유의 황량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도로의 모습은 땅덩어리가 좁은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광활한 막막함을 제공한다. 그런 도로에서 마이크는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과민한 그의 신경은 이성의 끈을 놓고 만다.

 

영화는 이러한 공허하고 외로운 감정을 마지막까지 끌고 간다. 작품의 또 다른 중심축이자 마이크의 ‘절친’을 자처하는 스콧이 등장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이크처럼 몸을 파는 신세지만 스콧은 언제든 돌아갈 집이 있는 부잣집 도련님인 반면, 마이크는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하나의 희망이었던 어머니 역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고, 머지 않아 사랑했던 스콧 역시 마이크를 저버린다.

 

스콧이 저버린 건 마이크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거둬주고 가르친 스승 밥 역시 매정하게 저버린다. 버림받은 밥은 그 충격에 사경을 헤매다 결국 사망하게 되고, 우아한 스콧 아버지의 장례식과 대비되는 요란하고 조잡한 밥의 장례식이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시끄럽게 밥의 이름을 외치는 무리를 보면서도 동요하지 않는 스콧의 차가운 표정은 스콧과 그들 간의 좁혀질 수 없는 차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버림받은 마이크는 영화의 시작처럼 마지막에도 어딘지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정신을 잃고 물건마저 도둑맞지만, 결국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차에 태워지면서 모호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표면적으로는 비극이지만 그 안에는 일말의 희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역시나 〈미드나잇 카우보이〉와 비슷하게 사회적 함의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 방향은 다소 다른데, 〈아이다호〉의 경우에는 미국 사회에 대한 고발과 함께 그 안에서 온정의 가능성에 대해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두가 등을 돌린 상황이지만 마지막에 마이크를 차에 태워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인물(일부는 마이크의 형이자 아버지인 리처드로 해석하기도 한다)을 비춰주는 부분이 그렇다.

 

반면 〈미드나잇 카우보이〉의 경우 사회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두 주인공의 유대관계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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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청춘의 흔들리는 우정과 사랑을 다루고 있는 작품은 이 말고도 더 있다. <영원한 여름>같은 작품 역시 마찬가지로 방황하는 이들의 아픔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아이다호〉의 독특한 점이라면 ‘외로움’이 가장 극단적으로 부각되어 있다는 게 아닐까.

 

서로를 필요로 하는 당위성으로 외로움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채워지지 못한 상태로 혼자인 상태로 돌아가 방황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점에서 마이크는 가장 외로운 성장통을 겪는 셈이다.

 

어쩌면 성장통으로 끝나지 않고 그를 비극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르지만.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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