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페미니즘 참고서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글 입력 2020.09.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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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기 전에 내가 페미니즘 앞에 처음 선 것은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5년 전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망과 슬픔을 뛰어넘어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그리고 나의 언어를 찾기 위해 페미니즘 강의를 찾아 들었다.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페미니즘 강의는 교수님께서 선정하신 영화를 보고 그와 관련한 페미니즘과 젠더 담론을 학습하는 강의였다. 매주 한 편 이상의 영화를 보았고 수많은 논문과 칼럼들을 읽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3시간씩 학우들과 다양한 경험과 의견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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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에서 본 영화 파일들은 여전히 소중히 간직 중이다

 

 

그 강의는 나만의 언어를 찾아 주었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 수업 내용의 유익함도 있었지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수업의 분위기였다. 이곳의 누구도 나를 해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해한 우리만의 방이었다.

 

 

나는 눈앞의 경계선을 넘어서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를 간절히 기도했지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활기로 가득 찬 세상과 도시들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내가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나와 닮은 사람들을 어디선가 만나고

닮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를

 

이랑 <우리의 방> 中

 


다소 쉽게 적어 내려갔지만 페미니즘을 처음 받아들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이상, 모두가 그러한 권력 구조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것은 매 순간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보는 일이다.

 

그 과정이 쉬울 수는 없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았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많은 친구들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곤 하는 혐오의 얼굴들을 마주하는 것이 힘에 부쳐 그런 이슈들을 의도적으로 피해본 경험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좌절의 순간마다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는 것도 페미니즘이었다. 페미니즘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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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앞에 선 이들은 수많은 질문들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 질문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던지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 스스로가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기 위한 참고서 같은 책이다.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라는 이름을 붙인 것 또한 이 책에서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페미니즘들(feminism)이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문 앞에 서 있다면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만의’ 페미니즘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떤 이론이 교과서가 된다면 그것은 이론에 함몰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엘리트주의로 향할 위험성도 존재하기에 이 책은 어디까지나 참고서에 위치해야 하며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언급하듯 ‘강남 숙의 페미니즘’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1.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2. 성차별이란 무엇인가

3. 여성혐오란 무엇인가

4. 페미니즘은 하나인가

5. 남성과 페미니즘은 어떤 관계인가

6. 페미니즘은 어떤 세계를 지향하는가

7. 페미니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 평등 사회를 향한 다섯 가지 과제

 

 

페미니즘 앞에 선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할 가장 기본적인 일곱가지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페미니즘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익숙한 내용들이 많겠지만, 이전에 알고 있었던 여러 이론들을 구체적인 사례와 잘 정제된 언어로 머릿속 책장에 차곡차곡 정리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몇 년 전 들었던 한 강의에서 여성 혐오적 농담을 자주 일삼던 한 중년의 남 교수가 "너희들 진짜 성차별 있다고 생각해?"라는 질문으로 입을 열며 한 학우를 골라 너 한 번 말해봐-라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학우분은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여성차별은 분명히 존재하며, 여성의 생 전반에 걸쳐 억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예시로 임신과 출산 육아가 여성에게 큰 짐을 지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많은 여학우들이 고개를 끄덕이던 와중에 그 교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나이가 몇인데 그걸 벌써 고민해?"라는 대답을 했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교수가 ‘나도 집안일 많이 돕는다’, ‘요즘은 여자들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한다’, ‘페미니즘은 여자 학자들 밖에 없어서 문제’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일 동안 교수의 질문, 아니 질문을 가장한 공격을 받았던 여학우분은 짐을 싸서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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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참정권 운동(Suffragette)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에밀리 데이비슨

 

 

페미니즘의 시작점은 혐오에서 비롯한 차별과 폭력을 인지하는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남 교수처럼 여성에 대한 혐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예전에 비하면’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며, 요즘은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 시대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예전’이 대체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던 시절? 집 안의 남자 형제의 교육을 위해 집안의 여자들이 노동의 현장으로 나가야 하던 시절?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지도 못하던 시절?


분명 예전보다 상황이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어 온 혐오를 뿌리째 뽑기 위해서는 한참은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를 향한 길은 페미니즘임이 자명하다.

 

*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이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들을 많이 받는다. sns에서도 많이 마주할 수 있듯이, 페미니즘은 흔히 여성 우월주의로 곡해되곤 하며 그 본질과 논점을 흐린다. 페미니즘은 여성 혐오와 차별을 타개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한 사상이다. 그리고 그 지향점은 모든 인간의 평등이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도착점은 여성만이 아니라, 젠더, 인종, 계층, 성적 지향, 장애, 국적,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이라는 급진적 사상이어야 한다.

 

67p

 

 

저자가 내린 이 정의에서 ‘21세기’ 페미니즘의 정의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한다. 저자가 이 정의를 ‘21세기’라고 콕 집은 이유는 바로 페미니즘은 고정되어 있는 이론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거시적 목표로 삼은 제1차 페미니즘 물결. 성별 체계를 여성 억압의 근본으로 지적한 2차 페미니즘 물결. 이후 정체성 구성에서 교차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분파로 갈라진 3차 페미니즘 물결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달리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뿐만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각기 다른 정황과 맥락 속 다양한 페미니즘들이 존재한다.

 

혹자는 ‘자기들끼리도 말이 안 맞는다’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발언은 다양한 페미니즘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폭력적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지향하고자 하는 세계의 모습 자체를 부정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페미니즘들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인식을 가지고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여성은 가부장제에 의해 사적, 공적 차원에서 억압과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의미하는 가부장제의 폐해는 여성의 삶을 왜곡시켜 왔고, 온전한 인간으로서 여성의 삶을 제약해왔다는 것이다. (중략) 어떤 질병이 발생했을 때, 여러 의사들이 그 질병의 원인을 동일하게 보지 않을 수 있다. 진단에 따라 병에 대한 치료법도 다르다. 마찬가지로 성차별과 여성 억압이라는 사회적 ‘질병’에 대한 원인 분석이 다르면, 해결 방안도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페미니즘도 하나가 아니다.

 

161-162p

 

 

또한,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급진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한국의 페미니즘’은 너무 ‘급진적’이라서 싫다든가 혹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며 비난하기도 하지만, 페미니즘 본질 자체가 급진적인 사상이다. ‘급진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인 radical은 라틴어에서 뿌리를 의미하는 'raxix'와 ~의를 의미하는 'al'이 결합되어 ‘뿌리의’, '뿌리로 가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인간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한 뿌리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당연시 여긴 인식론적 틀에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한다. ‘안사람/바깥사람’이라는 단어 같은 언어적 표현에서부터, 일상생활과 대중문화 그리고 정치까지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적 재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은 불편한 것이 된다. 자연스럽다고 여겨진 것들에 뿌리째 뽑는 일은 응당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인식 속 자연화 된 것들의 대부분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자연화 된 것의 이면에 정말로 ‘불편’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이들은 프로 불편러라는 조롱적 표현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의 프로 불편러라면 오히려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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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멕시코에서 이루어진 페미사이드 규탄시위


 

이러한 인식론적 뿌리 물음으로 인해 페미니즘 앞에 서기 전과 그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문장이 보여주듯,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조적 권력이 낳는 억압이 작용한다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21세기 중요한 이론으로 대두된 교차성 이론은 개인에 대한 억압은 다양한 양태로 이루어지며 복합적인 조명이 필요함을 이야기해 준다.

 

모든 차별의 얼굴은 닮아 있다. 어느 한 존재를 다른 존재보다 열등한 것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지배의 논리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으로 인해 눈이 트이면 또 다른 영역에서의 억압과 차별도 간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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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를 위해 코스모폴리턴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이것을 ‘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 혹은 이퀄리즘’이라는 말로 곡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휴머니즘이나 이퀄리즘이라는 단어는 문제의식을 전혀 내포하지 않은 단어이기 때문에 공허한 외침이 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인간의 범위가 어디까지로 설정이 되어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고대 로마의 시민권은 여성에게 부여되지 않았으며, 미국 대륙의 흑인 노예들은 인간이 아닌 재화로 여겨졌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인간’이라는 페미니즘의 주장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 ‘여성’의 자리에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 세계이다. (중략) 진정한 페미니즘의 궁극적 도착 지점은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인간됨을 위해 개입하고 연대하는 코스모폴리턴 페미니즘이어야 한다.

 

311p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혐오와 배제의 역사를 뿌리 뽑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법과 제도의 변혁을 이끄는 객관적 변화와 사회적 구성원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과 가치관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침묵이 아닌 발언으로,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양한 양태의 차별과 혐오에 저항해야 한다.


저자는 ‘좋은 이론은 좋은 실천’이라는 말을 책에서 반복한다. ‘좋은 이론’애 접하게 될 때, 포괄적 의미의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자신의 위치에서 사회 변혁을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

 

*

 

물론 이 책에서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페미니즘 앞에 선 이들에게 꼭 필요한 담론들을 넓게 소개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만나게 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들에 대한 대안적 방법이나 실천적 행위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또한, 어떤 부분에서는 실천적 행위가 너무 온건한 방법, 소위 말하는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 옳은 방향 방향인 것 읽히기도 해서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페미니즘 앞에 선 이들에게 좋은 참고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좋은 저서이다. 페미니즘을 지향하며 마주하게 될 여러 실천적 행위에 대한 답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간 개인이, 아니 우리가 함께 논의하며 찾아가고 변화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분명히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매 순간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싸우는 일이며, 때로는 자신과 싸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길을 잃었을 때, 출발점과 도착점을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때, 그러니까 ‘좋은 이론’이 필요할 때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를 펼쳐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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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
 

지은이 : 강남순

출판사 : 한길사

분야
여성학

규격
136*205

쪽 수 : 324쪽

발행일
2020년 02월 20일

정가 : 17,000원

ISBN
978-89-356-6337-8 (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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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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